북유럽5국

7. 비겔란조각공원에서

저 언덕 넘어 2018. 9. 30. 14:37

 

  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오슬로의 한 외곽지 공원에 도착한다. 내리던 비가 그치는 둥 마는 둥 빗발이 오락가락하지만 나는 우산을 쓰지 않고 큰 철제 정문이 열려있는 입구에서 저 멀리 사람들이 보이는 너른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좌우로는 거대한 가로수들이 공원안의 분위기를 한결 생기있는 분위기로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었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1920년 당시 오슬로시에서 10만 평의 농장을 사서 공원을 조성해 비겔란으로 하여금 작품에 전념하도록 모든 것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멋진 야외정원과 곳곳에 장미정원 등이 조성되고 양쪽 가으로는 울창한 숲을 조성했다. 그리고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58개 청동상으로 장식된 다리와 동물들을 주조한 철제 정문도 이색적이다.


 


  입구에 있는 이 작품부터 인간이 악에 휘둘릴 수 있는 모습을 형상화 했는데 주제들이 처음부터 매우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입구부터 중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조각품들이 펼쳐져 있다. 안내가 설명을 한다. 입구 정면에는 어린이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으며,

이 조각공원의 작품중 ' 심술쟁이 소년 상'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떼쓰는 모습이 인상적인 조각 작품으로
이 조각공원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마음은 한없이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굴레가 항상 그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다. 의지 대로 될 수 없는 한계상황이 항상 그를 짓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굴레를 벗어나고자 무한히 고뇌하고 처절하고 집요하게 도전해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지 않은가? 아래 조각상은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중앙에 위치한 멋진 분수대에는 분수가 힘차게 뿜어지고 있고 돌아가면서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의 과정을 순서대로 조각한 작품들이 분수를 에워싸고 있었다.




  비겔란은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재료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보다시피 "인간의 삶과 죽음을 희로애락"을 테마로 그의 인간의 탐구에 대한 결과를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동양의 윤회사상까지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특히 공원의 거의 끝부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높이 17m의 모노리텐이라 불리는 조각품이 걸작이다.  270t에 달하는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조각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비겔란에 의해 제작된 석고 모델을 세명의 석공이 14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화강암에 조각된 121명의 남녀상은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 작품은 인간들이 서로 뒤엉겨 악다구니를 이루며 살고 있는 생지옥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마치 욕망의 상징인 뱀들이 서로 뒤엉켜의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쳐왔다.






  

   한 곳에 이 공원을 수많은 조각 작품으로 채운 작가의 동상이 지금도 자기가 조각을 만들던 시절의 꿈과 고뇌와 보람을 회상하듯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비켈란은 1869년 노르웨이 남부 해안지방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 받아 어린시절부터 조각에 대한 취미와 흥미를 느껴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학을 하면서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로댕”에게 많은 조각을 배우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국인 오슬로에 돌아와 그는 40년간을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오로지 조각예술을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는  로뎅의“미술의 기본은 정확한 공간을 설정하는데 있다”는 가르침을 항상 새기면서도 그만의 사실주의적인 기법을 써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말이지 미술에 대한 심미안이 훌륭한 사람이 이 공원을 보았다면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냥 이 정도로 밖에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