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씨클로를 타면서
4.씨클로를 타면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인구가 300만이 넘는 도시인데 평야지대에 넓게 형성되었다. 호수가 많이 보였다. 중심가 지역이라 해도 그렇게 고층건물은 많지 않은 아담한 도시였다. 호치민 광장이 제일 볼 만하였다.
하노이 하면 그 거리 풍경이 정말 이색적이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았고 거의 오토바이 일색이었다. 오토바이에 아이들 어른 셋 넷 한 가족이 탄다. 아주 아린애도 태우고 간다. 자전거도 많았다. 우리가 간 때는 설명절이 끝나가는 때였으므로 귀향한 사람들이 이제 막 돌아들 와서 명절 기분을 내러 놀러 다니는 때라고 하였다. 새벽 여섯시도 안 된 시각 호텔이 있는 외곽지의 거리는 벌써부터 오토바이가 많이 보였다. 2월3일엔 거리가 붐볐다. 차들은 가끔씩 보였고 온 거리가 오토바이의 물결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차선도 별로 지켜지지 않았고 중앙선의 개념도 없는 것 같았다. 신호등도 있지만 무시하는 경우도 많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보니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는 자주 들리는 편이었다. 가끔씩 교통사고도 일어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교통신호도 차선도 중앙선도 뚜렷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짐작하건대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 같이 보였다. 서로 양보도하고 이해하면서 길을 간다고나 할까? 가끔씩 느껴보는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교통신호나 차선 때문에 교통체증이 더 할 경우가 있다. 규칙을 지키면 질서가 유지될 수도 있지만 그 규칙에 얽매일 때 소통이 더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면 소통이 더 잘 될 수도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차를 탈 때나 표를 살 때 한 줄로 길게 선다. 그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자세히 그것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남에 대한 아량이나 베풂은 전혀 없는 철저히 이기적인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치의 양보가 없는 것이다. 온 순서대로 적당히 섰다가 서로 양보를 한다면 그렇게 줄 서는 문제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차선을, 정지선을 정해서 구속하기 때문에 거기서 시빗거리가 생긴다. 양심을 지킨다면, 그리고 서로가 조금씩 양보를 한다면 법이나 규칙이 필요 없을 것이 아닌가? 많은 개미떼가 대단위로 이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가다가 마주치게 되면 서로를 탐색하다가 비켜준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간다.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지는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베트남 사회생활이나 그들의 생활상을 잘 모르는 나지만 그들의 삶은 아직도 순수한 것 같아 보인다. 우리처럼 보험사기단이 득실거리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잘못하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차를 세워놓고 욕설을 하고 드잡이를 하는 광경은 아마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오토바이들이 물 흐르듯 유유히 흘러갈 수 있으랴? 그 광경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오토바이가 많아서인지 공해는 아주 심한 편이었다. 아마 서울 거리보다 매연으로 인한 냄새가 더 심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 특유한 마스크를 많이 쓰고 오토바이를 탄다. 인구 300만인 하노이에는 150만대의 오토바이가 있고 한 달에 1200여대의 오토바이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앞으로 공해문제는 정말 심각할 것 같았다. 앞으로 이십년 뒤에 다시 베트남을 온다면 교통체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참으로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생각이 났다.
(2)
우리는 자전거로 된 인력거라 할 수 있는 씨클로를 타게 되었다. 팁까지 15불이니 그들로 봐서는 큰 돈이고 우리로 봐서도 결코 헐한 돈은 아니었다. 식당에 처음 취직하면 월 60불이라고 하니까. 아마 외국인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것일 게다. 운전사는 자전거 페달을 뒤에서 밟고 앞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관광용으로만 쓰고 있다고 한다.
시내 일원을 한 바퀴 돌았다. 기사는 여기는 박물관이고 여기는 오페라하우스 하면서 서툰 영어로 소개를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하려고 해보기도 하였다. 기계가 낡아선지 삑삑 소리가 나고 약간 경사가 있을 때는 더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힘이 드는 기척을 느꼈다. 예전에 있었다던 인력거 생각이 났다. 쭉 줄을 지어 가는 우리의 행렬은 무슨 시가행진을 하는 것 같고 마음속은 왠지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우쭐하였다. 하인을 앞세우고 말을 타던 양반들이나 가마를 타던 옛날의 관리들 생각이 나서 기분이 묘해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자발없단 말인가?
< 정면에 보이는 것이 오페라 하우스, 거미줄처럼 쳐진 것이 전선줄 >
뚜렷한 능력이 없이 먹고 살기 위해 힘들여 페달을 밟는 저 선량한 사람을 내 하인 취급하다니! 이런 것이 바로 있는 자의 오만이겠다. 내 돈으로 사람을 부린다는 생각을 우리 택시를 탈 때는 하지 못했는데 가난한 나라에 왔다고 그들을 얕보는 마음이 생겨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 가당찮게 못난 소인배가 나였단 말인가? 못난 인간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있게 되면 남을 우습게 생각하게 된다는 말인가?
문득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미국인 회사에 종업원으로 있으면 미국인 사장은 직원을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공존의식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교포들 회사의 종업원으로 있으면 그 사장은 오만하기 짝이 없고 자기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종업원을 멸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들 의식에 아직도 굳게 박힌 봉건의식의 잔재가 아닐까? 평등한 민주시민 의식을 가지지 못한 나 자신에 측은한 생각이 든다. 더욱이 삼십여 년 전 미국의 용병으로 이 나라의 정글에서 목숨을 걸고 달라를 벌다가 죽어갔던 수많은 동포의 원혼들이 아직 저 하늘을 맴돌고 있음에랴. 이 씨클로는 호텔에서 운영하는데 팁2불은 기사가 가진다던가? 어디에서나 못 배우고 돈 없으면 힘든 노동을 팔아서도 어려운 생활을 한다.
(3)
하노이에서도 보고 씨엠립에서도 보았다. ‘아동보호’나 ’자동문‘이라고 적힌 버스가 가고 있다. 처음 그런 걸 본 사람이라면 아마 현지에 있는 우리 교포 학교의 차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쓰던 중고차가 이곳으로 수출된 것들이다. 현대나 기아 등에서 만든 중고 버스가 눈에 많이 띄었다 .
’시흥군’에서 쓰던 쓰레기차도 보였다. 롯데 백화점, 00학원, 00유치원이라는 표지를 그대로 달고 운행하고 있었다. 안내의 말을 들으니 우리 차는 성능이 좋고 그들은 한국차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차면서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 차를 한국차량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표시를 한다고 한다. 어떤 차에 ‘교상육담’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고 한다. ‘교육상담’이라고 쓴 것이 외국의 문자이다 보니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이 터진 일도 있다.
우리나라의 중고차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많이 팔려간다고 한다. 한때 오토바이 도둑이 성행한 것도 그 때문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 전 나는 처음 장만한 100cc짜리 애마 하나를 잃고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 오토바이는 일제부품이 많이 들어가서 참 성능이 좋다고들 하였는데 그것이 중국 어디쯤 가서 굴러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외제 좋아하는 과시욕은 어느 나라에도 있는가 본다.
하기야 사람이 자기가 약할 때 다른 힘에 의지하는 일은 많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이런 일이 심한가? 학창 시절 미군에서 흘러나온 워카(군용 구두)를 신어 보는 것이 우리들에겐 큰 소원이었다. 우리들의 한바탕 가가대소는 나한테는 드디어 씁쓸한 웃음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 우리말을 더럽히고 있는 영어를 보아라. 마누라보다는 와이프가 더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네 오염된 의식구조를 생각하면 정말 슬퍼진다. 요새는 여행 대신에 투어란 말을 쓰는 걸 보고 우리는 정신적으로 막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원정출산까지 일어나는 판이고 보면 동남아의 이런 일들은 어쩌면 차라리 애교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