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돌문화 역사에 피어난 천진스런 돌사람
8. 돌문화 역사에 피어난 천진스런 돌사람
트레비 분수
로마 시내의 트레비 분수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상가 건물들이 이어지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사람 사는 모습을 보려고 두리번거리는데 길가에 난데없이 흰 석고상이 하나 섰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아이구머니나! 이런 일이 있나? 갑자기 그 석고상이 조금씩 옆으로 자세를 트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가만히 보니 생사람이 흰옷을 입고 흰 구두에 온 머리칼과 낯에 흰 칠을 덮어쓰고 석고상처럼 서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람석고상 밑에는 바구니에 동전들이 수북 담겨 있었다. 너무나 처음 보는 일이라 모두를 신기하게 보고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지기도 하였다.
내가 우리 일행들을 불러오자 그들은 모두 흥겹게 웃으면서 농담을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그때 장난스런 마음이 번뜩 들어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랬더니 이 돌사람이 나를 잡아끌어 안고는 뺨을 비비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으라는 표정을 하며 야단이었다. 참으로 당황스럽고 우스워서 어쩔 줄 몰랐다. 이것은 내가 이 번 여행에서 본 것 중 가장 구경스러운 장면으로서 그 생각이 날 적마다 쿡쿡 터지는 웃음과 함께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누구였을까? 나는 그만 생각이 나지 않아 그 이야기를 안내인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묻지 않은 것이 더 나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를 거지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행위 예술가라고 하기도 하였다. 만약에 그가 일년 내내 그런 우스꽝스런 짓을 한다면 거지에 분명하다. 그런데 그 세련된 모습이 추한 거지의 모습은 아닐 것 같았다.
노천카페의 연주자들
로마의 광장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노천카페에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대학생인 듯이 보이는 처녀가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바구니를 갖다 놓고 기타를 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거지가 그렇게 어렵게 돈을 벌 일이 있을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술과 대학생이라고 생각을 해 버리고 싶다. 그것이 구경꾼인 나로서는 편리하고 즐거울 수 있는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석조문화에서 삭막함을 느끼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나그네한테는 그의 행위가 훈훈한 일화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석조문화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적인 행위를 그냥 단순한 우스갯거리를 넘어 훌륭한 예술 행위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수 분 동안이라 하지만 석고상으로 위장을 하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모양을 해 보일 수 있지만 단 하나의 허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눈동자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고정시켰지만 그 눈마저 흰 칠을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눈은 코나 귀 그리고 손가락이나 다리와는 그렇게 다른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의 몸뚱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눈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말로는 남을 속일 수 있어도 눈은 사람의 마음을 속일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