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4개국여행기

20. 무시무시한 지하묘지에 들어가다

저 언덕 넘어 2006. 11. 13. 07:15
 


          20. 무시무시한 지하묘지에 들어가다


                     (1)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는 읍내 들머리의 산언덕에는 성당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높다란 건물의  지붕에는 첨탑이 솟아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저녁해가 넘어갈 때는 거기서 은은한 종소리가 멀리 퍼져 울려오곤 했다. 얼굴이 붉고 온통 털북숭이인 프랑스인 신부가 커다란 체구에 우리가 처음 보는 신기한 오트바이를 타고 흙먼지를 날리면서 달려오곤 했다. 실은 백 리도 안 되는 거리지만 그때의 내한테는 아득히 먼 나라일 것 같은 안동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온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우리는 또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까만 옷을 드리운 예쁜 수녀가 걸어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이것이 기독교에 대한 내 첫 경험이다. 그 뒤 교회(신교)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주일 학교를 한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서 노래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때 사탕을 얻어먹은 달콤한 기억은 있으나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생각은커녕 그 일로 교회를 다닌 적은 없다. 부모님이 말렸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위 -  로마의 성 바울 성당의 지붕 (부분) ,  아래 -  파리의 노틀담 사원

 

  서양의 도시에는 성당이나 교회가 흔하다. 교회나 성당을 빼고 서양의 도시를 말한다는 것은 영혼을 빼고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어디서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들이 고딕식 첨탑이나 비잔틴식 돔 지붕을 이고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 웅대한 건물들을 겉에서 보기만 해도 이교도인들마저 머리가 숙여지고, 더욱이 거룩한 성화와 뭇 숭엄한 성인들의 조각상과 아름다운 모자이크나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할레루야’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법하다.

 

                     (2)

 


   로마의 외곽지에 많이 널려 있는 지하묘지 카타콤배에 들어간다. 파리에는 하수구 관광이 있다고 하더니 묘지에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다니! 입구에 들어 계단을 내려가니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그 안 널따란 광장에 지하성당이 조성되어 있다. 폭이 1미터, 높이 2미터도 안 되는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간다. 캄캄한 땅속에 으슴프레한 조명이 더욱 음산한 기운을 돋운다. 미로처럼 여기저기로 길이 통하고, 또 계단이 있어 지하 10내지 20미터로 계속되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고 한다. 그 통로들의 곳곳에 있는 조금 넓은 구멍에는 초기의 교황과 성인들 같은 지도자급 묘소가 있고, 좌우벽면에 무수한 구멍이 관 크기만큼씩 층층이 뚫려 있다. 요새 아파트 같다. 정(釘)이나 곡괭이 같은 연장으로 찍어내고 파내어 만들었다. 잘 부서지는 흙이다.

  

                                           지하묘지의 음산한 통로

 

  그 구멍에 시체들을 두었다고 한다. 작은 구멍은 어린이들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시체는 없는데 안내원은 거기 있는 흙을 손가락에 묻혀 혀끝에 대 보이면서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시켰다. 소름이 끼친다. 쏴한 유황냄새가 난다. 흙 속에 유황 성분이 많아 오히려 시신에서 나오는 역한 기운을 없애고 묘지를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갖가지 상념과 환영이 떠오르는 묘지 안에서 쫓겨 나오듯 밖을 나오니 빛이 더욱 밝게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란 죽어서나 들어갈 것이지…, 눈을 뜨고는 지하도를 통과하기도 싫은 법이다.


  <그리스도교는 유일 절대신인 하나님 때문에 다른 종교와 타협할 수 없다. 따라서 타국에 들어갈 때는 국가권력의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예수는 동포인 유대인에게 미움을 사고 반역죄의 명목으로 총독 빌라도에게 처형되어 최초의 수난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전도의 길을 떠나 로마로 들어간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차차 유대인의 민족적 기반을 떠나  세계의 종교로 발전한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에 대한 예배를 거부하자 황제들은 박해를 하여 교인들은 화형, 십자가형, 참수형, 맹수와의 격투형, 유형 등을 받고 처녀는 사창가에 끌려간다. 순교자가 많아질수록 ‘그리스도교의 피는 씨앗’이 되어 새로운 신자도 늘어간다. 로마제국이 쇠퇴해 가자 황제들은 국력 재건을 위해 로마의 신들에 대한 예배를 강조하게 된다. 결국은 제국 전체에 걸친 조직적인 박해로 순교자는 더욱 늘어간다. 그러다가 323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전제국을 독재하에 두면서 로마 제국의 공인 종교로 인정하게 되고 수세기에 걸쳐 숱한 순교자의 피를 흘린 박해는 마침내 끝나게 된다.> 

  

                                      지하묘지 벽면에 있는 미술품

 

  이런 지하묘지는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초기 기독인들에게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이 지하묘지가 성행했다고 한다. 게르만 침입 후 이런 풍습이 없어져서 그 존재조차 모르다가 16세기 초에야 발견되었다고 한다.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지하교회였는지 단순한 묘지였는지 많은 것이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한다. 하여튼 무엇이든 햇빛을 받을 처지가 못 되면 지하로 숨어 들어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3)

 

  내가 이 지하묘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그 묘지 속에서 인간 존재와 종교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스무 살 전후부터 지금까지 늘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를 한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죽어 보지 않고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한편, 죽은 뒤에 어찌 죽음을 알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더욱 난감해진다. 내 생각에는 살아있는 자에게 가장 절실하고 큰 문제가 죽음에 대한 문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한 번 들이쉰 숨을 내쉬지 못하거나, 내쉰 숨을 다시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결국은 살아 있을 때 죽음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하여튼 내가 이 지하묘지를 보면서 느낀 것은 종교란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종교를 위해 죽었다. 그러면 분명 종교는  ‘지금 여기’ 단 하나뿐인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들은 현세보다는 사후의 세계를 더 귀한 가치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긴다. 그렇다면 순교자는 ‘지금 여기’보다는 ‘내일 저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 서양인들의 종교의 현황은 어떤가? 프랑스와 로마(98%)에서는 대부분 카톨릭을 믿고 영국에서는 국교인 성공회와 카톨릭과 개신교가 섞여 있고 독일에서는 카톨릭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세력이 강하다. 그런데 이들 나라마다 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점은 대부분의 신자들은 평생에 세 번 교회에 간다고 한다. 태어나서 영세를 받을 때와 결혼식 때와  장례식 때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들은 십자가를 보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성호를 긋는다고 한다. 그 숱한 옛날의 순교자의 후손답게…, 그러나 실제 그들의 생활에서 종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가 불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절에는 잘 가지 않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불자들의 모습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영국의 경우 교회를 참신한 건축 양식으로 꾸미고 방송용 스튜디오를 마련하는 등 여러가지로 민중의 마음을 끌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도시안에 있는 서양인들의 공동모지 - 프랑스 도시 라데팡스에서

 

   종교가 불변의 절대 진리라면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이나 태도가 같아야 한다. 지금 기독교는 서양에서는 과거의 영광과는 달리 쇠퇴하고 동양에서는 흥성해지고 있다. 그리고 불교는 동양에서는 쇠퇴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신비한 종교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는 숱한 종교가 있다. 그렇다면 종교는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서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철학적 윤리적 문화적 산물인가? 아니면 인간의 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인식인가? 참으로 어떤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종교를 믿는 것은 생선에다가 소금을 치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라고…. 소금을 친다고 해서 생선이 안 썩는다고 할 수도 없지만 소금 때문에 생선은 좀 더 오랜 동안 썩지 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금의 양이 지나치면 생선을 버리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