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평화기념공원에서
6. 평화기념공원에서
① 원폭돔
우리가 히로시마에 온 것은 평화기념공원을 보는데 목적이 있었다. 날씨는 한껏 맑았고 더웠다. 공원은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원폭돔이었다.
폭심지에서 160미터에 있었던 이 건물은 그 때의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간직한 채 6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천장이 앙상한 철골만 남고 시멘트벽이 허물어진 채 남은 건물 앞에서 나는 그날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1945년 8월 6일 새벽 사이판 기지 미 공군의 폴 티베츠 대령은 B-29 폭격기의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4톤의 우라늄 원자폭탄을 실은 폭격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달려 이륙한다. 그로부터 6시간 남짓, 티베츠 대령은 앞서 출발한 기상관측 항공기와 두 대의 다른 B-29로부터 히로시마의 날씨가 무척이나 좋다는 연락을 받는다. 잠시 후 히로시마 시내가 드문 뭉게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나 이런 곳에 폭탄을 투하해야 된다니 그러나 나로선 어쩔 수 없어 하면서 눈으로 직접 목표지점을 확인한다.
8시 15분 티베츠는 9600m 상공에서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애칭을 가진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는 즉시 선수를 돌려 고속으로 현장을 빠져나간다. 43초 뒤 리틀보이는 지상 600m에서 빛을 발했다.
순간적으로 밝은 섬광이 번쩍이면서 초속 90미터로 날아가는 충격파는 반경 2km 내의 거의 모든 건물들을 쓰러뜨리고, 길을 가던 사람들을 날려버렸다. 30분 뒤 리틀보이는 열폭풍을 일으키면서 온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볏짚과 나무로 지은 도시의 건물들이 열폭풍 앞에 무너졌다. 불에 덴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너무도 다급한 나머지 강물로 뛰어들었다. 조금 뒤 강물 위에는 숱한 시신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곧이어 방사성 낙진과 함께 검은 비가 내렸다. 불바다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그 비가 대기와 땅의 온도를 식혀준다는 생각에 빗물에 몸을 맡겼다. 그들은 그 검은 비가 유전자도 바꿔놓는 방사성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시체들이 떠다니던 강물은 그날의 비극을 모르는 듯 푸르고 그 폐허 위에 또 다른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당시 히로시마의 인구는 약 31만명. 그 중 9만 내지 14만명이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 4개월 내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살아남은 자 역시 방사선 피폭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 원래는 히로시마 현의 산업장려관이였던 이 건물은 체코출신의 건축학자 얀 레츠르의 설계로 만들어진 유럽풍의 건물로 호평을 받았다. 원폭투하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천정에서 불이 붙어 전부 소실되었고, 안에 있던 사람들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1966년에 히로시마시에서는 원폭돔의 원형보존을 결정하고 모금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2회에 보존공사를 행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히로시마를 상징하는 건물로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후세인들에게 평화에 대한 경각심을 키워주고 있다. 1996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위의글은 과학동아에서 배경지식을 구하였다.
이 건물만 옛날 그대로 있을 뿐 공원은 너무 아름다웠다 푸른 강물로 둘러싸인 이 공원은 갖가지 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언제 그런 비극이 있었느냐는 듯 지극한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그날을 상상하는 나의 뇌리에는 몸서리치는 환상이 가득 차오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