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참 이색적인 신사 구경
14. 참 이색적인 신사(神社) 구경
일본 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사일 것이다. 근래에 야쓰쿠니 신사(靖國神社, 야스구니진쟈)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수상의 행위가 한국과 중국인들의 비난을 받았고 국교가 정상화되지 못하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신사라는 것은 무엇인가?
< 神社/じんじゃ)는 신토(神道 일본 고유의 종교)에서 신을 모시는 종교시설이다. 교회나 모스크 등 단순히 예배하기 위한 예배당이나 가르침을 넓히기 위한 포교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현재는 일본에서 참배나 결혼식 준비 등을 위하는 경우도 많지만 원래는 그 신사에 머무는 신을 모시는 시설이었다. 또, 도시에서는 토지 때문에 신사를 빌딩 옥상에 모시기도 한다.> - 위키 백과에서 인용
신사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먼저 대낮에 본 마쯔에 신사의 모습을 보자.
위 - 마쯔에 신사 안내판, 아래 - 신사 입구의 문인 도리이
아래 - 물과 바가지가 놓여있는 부속 건물. 그 아래는 신사를 지키는 개의 석상
안내판을 지나 신사의 입구인 도리이가 있다. 이 문은 현실 세계와 신성한 세계를 구분하는 문이다. 문이란 항상 어떤 경계를 가를 때 필요한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문과 지옥으로 가는 문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어느 문 앞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는 문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의 길이 결정되는 것이다.
경내에는 이 신사를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개(고마이누)의 석상이 있다.아라고 불리는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고 운이라리고 하는개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 개의 석상은 이끼가 끼고 마멸되어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이 신사의 지킴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 온 모양이다. 하기야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으니까.
비록 남의 나라의 신전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간다.
본전 앞에 있는 초주야라는 천막 안에는 물과 바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손을 깨끗하게 씻고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위는 초주야, 아래는 참배를 하는 본전
여기서 일본인들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자.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일본은 신의 나라이다.그들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지혜를 넘어 인간에게 많은 은혜를 주는 산과 숲, 강과 바다, 동물과 식물 등 자연계의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고 외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신들의 숫자가 물경 800만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을 모시는 신사(진쟈)를 곳곳에 만들어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 협의하기도 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계보는 서양의 신화와 또 다른 동양의 신화와는 달리 현재의 황실을 비롯해 많은 씨족의 기원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 밖에 읽은 일이 없는 나로서는 일본의 신화를 한 번 읽어봐야 알 일이다.
히로시마에서는 밤에 소공원에 있는 작은 신사를 보았다.돌아오는 길에 밤에 하까다에서 본 신사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채색이 아름다운 그림과 조형물들이 있었지만 뜻은 알 수 없었으나 매우 이채로웠다.
아마도 그 복잡한 신들을 소재로한 신화를 미술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밤에 불빛 속에서 드러난 그것들은 상당히 기괴한 모습으로 다가왔는데 어쩌면 신화의 재현인 듯한 미술품을 캄캄한 어둠을 배경으로 한 조명아래서 보니 더욱 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배경지식이 없이 보는 관광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라고나 할까?
신사 이야기는 일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은 그들의 신도를 조선에 침투시키고 총독부는 신사의 건립을 계속 장려하였다. 내선일체의 조선 동화정책과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더욱 불어나 1945년 6월 당시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보다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이 세워졌다. 이것도 부족하여 각급학교 등에는 ‘호안덴[奉安殿]’을 세우고, 각 가정에는 ‘가미다나[神棚]’라는 가정 신단(神壇)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조선신궁 참배자만도 1940년에 약 215만 9000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000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민족혼 말살 정책으로 조선의 국토가 더럽혀지고 우리의 얼이 오염되어 갔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개인적 조직적 신사참배 거부항쟁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일제 경찰은 이들을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치안유지법 ·보안법 ·불경죄 등을 적용하여 탄압하였는데, 이렇게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투옥된 이는 대략 2천 여 명에 이르고 2백 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아,우리 민족의 얼마저 잃어버려야 했던그 아픈 수난의 역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