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쇼바 먹다가 낭패당한 일
15. 쇼바 먹다가 낭패당한 일
우리는 일본에 가면서 여비를 줄이려고 음식 준비를 해 가지고 갔다. 외국여행이라는데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워낙 비싼 음식값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던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한국인 일어교사가 비워 둔 집에 가서 묵을 수 있기 때문이고 장 선생이 일본 사정을 너무 잘 아니까 말이다. 쌀과 라면과 김치와 고추장 등을 준비했다.
위 - 한적한 국도변에서 점심을 짓고 있다. 아래 - 밥솥쪽으로 부는 바람을 막고 있다.
위 - 히로시마의 한 여관방에서 밥을 짓고, 아래 - 일본어 교사 댁 주방
한가한 국도변 휴게소 부근에서 점심을 지어먹고 여관에서 주인 몰래 밥을 지어먹기도 하였다. 어쩌면 조금은 어색했지만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먹는 일에 무슨 체면이 대수냐 말이다.
하까다 산본 여관의 깔끔한 일본 정식상
물론 음식점에서 사 먹기도 하고 여관에서도 사 먹었다. 사실 음식이야 제가 평소에 먹던 음식이 언제나 제일 아닌가? 일본인들이 아무리 음식문화가 발달하고 미각이 뛰어나고 그들의 음식이 맛깔스럽다고 해도….
위, 아래 - 히데도시 선생댁에서 나온 다과상 - 음식차림도 하나의 예술이다
그들의 음식은 아주 양이 적고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산본 여관에서 먹은 정식은 아주 입맛에도 맞았고 우리네 음식과도 많이 같았다. 일본 음식은 양이 너무 적어 우리는 불만이지만 원래 동물들조차 포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안다면 우리의 포식문화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불교는 생활 속에 철저하게 스며들어 절제와 검박한 그들의 생활태도로 굳어졌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과식은 독이라고 한다. 요새 와서 반식이다 하면서 음식 덜 먹기가 유행이라지만 우리 역사에 포식문화가 언제쯤 살아질까? 아니 나부터 좀 고쳐야 한다. 나는 아직도 음식 앞에 앉으면 이런 생각을 다 잊어버린다.
마쯔에 구경을 마치고 이제는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 하까다에서 하루만 더 자면 부산항으로 들어가게 된다.
위- 히데도시 선생의 부인이 식사에 앞서 선물을 주고 있다. 아래는 히데도시가의 사람들
위 - 두 남매와 , 아래 - 오른쪽이 두 부부
히데도시 선생은 우리가 마쯔에를 떠날 때까지 배웅을 한다. 혼자서 배웅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모두 불러내어 점심을 샀다. 우리로 치면 가든 쯤 되는 식당이다. 식단을 보일 때 나는 쇼바를 청했다. 나란 사람은 원래 왜식요리를 많이 먹어보지도 못한 촌사람이라 일본요리에는 쇼바라는 우리의 국수가 있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문제의 쇼바
조금 있으니 음식이 나왔다. 양념한 간장을 면에 섞어서 먹는데 도저히 싱거워 안 되었다. 식탁에 있던 소금을 더 넣어도 간이 되지를 않았다. 후추인지 무엇인지 또 넣었다. 아무리 해도 간이 되지를 않았다. 히데도시 선생은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의 부인도 이상한 눈으로 보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억지로 다 먹긴 했지만 호의로 산 점심이 나에게는 아주 고역이 된 셈이었다. 쇼바를 시킨 다른 일행들도 어디 달랐으랴?
괜히 아는 체하고 먼저 주문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하기야 망신이 아니라 문화충돌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사람의 일이란 바르기만 하고 잘 하는 것만이 있어도 안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궤변이고 자기 합리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