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모국어를 잃어버린 사람 金山 正男 씨
20. 모국어를 잃어버린 사람 金山 正男 씨
하까다항에서 돌아오는 배를 타자면 2시간여를 기다려야 했다. 각자 관광을 하는 시간이다. 주위의 명소로는 후쿠오카돔, 후쿠오카 타워, 모모치 해변공원이 있다고 했으나 나는 집사람과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오호리 공원에 가려고 했다. 하릴없이 대합실에서 기다리기도 그렇고 시내에 가서 백화점 구경이나 저자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그것이 더 났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조건 택시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차를 탔다. 나는 오호리 꼬엔에 가자고 하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기사였기 때문에 말을 걸어보았다. 내가 일본말은 전혀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하였으나 이 기사는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다. 아니 이 기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어 발음을 잘 못해서 우리가 하는 발음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트럭이라하면 모르고 도라꾸라고 해야 알아듣는 형편이라고 보면 된다. 차라리 한자를 쓰면 의사소통에 더 나을 것이다. 나는 어쨌든 그와 의사소통을 하려고 힘써 보았다. 그래서 그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았고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는 재일동포 2세라고 하였다. 반가웠다. 자기 어머니가 아직 이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잠시 뒤에 공원에 도착하였다. 돌아갈 때 다시 그의 택시를 타기로 하고 약속시간을 맞추었다.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호숫가 2킬로미터의 주변을 따라 3000여 그루의 벚나무가 둘렀다고 한다. 이 못은 원래 후쿠오카성을 보호하기 위해 하카다 만으로 들어가는 강물을 이용해서 만든 해자였다고 한다. 현재의 못은 그 뒤에 중국 항저우의 유명한 서호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4개의 섬이 있고 거기까지 연결한 다리가 있는데 교각이 매우 아름답다. 숱한 나무들이 한여름의 햇볕을 막아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호수의 물도 맑았고 물 위에는 새들이 날고 맑은 물을 헤엄치는 비단잉어들이 보였다. 모처럼 가족여행 같은 안온함을 느끼면서 걷기도 하고 나무 그늘 밑에서 쉬기도 하였다. 벌써 떠나갈 시간이다.일본인들은 시간을 어김없이 지킨다기에 서둘렀더니 약속한 시간에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다시 나는 이야기를 시도해 보았으나 깊은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이도 무척 안타까운 눈치였다. 핏줄이 같은 동족이면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느끼는 그 난감함과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있다가 그는 자기 어머니한테 전화를 돌렸다. 손전화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음성이 무척 살가웠다. 정겨운 전라도 말투였다. 그녀는 혹 어떤 대목에서는 한국말 표현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우리말을 술술 잘 했다. 고향이 전남 광주라고 했다, 황산 김씨라고 했다.고향에는 몇 년 전에 한 번 다녀갔노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조선사람이 많이 있고 그들과 어울려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마치 친척이라도 만난 듯 고생한 얘기며 지난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가 아드님과 대화를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하니 아들들이 일본인 학교를 다녀서 조선말을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더라는 말도 했다. 사뭇 얘기를 하다보니 벌써 여객터미널이었다.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하였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할머니에게 과자라도 사드리라고 하면서 적은 돈을 건넸다. 그가 사뭇 사양하더니 억지로 받아들였다.도저히 그냥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날 일어났던 일을 아직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다. 그는 아마도 다시 나를 보지 않는 한 그 일을 다시는 기억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난다. 나는 외국에 나가 있는 동포2세들이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백 년 이 백 년이 지나가도 그들 모국어를 잃지 않는다는 화교들을 우러러 생각한다. 말을 잃어버리면 조국도 잃어버린다. 그의 생각에 남아있는 조국은 박제화한 관념어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난다. 언제 다시 후쿠오카에 갈 수 있을까? 거기서 시간이 나면 그에게 전화라도 한 번 꼭 해야 되겠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할머니를 한 번 꼭 찾아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