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러시아(연해주)기행문

13. 지금도 눈에 선한 아무르강의 물결

저 언덕 넘어 2006. 11. 2. 05:07
 

13. 지금도 눈에 선한 아무르강의 물결


 

 

  우리가 아침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곳은 인스뚜르트 호텔이었다. 시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창문을 통해 내려다 뵈는 경치가 시원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멀리 큰 건물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사방이 푸른 숲에 둘러싸인 녹지대였다. 또 저 멀리 아무르강이 흘러가고 그 물결 너머로는 멀리 아득한 평원이다. 눈이 모자란다.

 

  

  오후에 우리는 아무르강변으로 갔다. 강변 유원지에는 강가로 잘 단장된 너른 터가 있고 위락시설이 깨끗하다. 그리고 저 멀리 강가에서 강수욕을 즐기는 반나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뒤로는 낮은 언덕배기가 숲들에 덮여 이어져 시내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언덕 높은 곳에는 번쩍번쩍 황금빛이 나는 양파모양의 지붕을 한  정교회 성당의 십자가들과 다른 건물들이 멋진 자태로 고즈넉이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에는 밝은 뭉게구름이 일어있고  맑고 잔잔한 물결들이 햇빛을 동무삼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위쪽으로는 내려오는 한 줄기 너른 강물 너머로 아스라이  높은 산맥들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또 다른 저쪽에서 아득한 평원을  또 하나의 강물이 내려오고 있다. 좁고 맑게 흐르는 게 우수리강이고 넓고 탁해 보이는 쪽이 아무르강이라고 한다. 두 강물이 여기서 합수하여 하바롭스크 옆구리를 끼고 유장하게 흘러간다.


  

 아무르 강은 멀리 서쪽 몽골고원과 만주의 동북평원 일대에 근원을 두고 남동러시아의 산악지대를 흘러 이 하바에서 우수리강과 합류하여 거대한 습지와 평원을 이루면서 사할린 앞 바다를 지나 오츠크해로 흘러들어가는 세계 10위의 면적을 가진 거대한 강이다. 발전능력을 재는 포장수력을 따져보면 우리 남한의 10배가 훨씬 넘는 큰 강이다.

 

  좁은 나라에서 살아온 나는 이런 강을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길이로 보면 4350킬로(만리가 넘는다)로 세계 8위라고 하니 낙동강 칠백리야 무슨 비교가 되겠는가 말이다. 지도상으로 보아 아무르강에서도 내가 섰는 이 하바롭스크 지역이 이 강에서도 아주 너른 유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좁은 내륙에서만 살아온 나는 이 끝없이 너른 평원에서 크고 튼튼한 날개를 얻은 새가 되어 높이높이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어진다.

 

  

                                  

                               < 위-강물 위의 뗏목들, 아래-뗏목 주위의 풍경 >

 

  

  내려갈수록 강변의 경치는 빼어나다. 산책길이 나 있는 공원을 이루고 있다. 그 위로는 영광의 광장의 건물들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보였다. 한참을 내려가니 강 가운데  우람한 원목들을 실은 뗏목과 바지선이 보였다. 저 상류 어디에선가 깊은 산록에서 베어낸 통나무들이 강물을 따라 내려온 것 같다. 더 밑으로는 아래는 철교이고 위에는 차들이 달리는 이층 다리가  멀리 보인다. 그리고 강물은 흘러흘러 어디론가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아무르강의 물결 ’이란 민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 강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강 유역에서 살던 황새가 우리나라 천수만까지 오고 저 남양을 건너 뉴질랜드까지 이동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또 중국 송화강이 산업폐수로 오염되어 이곳까지 걱정이라는 사실도…


  이렇게 너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과 우리처럼 좁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은 같을까? 그것은 틀림없이 아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옛날의 이야기다. 아주 깊은 산골에 사는 소년이 말로만 듣던 서울을 간다. 그 마을을 떠나 밤이 되었는데 저만큼 멀리 인가의 불빛이 모인 도시에 이르렀다. 저기가 서울인가하고 동행하는 이에게 물었다. 사실 거기는 그가 사는 군의 읍소재지였다. 그에게는 그곳이 서울로 보인 것이다. 좁은 곳에만 살면 마치 낮은 풀숲에서만 사는 텃새처럼 높은 하늘을 날아 만 리를 이동하는 철새의 기상을 얻을 수 없다. 그렇고 보면 나도 저 소년과 다를 바 없는 성장기를 지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