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겨움에 눈을 뗄 수 없는 러시아의 산하
다시 러시아 땅을 밟은 것이다. 항구에서 지리한 통관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지난 여행때보다는 더 좋은 버스였다. 삼성전자에서 사용하던 중고차였다. 질척질척한 길을 벗어나자 또 그 푸른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눈에 익은 풍경이었지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쓴 기행문을 인용하자
<길가에는 푸른 풀밭들이 드넓게 펼쳐졌다. 멀리서 보면 목초지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 보면 그냥 가꾸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이었다. 그런 풀밭들이 한참을 이어진다. 들꽃이 아름답게 무리지어 피어난 곳도 있다. 그런 풀밭에는 키가 별로 크지 않은 나무들이 무리지어 혹은 군데군데 서 있기도 했다. 양이나 소 한 마리 없는 걸 보면 목장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근처에 마을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지역은 과거 집단농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황무지가 된 곳이다)
그리고 그 풀밭들은 구릉지로 이어지면서 숲이 한 떼의 띠를 두른 듯 이어진다. 별로 오래된 숲은 아닌 것 같다. 다시 그 위로 나지막하게 산들이 펼쳐진다. 그 산들은 완만하게 조금씩조금씩 기어오르다가 또 더욱 더 느린 걸음으로 내려오는 능선들의 연속이다. 그 산에도 풀이 덮고 있다. 그 풀밭 사이로 군데군데 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점점이 또는 무리지어 무늬를 놓듯 펼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능선을 깔고 누워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는 듯한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푸르름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광에서 나는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한 풀밭들이 이어지다가는 군데군데 물이 찬 웅덩이 같은 습지가 보이는가 하면 너른 들판을 버드나무숲들이 탐스럽게 구불구불 이어가고 있다. 그런 곳은 시내다. 모래가 깔린 작은 시내가 사행하천을 이루어 흘러가는 곳엔 으레 북실북실 탐스러운 울창한 그 버드나무숲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마치 시냇물을 따라서 호위하듯 멀리멀리 이어지고 있다. 우리 땅에서도 가끔은 볼 수가 있는 모습이지만 우리의 그것이 단편의 풍경이라면 이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장편이다. 이런 주위에도 논은 보이지 않고 사람의 경작의 흔적이 없는 풀밭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의 자취가 별로 보이지 않는 이곳은 버려진 땅인가? 얼마나 정겨운 산하인지 한 일 년쯤은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한 곳에 이르니 녹슨 철로가 보였다. 북한에서 이어지는 철로라고 한다. 나진 선봉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어지는 철로일까?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도 북한에서 러시아로 철로는 운행되고 있는 것일까? 버스는 그렇게 좋지 않은 포장도로를 반 시간도 훨씬 더 달려그라스키노에 이른다. 작은 도시다. 폐가가 많다. 작년에 서있던 안중근 단지 동맹 기념탑은 헐려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 달리니 왼쪽으로는 호수가 보인다. 아마 두만강 접경지대와 가까운 곳인가? 다시 더 달리니 오른쪽으로는 멀리 높은 산맥이 펼쳐진다.
<가끔씩 상수리나무류가 군락을 이룬 지역>
우리는 첫 번째 국경수비대에 도착하였다. 또 그 예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국경수비대를 둘러싸고 있는 허술한 철조망들>
거기에는 다른 차들도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트럭 기사들이 더위에 벌거벗고 길가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앉아 있다. 아랫배가 나온 모습이 만삭이 된 황소개구리 같았다. 그들은 이미 이 기다림에 면역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벌거숭이 러시아 운전 기사들>
거기에는 다른 차들도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트럭 기사들이 더위에 벌거벗고 길가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앉아 있다. 아랫배가 나온 모습이 만삭이 된 황소개구리 같았다. 그들은 이미 이 기다림에 면역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우리도 내려서 길가 수풀 속에 소변을 본다. 아주 바로 가까이에 자작나무 몇 그루가 정답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나무껍질이 희어서 상당히 귀티가 나 보인다. 역시 러시아 숲의 귀공자는 단연 자작나무다. 우리는 더위 속에서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렸다.
다시 출발하자 이번엔 왼쪽으로 높은 산지가 나타난다. 아마 저 멀리 북한 땅이 아니겠나만 이쪽 지리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답답하다. 여행이란 친절하고 알뜰한 길라잡이가 가는 길 내내 안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뒤로 보이는 것이 러시아 세관>
다시 우리는 러시아세관이 멀지 않은 곳에서 또 기다렸다. 여기에는 여자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여기서도 한 40분이 지나서 우리를 가로 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여기가 러시아 세관이었다. 통관절차가 끝이 난 것은 우리 시각 13시 55분으로 자루비노항에서 출발한 뒤 4시간만의 일이었다.
버스로 한 시간 남짓 되는 러시아 땅을 통과하는 데에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렸다. 뭔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보기에는 참 딱하다. 러시아란 나라는 너무나 제 체구가 커서 잘 움직이지를 못하는 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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