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 거리에서 나는 러시아의 문화를 좀 느끼고 다시 들어간 입구로 나와 붉은 광장을 가고 있다.
도심으로 들어가다가 오른쪽 건물에 커다란 '기아 자동차' 간판을 보았다. 외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광고판을 보면 우리의 만만찮은 국력을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국내에서 별로 좋지 못하게 느꼈던 대기업에 대한 생각은 불현듯 사라지고 입이 그만 귀에 걸린다.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 쉼터에서 한가하게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과, 혼잡한 시간을 떨치고 독서 삼매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1.크레믈린 광장에서
기록을 보면서 우선 알아보자.
15세기말경 크렘린 성벽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져 오랫동안 러시아와 소련의 정치사·사회사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7세기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어로 'Krasnaya'('붉은색'이라는 뜻)는 '아름답다'는 뜻도 있다. 줄곧 장터로 사용되었으며 종종 교회, 모스크바 최초의 공공도서관 및 대학·대중극장·인쇄소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붉은 광장은 처형·시위·폭동·열병·연설 등의 무대가 되어왔다. 크렘린의 정동쪽, 모스크바 강의 북쪽에 있다. 1812년 크렘린과 광장 사이에 해자를 둘렀다.
광장의 북쪽 끝에는 1875~81년에 건립된 국립역사박물관이 있다. 남쪽 끝에는 1555~60년에 건립된 8개 탑이 있는 상트바실 대성당(처음엔 '중재의 성당'이라고 했음)이 있다. 동쪽에는 국영백화점인 GUM이 있으며, 서쪽에는 1930년 완공된 레닌 영묘가 있다. 레닌 영묘 주위의 다른 묘들은 크렘린 성벽 측면에 맞닿아 있다.
1930년 광장을 포장한 자갈을 석판으로 바꾸었으며, 1818년 중앙에 세운 미닌·포자르스키 기념비는 열병 및 시위를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 상트바실 대성당 앞으로 옮겼다. 노동절(5. 1)과 10월혁명기념일(11. 7)의 연례 행렬은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가장 유명한 행사이다.(다음 백과 인용)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한다. 이 문의 이름은 보스크레센키문이다. 이 문 옆에는 다른 도시로 가는 기점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 그림의 붉은 건물은 국립 역사 박물관이다.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알려고 하면 박물관 구경을 해야 하지만 우리 같은 짧은 시간의 관광투어에서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다.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국립역사 박물관 광장에는 큰 동상이 하나 있다. 말을 타고 위엄이 서린 표정으로 당당한 자세를 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코프 장군이다.
레닌 영묘쪽 광경을 보자.
‘화재의 광장’, ‘교역의 광장’으로 알려져 있는 이 붉은 광장의 중심에는 화강암 건축물인 레닌영묘(위 파란 탑건물)가 자리하고 있다. 레닌의 묘에는 사망한 모습 그대로 방부 처리된 레닌이 잠자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여 혁명을 지도했고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제3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을 창설했으며,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7세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혁명서적을 탐독, 1889년 1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곧 사회민주노동당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고,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열린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레닌은 1924년 1월 21일 저녁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백과사전
우리가 갔을 때는 공사로 인해 들어가 볼 수 없었는데 굳이 거기 들어가서 미라가 된 그 모습을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서 이미지 인용
그리고 나무들이 도열해 선 크레믈린 벽앞에는 스탈린 같은 정치가나 이름있는 군인들 그리고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작가 '막심 고리키'의 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립묘지와 성격이 비슷한 모양이다.
레닌 영묘 건물 뒤에 있는 크레믈린 대통령 궁의 돔 위 꼭대기에는 러시아국기가 펄럭인다. 그 궁안에는 장기집권을 자랑하는 푸시틴 현 대통령이 근무를 하는 곳이다. 나는 그를 한 번 보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 만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그가 내일 쯤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해도 그건 도저히 안될 일이다. 나는 오늘 밤에 이곳을 떠나야 하는 무척이나 바쁘신 몸이기 때문이다.
아마 어느날엔가는 그도 여기에 묻힐 것이다.
광장 한쪽에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듣기로는 악대들의 시연 행사) 군데 군데 포장이 쳐져 있다. 그런데 이 광장의 바닥에 깔린 돌판이 아주 이색적이다. 1930년 광장을 포장한 자갈을 걷어내고 깐 석판이라고 한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타일처럼 빛난다.
닳는다는 것 그것은 얼마간은 세련된 형태로 변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본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다. 말도 그렇다. 달변은 상당히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조금만 도를 넘으면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너무 수식이 많고 세련도가 지나치면 그 글의 생명력을 잃을 수가 있으니까 항상 조심할 일이다.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무엇이나 그렇다.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가면서 광장의 주변을 담아 본다.
2 더욱 가까이 보이는 굼백화점
< 19세기 말에 건설된 굼 백화점은 모스크바의 또 다른 상징이다. 유리 지붕과 정면부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구조물은 6500평방미터에 달하는 지대에 다리와 보도로 연결된 다섯 개의 평행 통로가 있다. 아라비아의 시장 ‘바자르’를 닮았으며 150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굼 백화점은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상가에 더 가깝다. 공산주의가 절정기였을 때 굼에서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볼프강 쾨펜(Wolfgang Koppen, 1906~)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복도 · 휴게실 · 계단 등지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긴 행렬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여기는 분명 사회주의사회이다. 구매자들 대부분 줄을 서 있는 동안 책을 읽는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61XX12200014
굼백화점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백화점과는 좀 다르다. 양쪽으로 선 긴 건물들의 통로 좌우로 각종 가게들이 들어차 있고, 유리 천장을아치형으로 덮었다. 건물의 디자인이 아름다왔고 화분으로 실내조경을 잘 해서 쾌적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군데군데 조각작품도 잘 설치되어 우아한 분위기를 보인다. 시장이나 상업적 가게들의 집합이라기 보다는
고급 주택들이 서로 연결된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유한 고급 예술가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한 집들을 짓고 사는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굼 백화점을 뒤로 두고 우리는 성바실리 성당을 간다.
3. 성 바실리 성당을 찾아
먼저 성바실리 사원 근처의 스파스카야 탑 (구세주탑)이 보인다.
이 탑은 흰 석상이나 조각이 설치되고 크렘린 안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1625년 큰 시계가 붙여졌고 1935년 루비 별이 장식되었다고 한다.
<이 바실리 대성당(러시아어: 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흐람 바실리야 블라줸너바[*])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그당시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인 이반 4세가 러시아에서 카잔 칸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봉헌한 성당이다. 15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560년 완공하였다. 러시아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탑들은 서로 무질서하게 배열되어 있으나 그 곳에서 조화로움이 보인다.>
(나무 위키에서 인용 )47미터 되는 제일 높은 팔각형의 첨탑이 중앙에 있고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꾸빌라)들이 배열되어 있다. 그 지붕의 모양과 색깔이 모두 다르고 서로 아름답기 내기를 하는 듯하다.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그 사이 4개의 원형탑이 솟아 있어 총 12개의 탑이 있는데, 이는 예수와 12제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이 사는 자연환경을 언뜻보면 단조롭고 색채도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만든 예술품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 이반 4세는 완공된 성 바실리 대성당의 모습에 반해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두 번 다시는 못 짓게끔 건축을 담당했던 '바르마'와 '보스토니크'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보스트니크가 완공 이후에도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무 위키)
아무렴,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예술가의 눈을 멀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사전에 듣기로는 눈을 멀게 했다는 그 말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아마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말을 그렇게 극적으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아니면 실제로 그랬을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 그 뒤 사람들은 그게 너무 끔찍스러운 일이라서 그런 일이 없었다는 말을 또 만들어냈을 수도 있기는 하겠다.(그러나 이 말은 내가 만든 자발없는 생각일 뿐이길 바란다) 어쨌든 러시아인들이 만든 으뜸가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우리는 이제 볼거리 많은 클레믈린 궁전과 아르바트 거리를 보고 다시 붉은 광장에서 또다른 볼거리를 보고 여기를 떠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