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4개국여행기

5. 그 땅에 자라는 풀과 나무들

저 언덕 넘어 2006. 11. 6. 14:28
 


5. 그 땅에 자라는 풀과 나무들


 땅이 얼지 않으니 겨울에도 잔디가 파릇파릇하고 나무들은 아직 잎이 진 채였으나 겨울풀들은 파래서 마치 겨울 아닌 듯하고 밭에는 보리가 파랗고 목초지에는 양들이 보인다. 나폴리 쪽으로 내려가면 채소류가 여름처럼 자라고 군데군데 유채꼿도 노랗다. 나는 어릴 때 서양나라들의 그림이나 사진에서 산에는 눈이 쌓였는데 땅에는 풀이 파랗고 꽃이 핀 풍경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와서 보니 이제 이해가 갔다.

  

  여행지를 가면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과 풍물도 관심거리가 되지만 그곳의 기후나 풍토와 식물 동물들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런던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잔디밭을 살펴보니 냉이류와 민들레들이 많았다. 공원의 성급한 벚꽂나무는 이른 꽃망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수선화는 이미 피었고 팬지꽃들도 아름답게 보였다. 멀리 보이는 수양버들―모양은 좀 우리 것과 달랐지만―은 이미 누른빛을 확실히 띠고 있었다.

  

  

                < 위 - 에펭탑근처에서 본 플라타나스, 아래 - 플랑카루르트에서 본 플라타나스 >

 

 

  도회에서 가장 많이 본 나무는 플라타나스(버짐나무)였는데 런던은 가로수가 거의 프라타나스였다. 파리도 그랬다. 런던의 나무들은 손을 잘 대지 않는 자연 상태였는데 파리의 나무들은 손을 많이 대어 인공적인 냄새가 너무 났다. 특히 프랑크루르트에 가로수에 심은 것들은 얼마나 가지를 많이 쳤든지 정말 옆으로 벋은 줄기가 잘리고 잘리어 정말 볼썽사납게 줄기 끝이 울먹줄먹 상처투성이다. 여름에 그늘이 두텁고 그 넓고 커다란 잎에서 풍기는 후덕한 인상 때문에 우리들도 좋아하는 나무지만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많이 심지는 않는다. 플라타나스들은 대체로 키가 크고 밑둥은 굵지 않고 쭉 뻗어 올라  미끈하고 헌칠하다. 키가 큰 서양 여자들의 각선미를 닮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파리에는 역시 마로니에가 많았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하는 우리 대중 가사  생각이 났다.

  

  소나무들은 런던에서 죽죽 뻗은 춘양목 같은 것이 더러 눈에 띄었는데 키도 크고 굵은 것도 많았다. 로마에서는 조경수로 소나무들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밑가지를 좀 쳐내어서  버섯 모양으로 뭉실뭉실하여 매우 특이한 아름다운 인상을 주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밑가지는 쭉 뻗어 올라가고 위쪽은 우리나라에 있는 반송처럼 펴져서 타원형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고속도로(우리가 흔히 아우토반이라면 고유명사인 줄 알지만 보통명사라고 한다) 주변에서 소나무를 많이 봤는데 저절로 자생한 듯 밀생이 되어서 그런지 굵지는 않고 키가 많이 컸다.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히말라야시이다들도 더러 보였다.

  

  

                        <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본 히말라야시이다와  동백꽃 > 

 

  그밖에 참나무류는 각 나라들에 더러 볼 수 있었고  구상나무들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란 공원에서는 연분홍꽃을 피운 동백 한 그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겨울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껴 좋아하게 된 동백을 여기서 발견하다니…. 그러나 우리가 간 다른 곳에서는 동백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대나무들도 가끔씩 이곳에서 눈에 띄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좀 많이 보았으나 추위에 얼어죽은 듯 말라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작나무들이 더러 보였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고속도로 가에 우거진 숲들에서 줄기가  희디흰 자작나무들이 차창을 자주 스쳐가서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군데군데 서 있는 자작나무는 좀 귀족적인 풍의 나무로 느껴졌다.

 

  그리고 런던이나 로마에 근교에서 많이 본 나무는 미루나무류였고 이태리에서는 포폴러도 많이 보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리포풀러 생각이 문득 났다. 멀어서 확인을 못했지만 아카시아 나무류도 그들 나라에서 더러 눈에 띠였다.

  

  또한 주목들도 눈에 보였는데 런던의 윈저성 성곽 주위에서 본 주목들은 우리 주목과 사촌쯤 되는 양 싶었는데 조경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서는 조경수로 주목을 많이 심었는데 삼각기둥 모양 사각형 모양 둥근 모양 등으로 조경을 많이 하여 인위적인 냄새가 많이 났다. 조경수들은 대체로 영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자란 듯하고 프랑스에서는 매우 손을 많이 댄 듯하였다. 

  

  건물이 밀집한 도심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런던의 개인 집들은 프랑스나 이태리 독일들과는 달리 규모는 작아도 반드시 정원을  꼭 가꾸고 있었다. 동네의 골목을 들어가 살펴보니 집집마다 뜰에 잔디밭이 있고 나무들이 몇 그루씩  있다. 팔손이나무나 유도화 황금측백나무 장미꽃 측백나무들이 있었다. 

 

 

                             < 폼페이의 한 식당 뜰에 있는 유자나무 >             

 

   나폴리에서는 야자나 종려나무 등 아열대 식물이 많았다. 오렌지들이 정원수로 많이 심겨져 있고 노란 열매들이 탐스러웠다. 폼페이의 유자나무에 달린 유자 크기는 우리나라 복수박 만하였다. 나포리만 쏘렌토의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섬 카프리의 풀들은 아주 이질적이어서 이름을 아는 풀들이 별로 없었다. 소철나무가 키가 수 미터가 되고  아름다운 꽃을 커다랗게 피우고 열매도 탐스러웠다.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데 정말 우리나라 가정에서 가꾸는 아열대 식물은 불쌍하다.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멀리 떠도는 이방인이 되어 죽지 못하고 그래도 꽃피우고 열매 맺는 그 나무들을 생각하면 사람이나 나무들이나 제 고향 떠나 척박한 땅에 떠돌면 그의 생애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크는 소철나무가 제 고향을 찾아갈 날이 있을까?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들 생각이 문득 난다.

    

 

  카프리섬에는 손바닥 선인장들이 자생하고 이름 모를 기화요초들의 아열대식물이 다양하였다. 거기 한 주택가의 담장 위에서 노란 개나리꽃―단언하건대 이것은 분명 개나리가 맞다― 이 피어내리고 있었는데 꽃은 흡사 우리 것과 같고 다만 줄기 전체가 녹색을 띠고 있었고 가늘었을 뿐이었다. 식물들은 같은 종류라도 기후와 토질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 지구상에 사는 딱정벌레만 해도 이름 붙인 것이 삼십만 종류라고 하는데 도저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이야기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풀들이나 나무들을 보았는데 내 어찌 며칠간의 나그네로 그것에 대해 깊이 알겠는가,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푸나무들이 그래도 상당히 많았다는 점과 우리 땅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똑 같은 것들도 많아 상당히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대체로 숲이 많았다. 런던이나 파리의 근교에는 나무 천지였다. 목초지나 밭들이 아닌 곳은 어디나 나무였다. 상록수는 귀하고 대체로 낙엽수들이었는데 아마 여름철이나 봄철은 푸른 숲이 우거져 한층 더 풍성하게 보이리라. 전에 언젠가 들었는데 독일 쪽에서는 청소년들이 말을 타고 삼림을 보살피는 삼림관리인을 인기 있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히 독일은 삼림이 많이 발달해 있다고 안내원이 말하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