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를 가든 그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에 먼저 눈이 가게 된다. 내가 방문한 네 나라의 집들은 대부분 석조 건축물들이다. 성곽이든 궁정이든 관청이든 성당이든 가정집이든 조각품이든 담이든 다리든 길이든 모두 돌로 되어 있다. 그것도 그 규모가 거대하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런 석조 건물들에서 나는 참으로 큰 의문이 생겼다. 거의가 대평원인 그 어디에 돌이 그렇게 많이 있었던가? 우리같이 산이 많다면 또 모른다. 그러면 땅을 파서 얻은 돌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리가 없다. 프랑스의 경우 안내원의 말을 빌리면 대서양에 면한 1000km의 해안선이 거대한 돌들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돌을 어떻게 다 운반했을까? 또 그 안내원한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땅이 대부분 응회암이 많기 때문에 나무가 굵게 자라지 못한다고…. 그래서 석조 건물이 발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서양의 석조 건축 문화로는 역사시간에 배운 고대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 제우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는 것밖에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번에 가서 보니 정말 그 규모의 거대함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 높이가 130미터라고 한다. 무수한 돌기둥과 벽, 천정, 돔들이 전부 거대한 돌이다. 물론 석조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근교에 가니 옛날에 지었다는 목조 건물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새로 지은 철골구조의 현대식 건물은 런던의 도심엔 간혹 눈에 뜨일 뿐이었다. 파리의 도심은 내 생각으로는 에펠탑만 철구조물일 뿐 온 건물들이 전부 석조 건물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하기야 파리의 외곽에 건설한 신도시 라데팡스는 정말로 최첨단의 소재와 공법과 설계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미를 최대한 살린 훌륭한 현대식 건물이 그 규모도 대단하거니와 조형미도 뛰어났다. 프랑크푸르트의 도심에는 석조 건물과 함께 최첨단 현대식 고층 빌딩도 많았다. (독일은 전쟁으로 도회가 폭격을 당했기 때문에 런던이나 파리처럼 옛날 건물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네 나라 도회지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석조 건물들이다. 정부 청사도 학교도 회사도 호텔도 상가도 집들도 모두 석조 건물이다.
이들 나라의 석조 건물들은 석회암과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석회암은 물러서 우리나라에 많은 견고한 화강암과 달리 다듬기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석회암은 자꾸 견고하게 굳어진다니 서양 사람들은 한 번 집을 짓기만 하면 수백 년을 계속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동양의 목조나 토조 문화에는 오랜 역사의 자취가 남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석조 문화는 역사의 자취를 오래 남길 수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건물 하나를 지을 때 수십 년 간 혹은 수백 년 간에 걸쳐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짓기도 한다.
이들 나라의 건물들은 대체로 외부 장식이 화려하다. 왕궁이나 성당이나 모든 건물들의 외부에는 조각 장식이 많다.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의 기둥 모양은 이미 그리스 신전에도 나타나 있다.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 거대한 바로크 양식, 로코코풍, 고딕식 건물, 비잔틴 양식 등이 섞여 있고 그 어떤 건축물들에서도 외부를 화려하게 꾸몄고 성당에는 특히 조각상을 수없이 꾸며 놓았다. 왕궁이나 성당의 내부는 거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특히 로마에는 조각상들도 거의 대리석 일색인 것다.
그리고 옛날에 만든 길은 전부가 돌로 되어 있다. 돌들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세워서 촘촘히 박아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돌길을 보면서 그 옛날 말들은 무거운 짐을 싣고 얼마나 힘겨웠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조선의 흙길을 타박타박 걷던 당나귀나 노새는 몸집이야 작고 보잘것없지만 참 발이 편했을 것이다. 고대의 화산유적지인 폼페이 도심의 길은 거의 자연석이었지만 역시 돌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집들의 규모를 그렇게 크게 지었는가? 문화의 자취 속에는 그 지역의 자연 조건과 기후 또는 그곳 사람들의 역사나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 스며 있을 것이다. 거대한 성당들과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수많은 거대한 석조 건물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커야 하는가는 참으로 내겐 큰 의문거리였다. 도대체가 불가사의하다.
그렇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우리나라 기와집 높이나 되는 돌집 하나를 달랑 지어 놓으면 어떻게 보일까? 그것은 무슨 장난감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높이 쌓아 올렸을까? 아니면 그들은 탐욕스럽고 기상이 담대하여 작고 낮은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였을까? 그들은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고 그래서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높고 견고한 성을 쌓았을까?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벽을 두껍게 쌓고 성벽을 높이 올렸을까?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한 부분은 무너져 내려 있었다. 안내원의 말을 따르면 어느 성주의 금고로 쓰였다는 창고였다는데 그 돌벽의 두께가 무려 4미터나 된다던가? 만약 그들의 땅이 우리나라처럼 아기자기한 산과 언덕이 많고 골짜기와 그 사이를 강이 흐르는 자연 조건이었다면 그런 거대한 건물은 도대체가 어울리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런 아름다운 배경과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배경을 완전히 깨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거대한 석조 건물들이 무척 경이롭고 신비하여 호감이 가는 면도 있었지만 거대한 회색의 돌더미들은 아무리 장식을 해놓았지만 이 동방의 나그네에게는 어딘가 육중하게 사람을 억누르는 듯하였다. 그리고 차고 비정한 느낌이 들어 포근함이나 다사로운 정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마치 차가운 감옥 속에 갇힌 것 같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의 산하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높고 낮은 산들이 올망졸망하고 능선들이 편안하게 이어지는 산자락에 날아갈 듯한 추녀를 두른 절이나 아담한 정자들 …. 뒤안의 대숲 아래로는 잔설이 쌓여있고 앞마당엔 감나무 아래 장독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네 집들― 아름드리 나무기둥에 굵은 대들보를 얹고 흙벽을 바르고, 시원한 대청마루와 볕이 바른 툇마루가 있는 기와집, 국화꽃잎을 넣어 바른 장지문에 햇살이 비치고 겨울밤에는 문풍지가 바람에 우는, 규모는 작으나 더없이 정겨운 우리의 집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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