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4개국여행기

9. 겉을 꾸미지 않고 검박한 사람들

저 언덕 넘어 2006. 11. 8. 06:30
 

 

  우리가 이번 나그네길의 첫 도착지인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내달아 시내 변두리의 한인 식당에 도착한 것은 초저녁이었다. 어둠 속에 본 집들은 외관상 오래된 집들이었다. 그리고 수백 년이나 되었음직한 교회 건물의 첨탑 위에 초승달이 내가 사는 마을에서처럼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좁은 거리에는 버스나 차들이 가끔씩 지나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첫인상은 18세기쯤 됨직한 늙은 거리였다.

 

 

                                                        런던 교외의 주택가

 

   런던의 외곽이나 근교로 나가면 길가의 집들은 모두 이층 삼층 등으로 독채는 잘 없는 듯하고 네 다섯여 집이 함께 사는 연립식 주택들로 보였다. 돌로 된 집들이니 몇 십 년은 보통이고 일이백 년을 넘긴 집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겉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였다. 세 집이 같이 살면서 두 집은 외관을 새로 칠했는데 한 집은 하지 않은 데도 있었다. 오래된 집들은 좋게 보면 고풍스럽지만 새 아파트를 옮겨다니기 좋아하는 우리 눈으로 보면 매우 답답해 보였다. 안내인의 말을 빌리면 실내는 아주 깨끗하고 잘 해 놓고 산다고 한다. 그들은 겉을 전혀 꾸미지 않는 것 같다.

 

 

                   위- 파리의 한 명품 보석 가게, 아래 - 안에 징열된 보석들

  

 

  상가에도 간판은 있는데  상점 밖 처마 부분에 가로로 길게 무슨 식당 무슨 옷가게 하는 식으로 써 붙여 놓았고 크기도 작고 딱 한 개뿐이고 전화번호도 없다. 그리고 진열장에는 몇% 세일한다는 표시가 있거나 물건을 약간 진열해 놓았을 뿐이다. 책방에는 헌책들도 진열하여 놓은 것이 보였다.  

                        다이아나 비가 마지막 밤을  머문 파리의 한 호텔 앞

 

  호텔도 마찬가지 무슨 호텔이라고 몇 자 적어 놓았을 뿐이다. 우리 식으로 볼 때 그것은 간판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문패라고나 할까? 그냥 어떤 것을 파는 집이라고 알리는 정도다. 돌출광고도 보이지만 아주 드물다. 파리나 로마나 프랑크푸르트도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파리의 세계적인 명품을 취급하는 보석 가게도 똑 같다. 두터운 돌벽 사이로 창문이 나 있고 거기에 명품 보석이나 시계 몇 개 진열했을 뿐을 안에는 가게 주인들이 한 둘 보인다. 그리고 조명도 밝지 않고 어두컴컴하다. 네온사인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광고 글자에 색깔을 넣은 것은 좀 보았다. 밤에 환락가에 가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현란하게 명멸하는 네온사인의 불빛은 본 일이 한 번도 없다. 거리의 가로등도 밝지 않다. 우리나라 도심의 밤거리는 아름답고 찬란한 불빛 때문에 화사하게 치장한 도회 여인의 모습이라면, 그들의 밤 풍경은 그 옛날 우리가 쓰던 남포불이나 촛불을 쓰던 시대의 시골 부인의 모습처럼 수수하다고 할 수 있겠다.

 

  파리 외곽지에는 광고 자유 구역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큰 광고 간판을 더러 볼 수가 있다. 거대한 옥상 광고는 아예 없고 큰 옥외 광고가 더러 길가에 서 있는 정도였다.

   

                                                 런던 시내 가게의 간판들

건물의 미를 살리기 위해 광고를 법적으로 엄하게 제한하는지,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조명을 밝게 하지 않는지 알아보지 않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이다. 맛이나 품질과 전통이나 명성으로 손님이 찾는 것이지 광고가 요란하고 조명이 밝다고 손님이 가겠는가? 사람은 불빛만 보면 죽을 줄 모르고 덤벼드는 부나비가 아니지 않는가?

 

  우리나라의 경우는 광고에 건물이 파묻혀 있다. 정말로 어지러울 정도다. 한 번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거리의 간판이나 광고 실태를 보아라. 정말 이것은 혼란하고 엉망이다. 가게의 간판은 한 집에 두 개 세 개나 되고 돌출 간판은 물론 사람이 다니는 길에까지 나와 통행을 방해한다. 보이는 벽마다, 전봇대에도, 차에도, 사람들 눈이 가는 곳은 전부 광고지가 붙어 있다. 현수막 개인과외 영화광고 구인광고 월세 등의 오만가지 광고와 전단지들로 도배를 해 놓았다. 내용도 없는 것이 없다. 축 서울대 합격 김 아무개, 동창회 모임, 안동○씨 화수회 정월 보름 윷놀이 대회, 개업 할매 도가니탕, ○○기도 부흥회, △△품목 왕창 세일…. 광고만 들여다봐도 사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손금 보듯 알 수 있다. 좋게 보면 광고의 천국이고 나삐 보면 혼란의 극치, 무법 지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광고에 묻혀 건물의 아름다움은 볼 수가 없다. 여기에도 분명 해당되는 관련법이 있을 텐데 말이다. 정말 저들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면 어떨까? 참 남우세스럽다.

   

                                       런던 길거리의 무수한 소형차들

  에너지 사용면에서 우리의 현실은 또 어떤가? 우리의 도회에는 가로등은 휘황찬란하다. 도심에 오면 네온싸인이 불야성을 이룬다. 가게 안은 수십 개의 조명으로 사람의 눈이 부실 정도다. 사람도 없는 방에 불이 환하다. 밖은 찬바람이 살을 에는데 찜질방에 들어가서 땀을 줄줄 쏟는다. 아파트에서는 난방이 너무 잘 되어 겨울에 더워서 속옷만 입고 지내며 그걸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네 목욕탕에 가는데도 차를 타고 간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100%로 에너지 수입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북해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영국인들의 호텔에는 겨울에도 난방을 흉내만 낸다. 그들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방안에서 스웨터를 입고 겨울을 난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날씨가 우리보다 덜 추운 탓도 있지만 아이들한테 반바지를 입힌다. 강한 아이들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가?

 

  그네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를 수평적으로 놓고 일정한 잣대로 비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우리의 낭비적인 생활태도나 자세는 반드시 고쳐야 할 일이다. 이렇게 혼란한 우리 사회현상의 배경에는 우리의 역사 발전이 정상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성장하고 변화하지 못한 것에 그 주요한 원인이 있다. 또 이렇게 어떤 사회제도나 현상이 한 번 혼란하게 된 뒤에 다시 바로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때 가서는 어떤 새로운 정책이나 행정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어진다. 참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부끄러운 자산을 꼭 물려주어야만 하는가?

 

   (이 글을 쓰고 난 뒤 방송 뉴스에 보니까 서울 어느 구에서 간판 정비 작업을 하여 유럽에서 본 것과 비슷한 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다. 반가웠다. 그러나 왜 이제야 이런 일이 시작되는가? 나쁜 것은 열흘 안에 들어오는데 좋은 것은 한 세기를 지나도록 받아들일 줄 모른다. 이런 현상은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문제가 있겠지만 한국의 정치와 행정의 지도자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