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약탈자의 역사와 호강하는 후손들
문화의 자취를 살피기 위해서 사람들은 박물관에 간다. 나도 여기서 박물관 이야기를 조금 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런던에서 대영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보았다. 각각 한 시간쯤 보았으니 빙산의 일각을 본 것이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영 박물관 앞모습
대영 박물관에서 본 것 중에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는 로제타석이 볼만하였다. 그 귀중한 가치 때문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새로웠다. 그리고 이 박물관에는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인도 그리스 로마 중국 등 각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많았다. 물론 한국관도 잠깐 들렀다.
아시리아의 벽면 부조 미술품들
그런데 여기서 고대 아시리아(이라크 북부 티그리스 유역에 서기전 3000년경부터 있던 대제국)의 거대한 벽면 부조 작품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대리석 조각들의 그 아름다움도 보았다. 또한 대체로 이집트의 것이었을 숱한 미이라들을 소름끼치는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장서량으로는 세계에서 으뜸이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다는 어마어마한 중앙 도서관도 잠깐 들여다보았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다. 세계 최대라는 이 박물관의 경우 소장품이 40만점인데 차근차근 보는데 나흘은 꼬박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팔 할이 전리품이라고 한다. 또한 그곳은 원래 왕궁이어서 미로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안내도(案內圖)없이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한 곳들을 한 시간쯤 구경하고 나왔으니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예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프랑스를 주고도 안 바꾼다는 ‘모나리자’도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보았는데, 미술에는 문외한인 나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다. 그녀가 입은 옷이 소복(素服)이라는 것. 당시의 화장법 탓으로 눈썹이 없다는 것, 보는 사람을 따라 그녀의 눈동자가 따라 움직인다는 것, 그렇게 눈동자가 움직이는 그림이 우리나라 영월 어느 절에 있는 달마그림에도 있다는 것, 2차 대전 때 미국에 잠시 빌려주었을 때 150만명의 환영 인파가 몰렸다는 것, 그 외에도 그 신비한 미소만큼이나 많은 일화가 숨겨져 있는데 레오나르드다빈치는 동성애자였으며 모나리자가 여장한 남자일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 시절 미술 대회에도 따라 다녔던 어린 내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새겨졌던 밀레의 만종과 이삭 줍는 그림도 보았다. 너무나 많은 조각상과 그림들을 보고 그만 질려 버렸다. 너무 많이 보아서 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르겠고 그것들이 귀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차떼기로 나른 돈처럼 너무 많으면, 그 돈들이 나중에 가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귀한 지도 모르고 그냥 시든 배춧잎처럼 보일 것이고 지독한 돈냄새에 질려 버릴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이 돈만 중시하는 사실은 얼마나 불행하고 위험한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면 나는 괜히 걱정스럽다.)
루브르 박물관의 조각상
전시장 안의 유명한 조각상들과 미술품 앞에서 삼매에 빠진 듯 감상하는 젊은 후예들과 화폭에다가 데생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만 강렬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한껏 지쳐서 박물관을 빠져나오는 데 앞에 서 있는 이름 모를 가로수 한 그루가 인간이 만든 그 어느 예술품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박물관 이야기를 하면서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그 많은 소장품들의 팔 할이 전리품이라는 사실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것 중 다른 나라들의 고대의 작품들은 거의가 다 전쟁이나 침략의 부산물로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제국 시대나 식민지 통치 시대에 힘없는 민족이나 국가들로부터 강제로 빼앗거나 노략질로 얻은 것이란 말이다. 아니면 가치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사들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병인양요 때 빼앗긴 것들 중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도 바로 그런 것들 중의 하나다.
대영 박물관을 배경으로 선 거대한 오벨리스크
그런 것 가운데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벨리스크라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운 기념탑들이다. 길이가 적어도 이십 미터 이상이나 되는 한 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조형미가 매우 뛰어난 방첨탑이다. 이것들이 런던 파리 로마의 유명한 광장들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이것이 거의 이집트에서 노략질해간 것들이라고 한다. 왕들의 분묘 기념비거나 신전 앞에 세운 것들인데 멋스런 고대의 글자로 새겨진 명문이 있고 끝은 피라밋 형태이고 우뚝한 탑인데 보기에 참 좋았다. 이것이 지금 그들의 고향에는 두 개만 남아 있을 뿐 전부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하는 신의 저주도 없고, 사자(死者)의 억울한 영혼의 복수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악인악과(惡人惡果)의 벌을 받기는커녕 그들 후손들은 그것들로 관광 수입을 올려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말이 되지 않는 역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역사란 승자의 편에 손을 들어준다고…. 어쩌면 고개를 주억거려야 할 일일지 모른다. 먼저 내 자신의 몸 이것도 사실은 전리품이다. 수 억 대 일의 경쟁에서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남은 것도 무수한 역경을 이기고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이 얻었다고 생각하는 명예나 돈이나 행복 그 모든 것들도 사실은 전리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나 더 가지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하나 더 빼앗아야 가능한 일이다. 합격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탈락의 좌절을 겪어야 한다. 내가 빛을 받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는 내가 만든 그늘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이 세계에도 제국은 있다. 그 제국은 힘으로 무수히 많은 다른 나라의 것을 빼앗음으로 해서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무력으로 힘없는 나라의 인명을 죽이고 그 땅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을 억압하고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약소민족이고 피지배 민족이다. 제국의 박물관에 값진 문화재를 빼앗긴 그 찬란했던 고대 문명국가들의 후손들의 참담한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텔레비전에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가 나오면 꺼버린다.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는 생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면서 ‘생존의 법칙은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한다’ 는 사실을 사람들의 뇌리에 새기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런 그림을 만들어낸 강대국들의 패권 논리의 이데올로기가 그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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