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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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창밖을 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희뿌옇게 하늘이 가려있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출발할 때는 부슬비도 오려는 듯하였다. 모두들 날씨를 걱정하였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다. 하늘이 맑아 햇빛이 환하게 나야 한다.
무릇 풍광이란 밝은 햇살 아래서 제 빛을 드러낸다.
물론 안개가 멋스럽게 끼어 신비한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고 해가 저물어 가는 황혼녘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것도 특이한 분위기를 줄 수도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고산지대에 오르는 날은 구름이 낀 날은 아주 여행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이도백하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시내를 벗어나 백두산으로 향한다.
산을 오르는 줄로만 알았는데 거의 평탄한 길이다.
벌써 이곳이 해발이 상당하게 높은 곳이리라.
시내를 벗어나자 산속으로 접어들었다.
길 양쪽으로는 자작나무나 소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등으로 우거진 원시림의 연속이다.
아마 백두산에 많다는 잎깔나무(낙엽송) 마가목 사스레나무들을 위시한 수많은 이름 모를 나무들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나무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장대한 기상을 품고 우뚝우뚝 솟아있다. 더러는 모진 풍상에 겨워 하고많은 세월의 삶을 살다가 생명의 끈을 놓은 고사목들의 둥치도 보인다.
죽어도 쉽게 쓰러져 눕지 않는 것이 또한 나무가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이다.
임종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지쳐 쓰러지는 동물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곧게 서서 살다가 곧게 서서 죽는 저 나무야말로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존재의 표상 같다.
그 기품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우리가 지나는 이 도로는 저 원시림을 뚫은 터널에 지나지 않는다.
< http://blog.daum.net/kuh25/12455375에서 인용 >
창밖으로 펼쳐지는 나무의 물결, 나무의 바다를 헤치면서 버스가 간다. 그 아름다운 정취를 유리창을 통해 보면서 카메라에 다 넣을 수가 없다. 창문을 열면 그 나무들의 짙푸른 생명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훅 차안으로 밀려들 것만 같다.
한 반 시간쯤을 달려가서 산문 주차장에 닿는다.
축구장보다 더 너른 주차장에는 관광 온 차들이 벌써 많다.
우리는 또 여기서 한참을 걸어서 백두산의 출입문 격인 산문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간다.
장백산이라고 쓰인 큰 문이다.
내가 가고 있는 곳이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란 것을 진작 알았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백두산 산문>
그 문으로 들어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삼거리까지 간다.
거기서는 지프차를 탄다.
차모양이 한국에선 벌써 단종된 현대의 9인승 갤로퍼를 빼닮았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 현대차들인가?
아니면 요새 중국에서는 외국차를 본 딴 짝퉁차가 많다던데 그런 류인가?
<지프를 기다리는 사람들>
여러 대의 차들이 계속 연이어 출발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지프를 탔다. 차는 오르막길을 힘차게 달려 올랐다.
조금을 오르니 비구름과 안개 속에서 산봉들이 나타났다.
점점 오를수록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로 된 산악이 높이 솟아있고 그 산들은 겹겹으로 산맥을 이루고 높아지면서 장엄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가까운 곳일 뿐 오를수록 짙은 안개와 비구름 때문에 시야는 좁아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597․1668․1702년에 백두산이 폭발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 활동한 휴화산이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제3기에 이루어진 산 정상부는 알칼리성 조면암으로 구성된 종상화산이다. 대략 2200m를 경계로 그 이하는 제 4기에 현무암이 분출하여 용암평원을 이루어 순상화산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 위를 짙은 구름이 온 하늘을 위압하듯이 뒤덮고 간간이 빗방울이 뿌린다.
길이 굽이굽이 뱀의 모양으로 구부러졌다.
산의 색깔은 내 기억으로는 거의 회색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생각해 보건대 뜨거운 용암의 분출로 겹겹이 흘러내린 물질이 서서히 식어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그 위에 화산재가 쌓이기도 하고…….
차가 너무 흔들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나는 상하좌우로 흔들린다.
아마 틀니가 있었다면 그 흔들림에 빠졌으리라.
차는 가파른 길을 돌고 돌면서 엔진소리를 그르렁거리면서 오른다.
곡예운전을 하는 젊은 중국인은 무척 자신이 있어 보인다.
< http://blog.daum.net/kuh25/12455375에서 인용 >
조금 더 올라가니 풀들이 갖가지 색깔로 가녀린 웃음을 머금고 피어있다. 높은 산에 어떻게 저렇게 고운 빛깔로 피어있는가?
얼음 땅 속에서도 생명의 씨앗을 간직하고 여린 순을 내밀어 눈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잎을 피우고 줄기를 피워 올려 마련한 꽃망울들이 각자에게 맞는 제철을 맞아 꽃송이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 기후는 수직적 분포가 뚜렷이 나타나 저지대에서 정상부까지 온대로부터 한대에 이르는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평균기온은 1월이 -24℃, 7월이 10℃ 내외로 최저 -44℃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1965. 12. 15). 연평균풍속은 초속 11.7m이며 강수량은 백두산 일대의 지형적 장애로 인하여 습기를 가진 대기가 강제 상승되거나 서쪽에서 이동해 오던 저기압계가 지연되므로 주변지역보다 증가되어 연강수량 1408㎜ 정도의 최다우지에 해당한다. 기온이 낮아 적설기간은 9월에서 다음해 5월까지 약 9개월로 평균 적설은 약 30~50㎝ 정도이다 >.
고도에 따라 다른 꽃이 피어나니 산은 온통 온 계절의 꽃들을 일시에 피워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평지에서는 위도에 따라 식생이 달라지지만 산에서는 고도에 따라 식생이 달라진다.
아마도 그 꽃들은 짧은 여름동안 다투어 다 피어나야 할 테니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저렇게 함께 지천으로 핀 것이리라.
저 꽃들 가운데에는 노란 만병초나 은방울꽃 원추리 바위구절초 두메양귀비 개불알꽃 장백패랭이 분홍할미꽃 같은 것들도 있으리라.
산을 오를수록 차가 일으키는 세찬 바람에 휩쓸리면서도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로 그 꽃들은 나를 반기고 있다.
더 올라가니 꽃들은 자취를 점점 감춘다.
시야도 점점 흐려간다.
아마도 저 바위들에는 이끼 같은 식물들이나 붙어있으리라.
이렇게 20여분을 시달리고 차를 내렸다.
창밖에서는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빗방울도 떨어진다. 건물 하나가 보인다.
저기가 기상대인 모양이다.
바람이 너무 불고 시야가 흐리기 때문에 안내원은 우리를 단속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천문봉 정상이라 한다.
백두산은 열 몇 개의 높은 봉우리로 되어 있다는데 천문봉 정상에서 보이는 것은 바위 몇 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아 ,아 육신의 눈이란 때론 저 먼 하늘의 억조창생의 별들을 다 볼 수도 있는데 안개나 구름이 가리면 이렇게도 가까이에 있는 것들도 볼 수가 없단 말인가?
내 시야를 가로막는 저 안개, 구름이란 무엇인가?
정말 난감하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 먼 길을 그것도 기차를 타면 하루도 걸리지 않을 우리 땅을 두고서도 그 길을 오지 못하고 창창한 바다에서 하룻밤을 흔들리고 두 나라의 영토를 거쳐 와서도 보지 못하는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 백두의 신은 아랑곳없이 우리를 짙은 어둠 속에 가두고 있다.
하기야 하루에도 수십 번 일기가 변하는 고산이고 보면 몇 날을 여기서 지낸다면 볼 수도 있으련만 우리는 곧 내려가야 한다.
그래 그렇지 아무리 먼 길을 왔다고 해서 꼭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저 우리의 성산이 또한 그렇게 쉽게 그 수려광대한 모습을 마냥 그렇게 환하게 보여준다는 것도 그렇게 썩 좋은 일은 아니겠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가만 돌이켜 보니 성지를 순례를 할 때는 오기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치성을 드리고 산 밑에서부터 기도하면서 가시밭길을 긁히고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걸어와야 할 텐데 차에다가 두 몸을 맡기고 편히 앉아서 왔으니 정성이 부족해서도 볼 엄두를 못내는 것이 맞을 것이 아닌가?
쓸 데 없는 과욕을 버리고 다음을 약속하는 것이 바른 일일 것 같다.
단번에 와서 볼 수도 있으련만 그런 지복을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둥베이지방의 지린성이 접하는 국경에 있는 한국 최고봉의 산. 북위 41˚31′~42˚28′, 동경 127˚9′~128˚55′에 걸쳐 있다. 해발고도 2744m. 총면적 약 8000㎢. 북쪽으로는 장백산맥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백두산을 정점으로 남동쪽으로는 마천령산맥이 2000m 이상의 연봉을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백두산은 동쪽과 서쪽으로는 완만한 용암대지가 펼쳐져 있어 한반도와 멀리 북만주지방까지 굽어보는 이 지역의 최고봉이다. 산정은 거의 4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고, 산 정상은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항상 희게 보여서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주위에 있는 돌 부스러기 몇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부질없는 짓을 잘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상상으로 펼쳐지는 백두산과 천지의 관경을 못내 떨칠 수가 없다.
바로 옆에 만질 듯이 보일 백암봉과 저 멀리 내려다보일 달문의 넘쳐흐르는 푸른 천지의 물, 눈을 들면 차일봉 녹명봉 백운봉 청석봉은 바로 이 중국대륙에 솟아서 빛날 것이요, 건너 쌍무지개봉, 망천후가 장군봉에 잇닿아 연하고 해발봉 마천우 낙원봉 같은 봉우리들이 솟았다가 가라앉고 또 정답게 이어지면서 우쭈우쭐 정답게도 감싸 안은 푸르고도 푸른 천지를 상상한다.
그 봉우리들 위에 펼쳐지는 개벽에서 지금까지 있어온 푸른 하늘과 거기 흩어져서 아름다운 구름들이 천지의 조요한 물결 위에 제 얼굴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비쭉비쭉 솟은 돌바위들이 천년풍상에 씻기고 혹 비바람에 굴러서 천지 물가까지 이어진 돌너덜과 그 사이사이에 낀 흙 위에 난 푸른 풀들과 바위틈에서 온기를 간직하여 돋아난 들꽃 몇 송이가 다정스레 피어있을 곳,
멀리 시야를 넓히면 그 산봉들 너머 아득히 간도 땅으로 무한대로 펼쳐지는 고원과 북만주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산맥들,
멀리 남으로 눈을 두면 반도를 굽이쳐 내려가는 마천령의 연봉들은 용의 꿈틀거림으로 내려가면서 태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잠룡이 되어 잠겼다가는 다시 한라의 기상으로 솟아 못다 이룬 승천의 꿈을 다시 꾸지 않겠는가?
<이하는 다음 카페 불문산악회 시돌 선생이 찍은 사진에서 인용>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를 들어 다시 천지 쪽을 내려다보니 구름에 휩싸인 천인단애의 절벽이 내 눈을 가로막을 뿐이었다.
아찔해 지는 머리를 가다듬어 보니 벌써 내려가는 차를 타야한다고 닦달이다.
그래 하는 수가 없지
단 번에 가서 천지를 본 자들은 나를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는 그들은 백두산과 천지를 말하면 신이 나겠지?
나같이 천지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러나 그들보다 더 귀하고 신비로운 백두산과 천지를 가슴에 안고 하산을 한다는 사실을 알는지 모르겠다.
쉽게 얻는 것보다는 차라리 얻지 못하는 것이 더 귀한 값이 있다는 것을 체득하면서 살아온 내 인생역정이 나를 한결 겸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산길을 서둘렀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이며 한민족의 발생의 근원지이며 북쪽 지역의 다른 고대국가의 발생지라고 알고 있다.
우리 땅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신령스럽게도 거기에 천지가 있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이 성했고 말갈족 여진족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위대한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을 어머니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신령스럽게 생긴 백두산을 중심으로 많은 신화와 전설과 설화를 만들면서 역사적 의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숭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가슴에 간직하여 왔지 않겠는가?
< 풍수지리에서는 지세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여 이해하기도 하는데 백두산을 '기'가 결집된 머리로, 낭림-태백-소백 산맥을 백두산의 기가 전달되는 등뼈산맥으로서 백두대간으로 인식했다.
그밖에 청나라의 번영도 태산·장백산 지맥설을 통해서 풍수지리상으로 백두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북방 이민족의 정신적 구심점과 활동무대가 되어왔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청나라는 백두산을 장백산신에 봉하고 출입·거주를 제한하는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개척하자 백두산을 그들의 영토로 귀속시키려고,1712년 일방적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그 내용 가운데 토문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했으며, 간도 및 녹둔도의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1909년 청·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으로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결정되었으며, 지금 백두산은 천지까지도 분할되어 천지 북쪽 2/5는 중국 측에, 남쪽 3/5은 북한 측에 속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지프차는 벌써 출발지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여 떠나기도 하고 또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북적였다.
아마 저들도 모두 백두산에 오르긴 했어도 허탈한 마음으로 하산하였으리라.
같은 처지에 속한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사실에 나는 위안을 느끼면서. 아니 백두산 바로 밑에서 살면서 천지를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숱한데 무슨 불만이 더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장백폭포로 가서 천지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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