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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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관광길은 세 군데다.
중국 땅에서 오르는 길이 둘, 북한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다.
우리가 오늘 오른 북측관광지 산문이 그 하나다.
송하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 천문봉과 천지의 달문에서 흘러내리는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서측관광 산문은 송강하를 따라 올라간다.
백운봉까지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오르는 남측관광지 산문으로 오르면 압록강 대협곡을 들어가서 천주봉에 닿을 수가 있다고 한다.
북한땅을 밟으면서 오른 남측 인사들도 많지만 나는 이렇게 남의 나라까지 멀고 먼 길을 돌아와서 오르는데 바로 중국인들이 말하는 장백산을 오르고 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백두산은 아닌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10여분 가니 폭포 주차장에 이르렀다.
장백폭포를 오르는 초입에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다.
빗발이 오락가락하여 우산을 쓰고 간다.
구름은 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산맥의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을 안개와 구름으로 희뿌옇게 가리고 있었다.
한 폭의 운치 있는 수묵화가 펼쳐진다.
그런데 현무암으로 되어있을 산봉들은 화강암이 이루는 모습과는 상당히 이색적이다.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특한 모양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눈에 익지 않은 풍치를 이룬다.
돌무더기와 바위들 사이를 비집고 자작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우리를 호위하듯 서있다.
나무로 만든 통로들 따라 올라간다.
나무들 사이로 풀꽃들이 나타난다.
이름을 모르는 풀꽃들이 거개다.
<자작나무로 만든 화장실>
자작나무 숲이 이어지고 풀꽃들이 나타난다.
우거진 숲 사이로 풀꽃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흠뻑 젖어 올라가다니 이정표 하나가 섰다.
천지 주봉으로 가는 화살표를 따라 시선을 주니 구름에 희뿌옇게 가린 봉우리가 가로막고 있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멀리 폭포가 보이면서 그리로 올라가는 길이 환하게 보인다.
성벽을 둘러싼 것처럼 통로가 험하고 가파른 절벽을 따라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벼랑길을 붙어 오른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숨이 턱턱 막혀 쉬엄쉬엄 오른다.
벼랑이 가팔라져가니 굴길을 만들었다.
내리는 사람 오르는 사람이 모두들 헐떡거린다.
중국인들은 우리 경상도 사람보다 더 떠들면서 오르내린다.
좀 무식하다고 할까?
아니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시골사람들처럼 순박하다고 할까?
떠드는 소리가 굴 천정과 벽에 반향을 일으켜 굴 안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럽고 땀내가 훅훅 끼친다.
폭포가 점점 가깝게 보인다.
너무 멀어서 물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힘차게 내려 쏟아지는 물줄기가 낭떠러지에 곤두박질치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세차게 떨어진다.
그 근처에는 돌너덜이 깔려서 접근할 수가 없다.
폭포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일상, 나른하기까지 한 일상, 혹은 아주 평탄한 생활이 계속되다가 예상도 못하고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때 인간은 어떠한가?
안전하게만 지속되던 삶이 어떤 것을 계기로 한 순간에 추락의 위험으로 곤두박질 칠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
사람도 살다가 저처럼 폭포에서 떨어지듯 시련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아, 아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한생을 돌이켜보면 저 희게 부서지면서 사정없이 절벽에서 내동댕이쳐지는 시련의 시간들이 있다.
사람의 생애란 대체로 얼마나 파란만장한 것인가?
백두산에는 16개의 산봉우리가 병풍을 둘러치듯 천지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물이 흘러내리는데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빨라서 먼 곳에서 보면 하늘을 오르는 다리를 연상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승사하'다.
승사하는 개활지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고 한다.
저 물은 떨어져서 가파른 돌너덜을 따라 희게 부서지면서 빠르게 흘러내린다.
이 물이 백하를 흘러내리면서 송화강의 한 원류가 되는 것이다.
백두산에는 장백폭포 이외에 백하폭포, 동천폭포 금강폭포등이 있고 이런 폭포들은 봄에서 가을까지 물이 있어 장관을 이루지만 겨울이면 물이 언다.
그런데 이 장백폭포만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흘러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험한 계단을 빨리 오른다.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벅차다.
이렇게 올라가니 개울이 힘차게 내려온다.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승사하의 물줄기>
길가에 피어난 풀꽃들의 아름답고 청초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더 거슬러 오르니 무수한 돌덩이가 마치 곧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기스락으로 시냇물이 한 줄기가 조용히 흐른다.
어쩌면 저렇게 맑은 물이 있을까? 한 줌 떠서 마시고 싶다.
거기서 좀 더 올라가니 작은 호수처럼 물이 괸 곳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흘러내린다.
달문의 바로 밑에 벌써 와있는 것이다.
이 곳에 이르니 경사는 완만하고 한결 시야가 넓어지면서 평평한 지형이 나타나고 양옆으로는 백두산 봉우리들이 한껏 그 위용을 자라하듯 우둑 솟아있다.
사방을 휘휘 들러본다.
좀 더 올라가니 사람들이 들꽃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평평한 언덕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빨리 걸음을 독촉하여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니 바로 눈앞에 꽉 차서 넘실거리는 천지의 푸른 물이 보이지 않는가?
안개와 구름에 가려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너른 호수 같아 보일 뿐 그득한 물만 무심하게 보일 뿐이었다.
오른쪽 가까운 곳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차일봉이라 짐작되고 왼쪽으로는 구름 속에 천문봉이 그 큰 얼굴을 들이 밀면서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건너편에는 우리 땅의 비류봉 장군봉 마천우 등의 거봉들이 기암괴석들을 머리에 이고 천지를 품에 안고 구름 속에서 우뚝 솟아있으리라.
천문봉에 올랐을 때보다는 시야가 더 넓어졌으나 천지의 모습도 환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 중앙화구는 그 뒤 함몰에 의하여 칼데라가 되었다. 그 주위의 화구벽은 400~500m의 높이로 절벽이어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병사봉 동쪽과 달문 부근뿐으로, 천지로 내려가는 완경사 지형인 권곡에 해당한다. 천지는 흔히 용왕담이라고도 하며, 남북의 길이 4.85㎞, 동서의 나비 3.35㎞, 둘레 13.11㎞, 평균수심 204m, 제일 깊은 곳은 350미터를 넘는다. 총적수량 20억 400만m³이다. 천지에 담긴 물은 40억톤이다. 송화강의 발원지로써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
천지의 푸른 물에 손을 담근다. 차다.
우리 배달민족의 신산인 백두산은 우리 땅에서는 가장 높은 할아버지 산이고 저 천지의 물은 우리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할머니 물이다.
오늘 나는 우리 역사의 근원지인 여기 성산에 와서 그 성수에 손을 담그고 있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 감격을 어찌 한 치 짧은 혀에 담고 내 모자라고 서툰 글로 대신하겠는가?
천지의 물은 아직도 저 깊은 지심의 어는 곳에서 들끓고 있다가 언제라도 지표를 뚫고 치솟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용암을 식히려는 듯 차다.
저 멀리 안개와 구름 건너는 더욱 신비한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근래에 중국은 백두산(장백산) 천지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가끔씩 세계의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괴물은 없다고 단언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장백산과 천지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알리려는 뜻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너른 땅을 가져 제 몸도 다 추스르지 못하면서도 욕심을 부려대니 아흔 아홉 개를 가진 부자가 겨우 한 개를 가진 가난뱅이 것을 빼앗으려는 심사와 무에 다르랴.
사진만 한 장 찍고 돌아선다.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아무래도 쉽다.
1484미터 길이의 이 산길은 3분의 2가 계단이고 계단의 수가 905개나 되는 험한 길이다.
쉬엄쉬엄 걸으면 왕복 두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내리막은 수월하다.
장백폭포를 다 내려와서 이번에는 다른 길로 900여미터 내려가다니 땅 속에서 김이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온천이 나타난다.
섭씨 82도나 되는 조천 유황 온천이라고 한다.
노랗고 붉은 물이끼가 붙은 돌들이 깔린 위를 그 뜨거운 물이 흘러내려 간다.
지옥에 활활 타는 불길이 있다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니 그런 이야기가 어느 정도 실감이 날 것 같다.
< 장백폭포에서 900m 떨어진 곳에 많은 온천혈을 볼 수 있다. 온천 면적은 1,000평방미터로 30여 온천혈이 있고, 끓어오르는 온천은 주변의 돌과 모래들을 색색으로 물들여 놓아 현란한 자연의 걸작품을 보는 듯 하다. 겨울이면 온천 부근은 흰눈이 덮인 백설의 세계에 솟아나는 더운 증기가 자욱해지면서 선경을 펼친다.
60~70도를 오르내리는 수온은 최고 82℃ 까지 되며 계란을 삶아 관광객에게 팔기도 한다. 이곳에서 파는 계란은 반숙인데 일반적인 계란과는 다르게 노른자만 완숙이고 흰자가 반숙이다. 온천수는 유황성분이 많아 피부병 치료에 좋다고 한다 >
다시 우리는 조금 계곡을 다른 쪽으로 올라가서 소천지를 보았다. 규모가 작으나 아주 아름다운 못이었다. 정말 달 밝은 밤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싶을 그런 곳이었다. 지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어찌 하늘에 아름다운 선녀가 없겠는가?
이제 날씨가 더 개어 햇빛이 조금 났다
. 아름다운 계곡을 이룬 양쪽의 산들이 좀 더 그 모습을 드러내어 뽐내고 있다.
지금쯤 정상을 오르면 백두산의 옹근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마음은 자꾸만 정상을 기웃거린다.
온천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에 하루의 피로를 푹 잠근다.
사람들이 또 들어왔다. 너무 시끄럽다.
물도 더럽다.
그래도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녹인다.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를 그 협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이도백하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정말 고구려답사를 하기 위해 통화로 떠나는 침대차를 타고 하룻밤을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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