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과 무덤으로 남아있는 고구려인들의 자취
(1) 집안시에 이르다
상당히 높은 산(이게 노령산맥이던가?)을 하나 넘어 우리는 집안에 도착했다.
http://blog.daum.net/abamtol/12793122?nil_profile=blog
(네모로 둘러싼 사진의 인용처로 집안 이야기는 여기서 많은 자료를 인용함)
집안 시내 초입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은 굽은 호로 휘어진 모양을 한 가로등이었다.
어떻게 보니 조형미가 그럴 듯하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모양이라서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시가지에 들어서면서 국내성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규모가 작고 많이 허물어져 있지만 집안은 그야말로 성곽의 도시인 것 같다.
우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집안이란 도시는 별로 크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고구려를 찾아’인데 집안은 바로 그 중심에 있는 곳이다. 집안이 먼저 어떤 도시인가를 자세하게 살펴보자.
<지린성 남부에 있는 현. 인구 약 23만 명. 현성은 압록강과 그 지류인 퉁거우강에 둘러싸인 해발고도 200m의 좁고 긴 충적평야에 있다. 집안현은 이전에는 퉁거우라고 불렀으며 현재도 그 일부를 둥거우라고 부른다. 메이허커우에서 메이지선이 왕래하며 압록강을 건너면 북한의 만포에 이른다.
광개토대왕릉에서 내려다 본 집안 시내
집안은 항우가 태어난 곳이라고 안내원이 소개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기가 어떻게 고구려 땅일까? 중국 땅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이어졌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이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고 이후 오랜 동안 중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우리의 머리에만 남아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내가 역사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더 이렇게 느낄 것이다.
< 이곳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특히 고구려 중기 이후의 유적과 유물이 많다. AD 3년부터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의 고구려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이 고구려와 관련된 것으로, 산성 등의 유적이 8개소, 30여 개소의 고분군에 1만 3000여 기에 이르는 고구려 최대의 무덤들이 있다 >.
지안현 이수원 남량고유적 ․위나암성․ 패왕조산성 등의 유적지에서는 와당 ․ 도금제기물 ․도기 등이 출토된다.
특히 지안현 이수원 남량고 유적에서 발견된 백옥이배(白玉耳杯)는 재질과 제작기술에서 아주 뛰어나다.
노령산맥 동부와 서부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들은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봉토분으로 나누어지며, 고구려의 수도였을 당시뿐만 아니라 평양 천도 후에도 오랜 동안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동서 8㎞, 남북 3㎞의 둥거우 일대에 우산하고분군․마선구고분군․하해방고분군 등 1만 1300여 기 무덤이 있으며, 이들 고분에서의 출토품으로 갈유토기․기와․벽돌 등이 있다.
또한 식기류로서의 동기와 그 기술과 정교함으로 잘 알려진 도금기물 등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집안은 오랜 동안 고구려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것이다. 그
러나 고구려는 너무 먼 역사이기 때문에 집안에 남아있는 것은 성과 무덤들뿐이라고 해도 되겠다.
조금 남아있는 유물들을 보아야 고구려 문화의 파편이라도 짐작하겠지만 박물관이 공사 중이라서 볼 수 없다고 한다.
그 유물들을 만난다면 그래도 여기가 고구려땅임을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2) 환도산성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2.5km떨어진 환도산성으로 간다.
병풍처럼 노령산맥이 둘러싼 골짜기가 보인다.
앞으로는 내가 가로지르고 북고남저 지형에 절벽까지 활용하여 천혜의 요새에 부챗살 모양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환도산성 입구
입구에 가니 환도산성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새긴 지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집안시의 유적들은 많이 보수되고 정비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둘레의 길이가 7km에 육박하는 대규모 산성인데 발굴 결과 음마지, 점장대, 병영지, 궁궐지, 암문을 포함한 7개의 성문터 등이 밝혀졌다. 성의 주출입문인 남문은 안쪽으로 들어간 형태로 'ㄷ'자 형태로 장방형 옹성의 형태이다 >.
성은 많이 허물어진 상태로 이어지면서 밭의 경계를 이루기도 하면서 멀리 이어진다.
전망대
전망대 뒤로 보이는 성안의 궁전터에서는 독특하게 8각의 건물터가 발굴되었는데 아직까지 군창(軍倉)의 흔적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여장의 형태를 한 성벽 위에는 쇠뇌와 같은 무기를 고정시키는 기둥구멍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성안은 거의 곡식을 심은 밭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가보고 확인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환도산성 남문
성벽의 구조
전쟁이 일어나 왕이 위급하여 이 성안으로 피신하고 군사들은 피 흘리며 이 성을 지켰을 것이다.
역사의 시간들은 돌무더기 자취만 남기고 그들의 아득한 후손일 한 아줌마는 길가에 과일들을 갖다놓고 관광객들에게 사라고 한다.
아마 조선족은 아닌 모양이다.
(3) 수많은 고분군
환도산성을 보고 내려오면 바로 밑에 너른 지역이 내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떼를 이루고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표지석을 보니 산성밑에 조성된 귀족들의 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곳 무덤들은 통구(지안의 다른 이름) 무덤떼를 이루는 6대 무덤떼 가운데 하나로 총1582기의 옛 무덤이 禹山 북쪽 기슭의 통구강과 환도산성 사이의 들판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 무덤떼에 속하는 유명한 고분으로는 1298호 꺾인 천장무덤 635호 아우무덤,1304호 거북무덤983호 연꽃무덤,332호 왕자무덤등이 있다. > 정말로 많은 무덤들이다.
고구려고분은 외형상의 특징에 의해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돌로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아래)이고, 다른 하나는 흙으로 덮은 봉토무덤(위 왼쪽)이다.
기단식 돌무지 무덤
계단식 돌무지 무덤
안내원은 친절하게 고구려 무덤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한다.
<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선대의 돌무덤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 돌무지무덤인데, 돌각담 무덤이라고도 하고 적석총이라고도 한다. 돌무지무덤은 축조방식이나 용재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기단의 유무를 기준으로 삼아 무기단 돌무지무덤과 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대별하고 있으며, 다시 외형상의 특징을 통해 단순기단식과 계단식으로 구분되고, 또 계단식의 경우 내부 매장주체시설의 차이에 따라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으로 세분된다. 이러한 무덤양식들은 돌무지무덤의 시기적인 변화를 반영함과 신분에 따른 무덤양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
< 고구려 전기 수도였던 만주 집안 지방에는 무려 1만 기 이상의 고구려 고분이 있다. 기원전 3,4세기 고구려 중기에 오면 돌무지무덤에 3단, 5단, 7단식으로 층수가 증가하면서 마치 계단식 피라밋형의 돌무덤으로 축조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장군총과 태왕릉이다>
한편
< 봉토무덤은 고구려 후기의 대표적 무덤양식이다. 이 봉토무덤은 4세기 이후 1세기 이상 돌무지무덤과 공존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다양한 무덤양식을 파생시킨다. 봉토무덤의 가장 큰 특징은 매장주체시설로서 지상이나 반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이 아닌 흙을 덮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봉토돌방무덤 (재래의 돌무지무덤에서와 같이 돌로 기단을 두른 후 흙으로 덮는 형식) 봉석돌방무덤 (돌무지무덤에서와 같이 돌로 기단을 두른 후 흙으로 덮는 형식) 돌방무덤(완전한 봉토가 아닌 흙과 돌을 섞은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은 아마도 요새로 치면 국립묘지 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을까?
상당한 신분이 있는 자들의 무덤군이다. 살아서 고귀한 신분을 누린 자는 죽어서도 이렇게 잘 보존된다.
잘 다듬어 놓은 이 묘지는 이 천년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렇게 잘 보호를 받고 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사람은 살아있을 적에 자꾸만 신분상승을 위해 그렇게 애를 쓰나보다.
이 일대에 널린 묘지를 다 돌아보지 못하고 한 바퀴 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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