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행문-1

8.히로시마에서 마쯔에 가는 길

저 언덕 넘어 2006. 12. 22. 21:00
 

8.히로시마에서 마쯔에 가는 길


  우리는 하룻밤을 히로시마에서 보내고 마쯔에로 떠났다. 마쯔에는 시네마현에 있는 작은 도시다. 가자면 주코크 산맥을 넘어야 한다. 가는 길은 전원 풍경이 계속 차창을 스쳐왔다. 거의 계속 숲이 우거진 산들이 보기좋게 병풍을 양쪽으로 두른 듯한 국도길이었다. .

 

                        위 -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   아래 - 휴게소 주위 풍경

 

  

 

  우리는 배가 고프면 조용한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때우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간다. 우리가 차를 몰고 가니 정말 여유로운 관광이다.


  이 여정은 일본의 농촌을 살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이 54번 국도변으로는 드문드문 농가들이 나타나고 산들이 거의 끊임없이 펼쳐지고 차들이 가끔씩 나타나는 아주조용한 길이 이어졌다.   

 

 

 

 

                   국도에서 지선이 갈려 나간다. 저 길로 들면 또 어느 산골 마을에 닿는가?

 

  가끔씩 나타나는 농가들이 한 채씩 혹은 두어서넛씩 나타났다. 길들은 모두 포장되어 깨끗하였다. 논에는 팔월도 중순이라 벼들이 이삭을 내밀고 풍성한 가을날에 대한 꿈으로 짙푸른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그 위로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 푸르름을  더욱 짙게 하고 있었다. 집 주위에는 또 푸르른 나무들이 농가를 에워싸고 그 뒤로는 초목들이 빼곡 선 산들이 말 그대로 울울창창하여 온통 푸른 물결이었다.


 

 

  산지는 가끔씩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였다. 논들이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곳에서는 경지정리도 안 된 그야말로 구구불한 옛날 논둑들이 보인다. 조금 넓은 길은 농로로 차나 농기계가가 다니는 길인지 풀들은 바퀴자국을 비켜 자라고 있다. 그리고 돌돌거리면서 맑은 도랑물이 논둑 밑을 흘러가고 있다. 나는 아득히 먼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이 때쯤이면 나락논에 메뚜기들이 지천이었다. 우리는 빈 유리병에 손잡이끈을 매달아 들고서 이런 논둑길에서 메뚜기를 잡곤 했다. 가난했지만 천연스럽게 흙 위에서 뒹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가한 국도 변에서 조금 쉬어갔다. 언덕 저쯤에 농가 두어 채가 있었다. 나는 혼자 일부러 그 집 가까이 가서 동정을 살핀다. 시멘트 담벼락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집들을 기웃거려 뜰 안을 들여다본다.  마당마다 꽃들을 아름답게 가꾸었고 채마밭도 있었다. 어떤 집에는 빨래들을 널어놓았다. 모두 일하러 갔는지 적막만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의 집을 살쾡이처럼 들여다 본다는 것은 그것도 이국에 와서 더욱이 일본말 한 마디도 모르는 나로서는 상당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이 때 만약 젊은 아낙네라도 기척을 알고 나와 무슨 말을 한다면? 그리고 이윽고 수염으로 얼굴이 검은 키가 큰 바깥주인이 씩씩거리면서 나타나 눈을 부라리며 시비를 걸어온다면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납게 짖어대는 개가 없었던(?) 것만도 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