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행문-1

10. 참으로 정갈하고 예의 있는 그들의 삶

저 언덕 넘어 2006. 12. 28. 04:58
 

10. 참으로 정갈하고 예의 있는 그들의 삶


  마쯔에 시의 외곽에 있는 이 동네는 역사가 오래된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마을인 것 같았다. 우리는 캄캄한 밤에 이 도시의 골목길을 들어왔다. 모두들 우리가 묵을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또 혼자 밤골목을 서성거리면서 탐정을 한다. 거리에는 가끔씩 늦게 귀가하는 차들이 다닌다. 길을 잃을까 봐서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마을길에 세워둔 차를 볼 수 없다. 한 곳에 가니 시동이 걸린 차를 세워놓고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떠나는 차만 한 대 있었다. 동네 골목에 주차된 차들이 빽빽한 한국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일찍 아침잠에서 깨어난 나는 또 혼자서 마을을 휘 한바퀴 돌아보았다.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상당히 멀리까지 가보았다. 아직 사람이 다니기에는 이른 거리에는 가끔 노인들만 몇 보이고 일찍 어디론가 떠나는 차들이 보일 뿐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방의 나그네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리고 그들이 나그네를 알아볼까 조심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보아도 일본인인지 아닌지를 잘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곧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였다.

 

     깨끗한 집들은 거의 청기와를 덮었다. 전선줄은 우리처럼 어지럽다. 깨끗한 골목이 있는 풍경

      집 앞에 나무를 심고 장식을 해 놓았다. 물고기 모양의 표시는 기독교인의 집이란 표시인가?

 

           담 너머로 밝은 미소를 보내는 나팔꽃이 주인의 환한 마음을 전하는 것 같다.

 

   집들은 깨끗하였고 담 너머로 가꾸어 놓은 꽃나무들이 아름다웠다. 집들은 대체로 오래된 일본 전통가옥으로 이층집이 많다. 한 곳에 가니 작은 연립주택이 보일 뿐이었다. 길에는 청소가 잘 되었고 깨끗하였다. 한 곳에 가니 휴지 한 조각이 떨어져 있을 뿐 정말 이렇게 청결한 동네가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차들은 전부 차고에 들여놓았다. 집안에 공지가 너르지 않아도 반드시 대문 안에 주차되어 있지 대문 밖에 주차된 것은 없었다.

 

 작은 문패가 있는 집안 좁은 마당에 주차된 차-주차편의를 위해 작은 볼록거울을 달아놓은 집도 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도 그대로 길가에 세워놓지 않고 작은 차고를 만들어 들여놓았다. 일본에는 차고지가 없으면 차를 살 수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다.

 

 

  연립주택 마당에는 차선이 빼곡히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서 드나드는 입구에 주차금지의 표시가 있는데 소형차가 하나 주차선 밖에 서 있었다. 이 너른 동네에서 딱 한 대가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연립주택이니 멀리서 손님으로 온 차가 있어서 이렇게 되었을까? 티끌도 참으로 아름다운 티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애교가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를 흐르는 하수구 도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복개가 되어있지 않는 도랑에 물이 흐른다. 대체로 맑아 보이는 물이 흘렀고 바닥에는 모래가 때가 끼어 있었으나 더러운 쓰레기나 오물이 드러차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곳에 이르니 냄새가 좀 났다. 생활하수에 대한 규제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깨끗하였다.

 

  그들은 왜 도랑을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돈이 없어, 시멘트가 없어서였을까? 우리는 모든 도랑을 다 복개해 버렸다.

도랑에 물이 더럽지 않게 해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물이 햇볕을 받아 물속에 생명이 살게 해야 한다.인간이 있는 곳에는 물이 소리를 내고 흘러야 하는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더럽혀 놓고 냄새가 난다고 덮어버리면 하천은 완전히 생명을 잃어버린다. 음습한 곳에서 기생하는 생물들이 우리를 이롭게 할까? 몇 십 년 동안 죽음의 하천이었던 청계천을 되살려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그것도 자연 하천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또 부작용이 드러나는 임시방편의 인위적인 하천이다.안동에서도 시내를 흐르는 도랑물들에 냄새가 나서 모두다 덮어 버렸다.이런 사고방식은 정말로 잘못되었다. 안동댐의 물을 끌어드려 하천을 맑게 흐르도록 했어야 했다. 그래서 거기에 풀들이 자라고 고기가 살아있도록 했어야 했다. 급성장을 이룬 막개발의 시대의 논리는 정말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빼았아 갔다.언제일까? 다시 안기천에 흘러가는 맑은 물이 햇빛에 물비늘을 반짝이고 돌돌돌 소리 내어 흐를 날은? 그 날의 시민들은 오늘보다는 열 배나 행복해지리라.

 

  마을에는 공터가 더러 보였다. 잡초가 나 있었으나 쓰레기가 쌓여 있지도 않았고 더럽지도 않았다.

 

 

  한 곳에 이르니 쓰레기를 내어 놓은 것이 있었다. 아마도 쓰레기를 내어 놓는 곳일 거다. 일반 집에서 나온 쓰레기와정원수를 전지하고 나온 쓰레기인데 그걸 그물자루에 단단히 싸서 내어 놓았다. 바람에 날리거나 사람의 발길에 채이거나 혹시 고양이라도 건드리면 흩어질까 봐서 그런 모양이다.


 

           공사장을 출입 못하게 막아놓았고 미안하다는 표시와 함께 공사일정을 적어 놓고 있다.

 

  한 곳에 이르니 집을 짓는 곳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안내도가 있다. 잘은 모르지만 대개 어떤 공사를 하는데 언제까지 어떤 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가정집을 짓는 것 같았는데 저런 안내표지판 까지 설치해서 주민들에게 알리다니 한국 생각이 문득 났다. 거대한 공사를 하면서도 무슨 공사를 언제까지 하는지를 알 수가 없이 통행인들에게 짜증을 내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국도 확장 공사를 몇 년에 걸쳐 하면서도 행인들에게 소개하는 법이 없다. 위험 표지 하나 하면 그만이다. 참으로 무례한 발상이고 무지막지한 행태다. 더불어 사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는 것이다. 나만 알고 남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의 일로서는 올바르지 못하다. 아마 동물들도 이웃을 소중히 여길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 깨여있지 않을 때를 미개인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사람이 미개인이 아니다.


  또 한 곳에는 간판이 하나 낙서도 보이지 않고 정갈하게 그려져 있다.

 

 그 구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주택안내도였다.동네마다  이런 간판이 붙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참 신선하고도 알뜰한 배려다. 집들마다 문패가 꼭꼭 붙어있는 것을 보고도 놀랐는데 동네집들의 안내라니! 우리나라 어느 동네에 이런 것이 있는가?


  인심이 흉흉해지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문패를 달지 않는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사람을 찾아다닌 경험을 한 이들은 알 것이다. 전화가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거의 내가 찾는 사람의 집을 찾을 수가 없다.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삶, 이것은 양계장에 모여사는 닭떼들이나 목장에 모여 있는 소들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간혹 우리는 듣는다. 죽은 지가 몇 달이 지나 주검이 발견되도록 이웃이 몰랐다는 그 비참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