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하의 절경-하롱배이
우리들의 이 번 여행의 첫 관광지가 바로 하롱배이다. 아침에 하노이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서 너 시간을 걸려 도착한 곳이다. 고속도로라고는 하나 우리하고는 많이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고속도로 위를 유유히 가로질러 건너다니는 소들을 볼 수도 있었으니까.
이제 목적지에 다 와 간다고 한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 육지인들에게는 언제나 가슴 설레는 바다가 아니던가? 해는 엷은 구름 속에 들었으나 날씨는 밝았다. 이른 가을날처럼 상쾌하다.
그 아래 무수한 섬들이 무리를 지어 수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모양은 울룩불룩한 검푸른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어 산맥을 이룬 듯하였다. 바다를 건너가는 산맥처럼 보이는 저 섬들은 숫자가 무려 삼천이 넘는다고 한다. 멀리 보는 바다의 빛깔은 풀빛처럼 푸르렀으나 거기에도 무채색의 구름 빛깔이 엷게 살짝 드리워 있었다. 파도는 거의 일지 않았고 잔잔한 흰 물비늘이 반짝거리고 있어 호수처럼 아늑하였다. 연안에서 가까운 곳에는 낚시하는 곳인지 아니면 관광광객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인지 원두막 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떠있다. 그렇게 시야에 들어오는 원경은 그것이 그림이지 실상이 아닌 듯 하여 마치 거대한 그림을 향하여 우리가 다가드는 듯 하였다. 포구가 더욱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여기저기 떠다니는 배들이 제 갈 길을 유유히 오가고 있었다.
일행이 탄 배는 전세 유람선이었다. 수많은 배들이 진을 친 포구를 떠나 미끄럼을 타듯 굴러 섬들의 마을을 향했다. 우리는 배안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선실을 나와 전망이 좋은 배위로 올라갔다. 우리 뒤를 따르는 배들이 있는가 하면 저 멀리로 앞서 가는 배들, 포구로 돌아오는 배들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오가고 있었다. 연안 쪽은 관광호텔들이 여기저기 바닷가와 산기슭에 자리잡고,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은 우리가 탄 배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면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연안 쪽을 제외하고는 멀리 섬들이 산맥을 이루면서 타원형의 호를 그으면서 바다를 에워싸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느니 무수한 섬들의 떼들… 수면에서 불쑥 높게 솟아오르다가는 급한 경사로 내려앉은 숱한 섬들이 무수히 이어지고 , 또 더러는 뚝 끊어져 그 사이로 수평선이 빼꼼이 들여다보고 다시 시샘이라도 하듯 섬들이 수평선의 눈을 가로막아 버린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은 칼로 쳐낸 듯 가파른 벼랑을 한 바위 덩어리요 그 돌 틈에 뿌리박고 서 있는 진기한 나무들…. 모양도 제 각각이었다. 그 섬들이 어떤 것은 홀로 외롭고 오만하게, 또 어떤 것은 둘씩 다정하게 짝을 이루어 마주보기도 하고 또는 나란히 서 있기도 하고 , 또 어떤 것들은 서넛씩 어깨를 겯고 친한 동무처럼 사진을 찍으려는 듯 우리들 앞에 선다. 그 가까운 섬들의 어깨너머로 또 다른 섬들이 넘어다보는가 하면 그 옆으로 더 멀리 보이는 것들은 시야에서 흐려지고 아득히 그 너머에서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유람선은 섬들의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며 다닌다.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섬들을 돌아가면 섬마을 안에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그런 곳은 섬들이 오붓한 가족처럼 모여 서로를 바라보며 둘러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섬들이 사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또 그 마을을 지나면 다시 이어지면서 기다리는 섬들의 무리들…. 모양도 가지가지다. 쌍봉낙타의 등처럼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기이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서로 어우러져 보이는 것들, 깎아지른 듯이 우뚝 선 것들이 있는가 하면 완만하게 둥그러진 형상도 보이고, 그 암벽들의 틈에 자라는 푸나무들이 풍성한 것이 있는가 하면 바위만 우뚝 선 것들도 있다. 또 우뚝 선 섬들이 그 그림자를 맑고 잔잔한 물 위에 드리워 거대한 화폭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들의 마을은 정말 더 없이 이채로운 풍광을 서로 뽐내듯이 자랑하고 있었다.
그 숱한 섬들의 마을을 구경하면서 점심을 먹고 술잔을 나누기도 하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아담한 섬 앞에 배는 정박했다. 티톱이란 섬이다. 호치민이 외국 친구와 함께 하룻밤을 묵어 간 곳이라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어디에나 군졸이 많으면 큰 장수 하나가 반드시 있는 법. 하롱배이의 그 숱한 섬들을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이 여기라고 한다. 이 섬은 고운 백사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멀리서 실어온 모래라고 한다. 수림이 우거진 해변을 배경으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들이 좀 많다. 철없는 아이들은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친다.
우리는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이름을 잘 알 수 없는 푸나무들이 길섶에 정겹다. 억새도 보이고 벤자민을 닮은 나무들도 보인다. 한참을 힘겹게 가파른 곳을 올라 정상에 서니 전망대가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무수한 섬들의 산맥…. 수많은 군졸들을 내려다보면서 호령하는 씩씩한 장수의 기상이 이럴까?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 앞에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하롱배이의 모든 섬들을 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거대한 붕새가 되어 힘찬 날개로 비상하여 이 하롱배이 일대를 휘 한 번 둘러보면 좋겠다.
이 섬을 배경으로 앞쪽을 본다. 여러 가지 형상을 한 크고 낮은 숱한 섬들이 이 섬을 옹위하며 아담한 호수를 이루고 있다.
물빛은 기묘한 바위와 푸른 수목들로 덮인 섬 그림자 때문인지 더욱 푸르러 보였다. 물결 한 점 없는 잔잔한 얼굴이다. 다시 눈길을 돌리니 둘러싸인 섬들 너머 또 다른 섬들이 요새를 지키는 듯 겹겹이 서 있다. 한곳을 보니 섬들 사이로 수평선이 보이면서 먼 바다가 나를 손짓하고 있었다. 멀리 연안 쪽으로는 포구로 돌아가는 유람선들과 여기로 찾아오는 배들이 연이어서 고래떼들처럼 몰려가고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일으키는 낮은 물살들이 맑은 하늘 위에 나타나는 소리 없는 비행운처럼 보인다.
< 하롱배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세계의 8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자 동양의 3대 절경이다. 하롱베이 일대의 평균수심은 200m로 물이 들면 2000여개의 섬, 물이 나가면 3,000여개의 섬들이 천태만상을 드러낸다
하롱베이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베트남민족의 호국전설이 서려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 고난 받고 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하롱(下龍)이라 했다. 용은 여의주로 적을 물리쳤고, 여의주는 크고 작은 섬이 되어 보석처럼 바다에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일까, 베트남전쟁의 와중에도 이곳에는 전화(戰禍)가 미치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섬들에 이런 비극적인 전설이 있었다니…. 이 바다에 안개라도 자욱하게 피어오르면 그대로 수묵의 동양화가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지지 않겠는가? 또 달빛이 환한 밤에는 하늘에서 천상의 아름다운 악기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면서 선녀들이라도 훨훨 날아 내려올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땅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더러 있다. 이런 명승지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하늘나라의 선녀나 신선들이 귀양이라도 오는 하늘나라의 유배지인가? 하여튼 선경이다. 이런 곳에서 한 시절을 살고 나면 속세의 티끌을 완전히 씻을 것 같다.
그런데 섬 하나하나를 보면 서해의 명승지 홍도의 아름답고 기묘한 절경보다는 좀 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석회암은 풍화와 침식작용에 깎이고 깎여도 화강암처럼 희한한 절경을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홍도의 절경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던 일이 생각났다. 홍도가 규모가 작은 멋진 협주단이 내는 음악소리와 같다면 하롱배이는 대규모의 관현악단의 웅대한 소리에 비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절경 아래서도 구차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아팠다. 대나무로 만든 작은 전통 나룻배 '타잉난'에 아이들을 태우고 구걸하는 여인의 고달프고 지친 표정을 보았다. 곁에는 얼굴에 때가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한 옷을 입은 어린 아들도 함께 손을 내밀며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갓난아기가 철도 모르고 고단한 잠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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