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기행문-1

1. 미쓰터 리

저 언덕 넘어 2006. 11. 3. 16:31
 

1. 미쓰터 리


  지금도 그지없이 선량한 그의 눈매가 내 눈에 선하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이틀 동안 그는 우리 여행단의 캄보디아인 안내원이었다. 현지에 사는 한국인 안내원이 모든 걸 책임졌지만 그는 우리의 안전을 돌보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일행 중 한 사람이라도 오랫동안 보이지 않을 때는 사람을 찾아 나섰고 다른 관광지로 이동할 때는 승차인원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현지 관광 종사자들은 외국인 단체 여행단을 점검하면서 현지인 안내원이 반드시 같이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그처럼 그의 눈매는 착해 보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의 마음이 그만큼 선량하고, 순박하게 살아왔기 때문일 게다.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서른 살의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자국에서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어떤지를 알아보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우리 차의 기사는 또 얼마나 웃음이 많은 친구였던가? 그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싱긋이 웃어 주었다. 둥글넓적한 갈색 얼굴에 후덕한 입술을 한 그는 잘못 보면 좀 모자라는 듯한 웃음으로도 보이는 그런 사람 좋은 미소로 우리를 대했다. 하기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끼리는 미소야 말로 더없이 서로를 편안하게 하는 몸의 언어인 것이다.

  

  약간 길쭉한 얼굴, 조금은 짙은 눈썹에 기름을 바른 듯한 반 곱슬머리, 갈색 얼굴에 콧날이 약간 선 그의 얼굴은 조금은 잘 난 축에 들어 보였다. 또 정말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남에게 그렇게 선한 눈매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오랜 전생 동안 정말 착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도 이제 이순의 나이에 이르렀다. 이 즈음에 와서야 나는 사람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번 미쓰터 리를 만나고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세인들이 끊임없이 그 끈을 놓지 못하는 명예도 부도 권력도 사람의 선한 삶에 비할 바는 아닌 것, 이것을 나의 여생의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인상은 대체로 키가 작고 가냘픈 몸매에 강퍅한 얼굴로 떠오른다. 그런데 캄보디아 사람들은 체구가 월남인들보다는 좀 더 크고 얼굴은 넓으면서 후덕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물론 나의 극히 부분적이고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때로는 부분으로도 전체를  짐작할 수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 한국인 안내원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여기 사람들은 외국인일지라도 상대방의 눈을 한참 보고 있으면 씨익 웃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람을 믿고 있고, 동시에 사람을 향한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리라.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 외세의 식민지로 수탈의 역사를 겪었고, 내전으로 비참한 살상의 비극을 겪었으면서도 이런 웃음을 어떻게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을까? 그것은 광활한 평원을 뒤덮은 사시사철 푸른 수목들과 비옥한 황토에서 풍성한 먹거리를 가꾸는 원시적인 농경인의 생활을 아직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상대방을 그렇게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친다. “ 이 자식 왜 보긴? 별 놈 다 보겠네 하면서….” 아무리 선한 눈으로 상대방을 보아도 우리는 이미 그런 미소로 답할 마음의 창을 닫아버린 지 오래 되었다. 어쩌면 모두가 적이 되어버렸는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마음 놓고 쳐다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마음 놓고 바라다 볼 수 없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슬픔이 또 어디에 있는가? 캄보디아는 지금은 비누 한 장도 만들 기술이 없는 나라라 한다. 그러나 서서히 밀려오는 문명의 물결이 멀지 않아  메콩강 하류 습지로부터 역류하여 그 부드러운 황토 흙을 오염시키게 된다면 저들의 선량한 눈빛이 어찌될까 생각하면서 이방의 나그네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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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미쓰터 리의 착한 눈빛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지만 않는다면 내가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다. 그리고 미쓰터 리의 눈에 비친 나의 눈빛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도 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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