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신기한 낙서 문화, 쓸기 위해 버리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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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우리는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행태에 절망하거나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모습을 이해와 관용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람이란 모두 달라 천차만별인데 우리는 보통 자기 기준에서만 타인을 바라보게 되어 여러 가지 갈등과 반목이 일어난다.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빨리 하면 할수록 살아가기에 편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요새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볼 때는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리 그런 시간과 여유와 노력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개 키우는 사람을 내가 어찌 하겠는가? 그들에게도 할 말이 있고 개 키우는 것도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문화일 뿐 내가 개를 키우지 않으면 될 뿐이지 그를 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개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냥 덤덤하게 고개를 주억거려 주면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맞장구를 쳐주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분명히 옳지 않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그것을 다 인정하고 동조하라는 말은 아니다.
골목 안 집들 벽에 보이는 낙서
내가 이들 나라에서 본 것은 곳곳에 낙서가 많다는 것이다. 집들의 담장에는 물론이고 가게의 벽에, 성당이나 지하도의 벽면, 버스나 열차의 외부, 심지어는 고속도로 가의 방벽 등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는 낙서들이다. 자기 차의 외관에 낙서를 가득해 놓은 경우를 우리나라에서도 본 일은 있다. 어떤 데는 온 벽이 낙서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장난으로 해 놓은 ‘영숙아 사랑해’ 나 ‘철수 나쁜 놈’ 그런 식의 낙서는 물론 아니다. 페인트로 그려놓은 그 낙서는 문자들은 아닌 듯했다. 무슨 기호 같기도 하고 도안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무슨 알 수 없는 신들린 무당들이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주술적인 그림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이상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안내원은 그런 낙서를 하는 이들이 예술적 행위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혹 이런 낙서를 하다가 집주인이 본다 해도 관대하게 봐 준다고 했다.
쏘렌토로 가는 기차에 그려진 낙서
어떻게 보면 무질서하고 주위 환경을 어지럽게 하는 이런 낙서 문화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이들 나라 사람들이 자기와는 다른 남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수용적인 태도가 많이도 부러웠다.
이 글을 쓰고 나서 혹시나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 70년대 초 필라델피아와 뉴욕의 지하철 낙서에서 시작된 그라피티(Graffitti)는 바스키아, 케이트 하링, 에른스트 피뇽, 메스나제 등의 활동으로 하나의 포퓰러 아트로 정착됐는데 지금은 랩, 브레이크댄스와 접합돼 힙홉(Hip-Hop)문화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이 낙서문화(그라피티)는 도가 지나쳐서 종종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
말하자면 초현실주의적 현대식 벽화라고 하면 될까? 이런 사실을 알아버리니까 오히려 신비감이 사라진다. 어떤 사물의 정체를 알아버리면 사물은 그만 그 신비성을 잃어버린다.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뒤에 달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2)
길에 휴지나 담배꽁초를 버리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담배꽁초를 버린다는 것은 공중도덕을 위반하는 일이다. 깨끗한 길에 껌을 씹다가 뱉어 놓으면 길바닥에 들어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매우 불결하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벌금을 내야 한다.
길바닥에 붙은 껌들 (파리)
이 이야기는 이번에 내가 다녀온 나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얘기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길가에는 종이 조각이나 담배꽁초 같은 것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선진국이란 나라가 공중도덕이 엉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가 보니 청소가 잘 안 되는 곳은 불결한 곳도 있었다. 영국의 윈저성을 찾아가는데 버스를 내려 오르는 계단을 오르는데 담배꽁초며 쓰레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정말 더러웠다. 언제 청소를 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는 일부러 그렇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청소부가 일거리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행 중에는 안내원의 이런 설명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신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그들은 꽁초 버릴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길가에 버릴 텐데 여기서는 막 버려도 괜찮다. 아니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거리를 만드는 일이 된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렇다고 집에 있는 쓰레기를 길에 내다버린다든지 자기 가게에서 나온 물건 담은 종이 상자를 길가에 마구 버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담배꽁초나 종이 조각을 일부러 던진다고 생각하면 될까? 독일에서는 이 쓰레기 버리는 것이 좀 문제가 많다고 하여 규제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옛날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요새처럼 실업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한다면 일자리 하나는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아마 온 골목은 쓰레기 천지가 될 것이다. 지금도 고속도로변에 자기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얼굴 두꺼운 정말 쓰레기 같은 얌체족들이 많은데….
요새 학생들은 교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 종이는 물론 책을 버리기도 한다. 운동복을 함부로 책상 위에 두고 가거나, 우유를 먹다가 남긴 채 그것을 복도에 두고 가는 놈들도 있고, 컵라면 국물을 남겨서 교실 쓰레기통에 버리는 놈들도 있다. 심각한 문제다. 내가 귀찮아 버린 것을 누가 줍겠는가? 자꾸 버리다가 보면 나중엔 자식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게 될까 걱정이다. 버린 것은 반드시 자기가 도로 주워야 한다. 이것이 인과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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