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4개국여행기

17. 에펠탑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저 언덕 넘어 2006. 11. 13. 00:50
 

  17. 에펠탑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1)

 

   그 날 밤에는 낮에 잠깐 본 에펠탑에 올라 파리의 야경을 보고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되어있었다. 일찍이 에펠탑은 사진에서 많이 보았다. 그리고 세느강은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어감에서 느끼듯 매우 아름다운 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전에 다녀온 사람의 얘기로는 조그마한데 물이 아주 더럽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에펠탑 전망대에 있는 세계 각 도시의 방향 표시판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만국박람회장에 세운 3백 미터가 넘는 철탑이다. 에펠이라는 공학자이며 교량건축가가 세웠다. 7300톤의 철강을 사용하였는데 거대하고 웅장하고 아주 조형미가 아름다웠다. 여기에 올라가면 파리는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에펠탑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도심은 어둠으로 휩싸인 초저녁이었다. 철탑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장대하고 화려한 모양이라니, 마치 신화 속의 어떤 거인이 철탑을 불 속에 넣어 벌겋게 달구어서 금방 번쩍 세워놓은 것 같았다. 조명은 때로 이렇게 사람을 몽환상태로 만든다. 나의 마음도 그만 함께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점멸등이 켜진 또 다른 모습

 

  승강기를 타고 오른다. 창 밖으로 가까운 건물들의 불빛이 아래로 가라앉더니 시야가 넓어지면서 아름다운 야경이 드러난다. 오르면 오를수록  불빛들은 작아지면서 드디어 온 파리의 야경이 일망무제로 어둠 속에 펼쳐진다. 밖을 나가니 바람이 세차다. 공중에 사는 신들이 왜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했느냐고 금방이라도 우리들을 끌어내리려는 듯 험상궂은 강풍으로 몰아쳐 온다. 난간이 없다면  금방 허공으로 휩쓸려 날아갈 듯하다.

 

  눈 아래로 가느다랗게 아득히 세느강이 굽이굽이 흘러간다. 군데군데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방사형의 거리의 윤곽들과 갖가지 건물들이 불빛을 휘감은 채 장난감처럼 드러난다.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그것들은 불빛들의 다정한 속삭임으로 정겹게 무리들을 이루어 명멸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드디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멀리 어둠의 지평선 속으로 가뭇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야경을 뒤로하고 아쉬웠지만 미끄러지듯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다시 이 탑의 전경이 다 보일 수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벌써 탑의 조명이 흰색 점멸등으로 바뀌어서 탑 전체가 또 하나의 화려하고 신비한 빛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2)

 

  <세느강은 긴 쪽이 약 11km이고 짧은 쪽은 8km인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파리 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세느강의 휘어드는 부분에 시테섬과 생 루이섬이 있다. 세느강에는 32개의 다리가 있다. 유명한 다리로는 아폴리네르의 '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라는 유명한 시 ‘미라보다리’의 그 '미라보다리'가 있다. 또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던 퐁네프 다리가 있고, 영화 '파리의 정사'에서 나오는 위층에 지하철이 달리는 2층 다리인 비르아켐 다리 등이 있다.>

  

                           멀리 아름다운 ‘알렉산더 3세의 다리’ 가 보인다.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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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관광을 하는 동안 세느강을 건너다녔지만 강폭은 눈어림으로 보아 100미터는 됨 직하였으나 큰 강은 아니었다. 물은 푸르지는 않았지만 많이 오염되지도 않은 듯하였다. 수량은 상당히 많았다. 강가에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숱하다. 시테섬에는 노틀담 사원이 고딕식 첨탑을 이고 웅장함을 자랑하고, 연이어 프랑스 학술원, 오페라 바스티유, 파리 시청,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 수많은 명소들이 펼쳐진다. 또 제각각의 아름다운 조형을 자랑하듯 수많은 다리들이 숱한 사연과 일화를 간직한 채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자연이 이루어 놓은 강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이방인에게 그윽한 정서를 안겨 주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탔다. 물길을 헤치면서 배는 서서히 나아갔다. 안내 방송에서는 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 등이 나온다는데 오늘은 한국어 방송도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선실에서 나와 배 앞부분에 홀로 기대어 선다. 어둠 속에서 강물이 흰 물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환하게 밝힌 도회의 불빛이 강물위로도 흘러내렸다. 그 불빛들 속에서 무수한 건물들이 다가왔다가는 지나간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화려한 외양을 한 석조건물들이다. 그리고 저 만큼서 갖가지 조명을 밝힌 다리들이 가끔씩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머리 위로 다가온다. 사람들이 환호를 한다. 마치 거대한 비행물체가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시야를 스쳐지나갈 때의 그 느낌을 사람의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변에 선 나무들과 무수한 건물들의 대열들….  멀리 조명을 한 에펠탑도 다가온다. 조명용 탐조등(써치 라이트)이 가끔씩 일정한 주기로 멀리 빛을 쏘아대면서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배에서는 조용한 샹송이 흘러나왔다. 찬바람이 세차서 귀가 시려왔다. 무수한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도 몰래 곡조도 가사도 알 수 없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에펠탑 아래 강물이 흐른다. 강물만 흐르는가, 강물 위를 내리는 불빛도 흐르고 별빛마저 흐른다. 흐르는 물길 따라 배가 흘러간다. 뱃전에 선 나도 흐른다. 지나가는 건물들이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찌 눈에 보이는 것뿐이랴. 무수한 세월이 강물을 따라 흘러왔다 흘러가고, 그 흐름 속에 숱한 사람들도 흘러왔다가 간다. 그들이 쌓아올린 저 욕망의 산물들과 그 위에 새긴 권력과 부와 명성과 맹세와 사랑도 흘러왔다가는 사라져 간다. 흘러왔다 다시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술도 없고 사랑도 없어도, 흐르는 물 위의 뱃전에서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방의 나그네는 알 수 없는 느꺼움에 가슴이 벅찼다.  찬란한 불빛이 명멸하는 에펠탑 아래 이름도 고운 세느강은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