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5국

33. 러시아에서 남은 이야기

저 언덕 넘어 2019. 3. 5. 10:28

   

 1. 아름다운 사람, 은슬(가명)씨


   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그 여행길 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좋은 풍경이나 감명 깊은 역사적 자취나 감동을 주는 이야기보다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고요? 그건 우리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내가 직접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내 바로 앞에 대면한 사람의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모스크바에서 만난 '은슬' 양은 여행 안내 아르바이트 생입니다. 그는 지금 유명 대학 러시아어통역대학원에서 공부합니다.

  그는 수년전 지방의 모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던 날 영어듣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어수선한 방송 사고 상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수를 할까하다가 더 넓은 곳으로 떠나서 마음껏 꿈을 펼쳐보겠다고 부모님께 어렵게 동의를 구해서 이곳에 왔다는 겁니다. 그것도 여자 혼자 몸으로(하기야 이런 표현 자체가 좀 문제가 있지요. 성불평등 의식에 오염된 생각이니까) 여기 와서 겪을 어려움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이길 것이다' 라고만 생각했답니다.

 하기야 무슨 일이든 다 알면 시작조차 하기 힘이 듭니다. 큰 뜻을 세웠으면 용감하게 시작하는 것이 큰 일,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첫걸음 일테니까요. 사는 것이란 어차피 언제 어디서나 줄곧 문제는 일어나고, 사람은 그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경우에도 길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길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할 때, 그래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나중에는 탄탄대로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와서 어학원에 다니고 다시 대학에 들어갔답니다. 노력을 많이 해서 자기가 바라는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지요. 학비도 벌어가면서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안내 그리고 한국에서 출장을 오는 기업인들의 통역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많은 고객을 확보하여 수입도 괞찮다고 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러시아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는 여건 속에서 말입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 힘이 나는 그의 누구도 못 말리는 뚝심과 활달한 성격, 원만한 대인관계 등 그녀의 거의 남자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말을 아주 잘 했읍니다. 어떻게나 말을 잘 하는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그녀의 말에 홀려서 쥐죽은 듯이 고요한 분위기가 되었지요.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답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수완이 있는 사람입니다. 넘치는 말재주는 사람들한테 부정적으로 보일 경우도 있지만 대인관계에서는 아주 유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을때 그는 아직 사회의 초년병이라 우리 어른들이 볼 때는 치기를 느낄 때도 있지만 아주 젊은이다운 패기를 느낄 수 있었고, 아주 당당하여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그녀가 아주 전도유망한 사람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속적인 성공을 할 수 있는 젊은이처럼 느꼈습니다. 그리고 참 때를 잘 만난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젊은 시절에는 유학이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지요.


  나는 요새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현실이 너무 각박하니까 공무원 시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실이 안탑깝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가 젊은이들의 모험심이나 진취적 기상을 펼치기에 너무 어려운 때라는 것을 직감하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은슬양 처럼 생긱을 넓혀 좁은 한국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입니다. 내가 북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은 인구가 적으면서 자원이 많고 국민소득도 높고 특히 민주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아주 좋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한국처럼 공부로 사람을 줄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이 거의 없는 아주 좋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입니다.  고교만 나와서 일류 목수가 된 사람의 벌이가 매우 좋을 때, 어렵게 많이 공부를 하여 법관이 되어도 벌이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은 목수로 사는 것을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입니다.직업을 하나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인들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영어만 좀 할 줄 알면 취직을 쉽게 할 수 있고(기술이 있다면 더욱 좋고) 영주권 얻기도 상대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은 곳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우리 젊은이들이 한 번 쯤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물론 어려움은 각오해야 하지요. 어디가나 이방인 취급은 어차피 받아야 하겠고 외로움을 이겨낼 자신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한국 만큼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좁은 나라에서 여러가지 차별로

주눅이 들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점점 외로운 섬이 되어가는 이 딱한 현실 속에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2. 러시아에서는 뭔가 조금은 불안하였다.


  러시아는 치안이 조금 문제가 있다 해서 자유로운 개별 행동을 금하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인상이 좋을 수 없었다.

 

  상트페테르브르크 호텔에서 1박 하던 날의 일이었다. 피로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내가 " 뻥 " 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건 분명 총소리였다. 이튿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것은 분명 총소리였다. 공포였을까? 하여튼 다른 곳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구경할 때는 나혼자였는데

여느 잡상인도 아닌 듯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해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니까 더는 따라 오지 않았다.

 

  역시 참새 언덕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이곳에는 수상한 남녀의 한 무리가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는 둥 수작을 걸어왔다. 내한테는 수상한 남자가 알 수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다가왔다. 괜히 시비를 걸어오는 눈치였다. 나는 얼른 안내원 한테로 가서 피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여기서 사진을 같이 찍었다가는 좀 곤란을 당한다고 한다.  여자들이 모델료를 달라고 큰돈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주지 않으면 옆에 있는 남자들이 끼어서 시비를 건다는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시비가 붙어서 혹 피해를 당했다고 경찰을 불렀다고 치자. 그러면 경찰이 잘 오지도 않지만, 혹시 왔다고 해도 신고자인 외국인 편을 들어서 일을 잘 해결해 주지도 않아서 낭패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럴 테지.


  그러면 이런 사실을 지방정부에서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걸까? 그게 바로 민도가 낮고 사회질서가 바로 잘 잡혀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50년대 시절에는 주먹이 센놈이 최고였다. 시비가 붙어서 센놈한테 걸리면 얻어맞고 맞은 놈은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혼자 드러누어서 끙끙 앓는게 고작이었다. 요새 젊은이들은 이런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인권의 성숙은 언제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때 어린 우리들은 그런 상황을 빈번히 보아왔고, 그럴 때 우리는 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지냈던 것이다.

 

  아,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 온 한국 인권신장의 역사가 대견하다. 그러나 아직도 인권의 사각지대는 이 사회의 곳곳에 말도 못할 만큼 많이 남아 있다. 근자에 일어난 일이지만 지방의회 의원이 캐나다 관광에서 저지른 가이드 폭행 사건이 전세계의 뉴스를 탄 사건도 참 말로 못할 부끄러운 한국인의 민낯이 아닌가?

                

             3. 러시아 에서 엿본 한국인 교포의 생활


   이틀간의 여행에서 내 어찌 러시아에서 한인들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그들과 하루 저녁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한 내가 어찌....

  신문은 그 사회의 얼굴이라한다. 한인 식당에서 발견한 ' 한인회보 '를  가져올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한인 정보지였다. 이 신문을 자세히 보니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의 모습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여기 사진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