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라진 기억 속 여행
흘러간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머릿속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아련하다. 안개 속처럼, 전설 속처럼 흐릿하면서 꿈 같이 떠오르는 연상작용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제나 애수의 정서로 나타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사진을 보는 방법이다. 이것은 정지된 화면에 분명하게 보이므로 우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그대로 재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는 순간이나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번 여행은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내가 살았던 50년대 후반의 기억을 많이 되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열 살 전후의 기억 말이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길이었다. 농부들이 논에서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하기야 우리도 아직 농촌에서 한 두 사람이 손모를 심는 광경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여러 사람이 모를 심는 그 옛날 풍광 그대로다. 물소에 쟁기를 메우고 논을 가는 이들도 있었다. 혹 리어카 같은 것도 보였다. 캄보디아 씨엠립 외곽에서는 소들이 논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고삐를 쥐고서 소를 풀밭으로 몰고 가는 아이들도 보았다. 또 톤레샾 호수 가까이에는 물소를 타고 가는 아이를 볼 수도 있었다. 또 도랑물이 흐르는데 보를 막아놓은 물꼬로 물이 힘차게 은빛 물살을 일으키고 흐르는 모습에서 아련한 과거의 기억들이 번개처럼 재생되었다.
아니 어디 그뿐인가? 캄보디아에서 본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 몇 키로를 자전거를 타고 고등학교에 통학한다면서 팔찌를 팔고 있는 귀여운 처녀아이, 때가 꼬질꼬질 묻은 옷을 입은 아이들, 삽으로 도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 톤레샾호수의 수상촌에서는 무거운 기계를 여러 사람이 나무로 묶어서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모습도 언뜻 보였다. 돼지 장수가 여러 마리의 돼지를 자전거 뒤 짐실이에 묶어서 운반하는 광경도 보았다. 또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의 모습....
어린 시절에 겼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그 풍경들이 눈앞에서 재현될 때 나는 그 아련한, 지금은 없어진 그 풍경을 보면서 감회가 너무 컸다. 농경사회에서 유년을 보낸 이들에게 이런 풍경들은 정말 의미가 크다. 거의 원시적인 농경살이를 이제 우리는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풍경들이 더 낯설지만 그냥 보고 지나칠 따름이다.
잃어버린 풍경 속에는 잃어버린 삶이 있고 잃어버린 세계가 있다. 근대화를 지나 현대화된 사회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낭만이나 귀중한 교훈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소는 농경을 돕는 가축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고기를 대어주는 존재다. 그들은 들판에서 한가로이 노닐거나 마음대로 먹고 싶은 풀을 뜯을 수 없다. 컴컴한 우리 속에 갇혀 성장촉진제나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으면서 산다. 암소는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배고 수소는 수컷을 거세당하고 산다. 이제 가축들은 더 이상 농약이나 기름으로 오염된 풀을 뜯을 수도 없고 사람들은 더러워진 도랑물이나 강물에서 마음대로 목욕을 할 수가 없다.
기계를 이용해 수월하게 일을 하는 요새 농부들은 서로 돕고 돕는 품앗이 일을 하는 두레의 아름다운 정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또한 고달픔을 참아내며 부르던 구수한 농요를 잃어버렸다. 아, 저들의 논에서는 아직도 오염되지 않아서 논우렁이가 자라고 살진 붕어와 미꾸라지 물방개가 돌아다니고 메뚜기들이 날고 이제 우리는 보기가 어려운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가을하늘을 날 것이다. 저기 아이들은 풀밭에서 소를 뜯기다가 방아깨비를 잡고 뒹굴고 놀다가 누워 푸른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을 바라보기도 하리라. 그리고 노을이 붉게 펴지는 길을 걸어 휘파람을 날리면서 땅거미가 내리는 길을 걸어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마을에 닿을 것이다.
서바라이 호수 입구에서 반지를 파는 아이들
저러한 농경생활 속엔 아직 가난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 이러한 우리들의 풍요는 우리들을 반드시 행복하게 했는가? 가난은 우리들에게 소박함을 주고 소담스러움을 주며 조그마한 데서 만족할 줄 알게 한다. 부유하면 좀 더 소유하려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나눔의 아름다움과 작은 데서 만족할 줄을 아는 소박함을 잃는다. 가난에서 사람다움을 배울 수 있지만 부유함에서는 사람다움을 잃는다.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무엇을 잃는 것이 된다.
'동남아기행문-1'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그 땅의 풍토와 식생 (0) | 2006.11.22 |
---|---|
13. 떨어진 이삭들 (0) | 2006.11.21 |
11. 킬링필드 (0) | 2006.11.11 |
10. 여행지에서 만난 세 여인 (0) | 2006.11.11 |
9. 톤래샾 호수의 수상마을에서 (0) | 2006.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