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땅의 풍토와 식생
한겨울 옷을 입고 여름나라를 간다는 것이 처음엔 아주 어색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노이의 2월초순은 거기서는 건기로 우리의 겨울에 해당된다. 낮에는 우리나라의 늦여름 날씨 같고 아침저녁으로는 가을날씨다. 처음 내려서 통관을 기다리던 하노이 공항 안은 답답했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상쾌하였다.
하노이에서는 햇빛을 잘 볼 수 없는 날이 많단다. 그러나 씨엠립의 날씨는 한여름 날씨라 반바지차림을 해야 했다. 다행히 건기라서 땀이 적은 나는 거의 땀이 나지 않았다. 그쪽으로 여름 여행을 가는 것은 비도 많이 오고 너무 더워서 힘들다고 한다. 여행하기에는 힘이 들겠지만 더운 나라에는 한여름에, 추운 나라는 한겨울에 가는 것이 한껏 흥취가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로 고통을 느낀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한겨울 속에서 여름을 맛보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위 - 캄보디아 호텔 앞 정원의 열대수 나무들, 아래 - 열대수들이 꽉 들어찬 호텔 정원
밤 하노이 공항을 처음 나섰을 때 줄 지어 우리를 반긴 것은 우뚝 선 야자수들이었다.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씨엠립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 창문 밖으로는 수많은 호텔들의 지붕들 사이로 아득히 펼쳐지는 야자수를 비롯한 열대 수림의 풍광은 정말 오랜 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위 - 앙코르 톰 일대를 덮고 있는 밀림들.
아래 - 캄보디아 톤레샾 호수 가는 길에 인가 옆에 우거진 숲
어딜 가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곳이다. 땅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하고 습지가 많다. 기온이 높으니 나무들이 쑥쑥 자라나 인적이 먼 곳은 정글을 이루게 되는 것이리라. 모두 키가 크고 죽죽 벋은 나무들이다. 호치민 광장은 의도적으로 오랫동안 조성된 곳인데 갖가지 수림이 정말 울창하고 이름 모를 고목들도 많아 보기에 정말 좋았다. 하노이에서는 높은 산들도 보았지만 씨엠립은 그야말로 끝없는 평원이다. 지평선에서 해가 뜨고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진다.
나는 그 숱한 나무들의 모습들에서 알고 있는 나무들이 있나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위도가 달라서인지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위도가 비슷한 유럽지역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으나 여기서는 힘이 들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야자수 종류와 바나나 농장의 바나나 나무들-우리는 그것을 파초라고 말한다.
위 - 왼쪽으로 보이는 밑둥이 우람한 부처나무이고 옆으로 나 있는 것이 뿌리줄기(?)
아래 - 전단향나무의 뿌리가 땅위로 드러난 모습
호치민 광장에서는 아름답게 피어있는 홍도화 (요새 우리나라에 수입된 외래종으로 복숭아 사촌쯤 되는 나무로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고 한다)를 보았고, 무수한 뿌리줄기(?)들이 숱한 중생들처럼 그 나무의 주변에 솟아있는 부처나무(?)도 보았다., 앙코르톰 나무사원에 들어가다가 본 전단향나무는 불경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참으로 인상 깉었다.
이름 모를 풀꽃들
씨엠립 근처 한 작은 도시의 큰 길가에 조성된 녹지대의 나무숲들
앙코르와트를 둘러싸고 있는 밀림들
앙코르와트에서 관광객이 가는 뒤로 이름모를 꽃이 아름답다
그리고 들에서 본 옥수수, 벼들… 또 억새, 벤자민, 유도화, 대나무, 소나무 들이었는데 이것들도 모양은 조금씩 달랐다. 대나무는 키가 무척 잎도 우리 것과는 또 달랐다. 하노이 외곽지에서 본 군락을 이룬 소나무는 그야말로 죽죽 뻗어서 컸고 우리 소나무처럼 정취는 없어 보였다. 하노이나 씨엠립에서 본 잔디는 어린잎은 우리 잔디와 비슷하나 자라면 잎이 더 넓어져서 우리나라 잔디보다 보기가 덜 좋았다. 또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 나무를 보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아도 그 모양은 잘 알지 못하겠다. 눈에 익지 않은 사물의 모습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한 번 보고 잘 잊히지 않는 것은 이성의 얼굴뿐인 것 같다.
하노이에서는 가로수가 있었는데 층층나무 비슷한 나무였다. 낙엽이 지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다 잎이 푸른데 잎들이 떨어져 낙엽이 쌓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들 이방인처럼 보였다. 아열대인 하노이에서는 억새나 갈대 등이 겨울모습을 하고 있었다. 씨엠립은 열대에 해당되겠는데 나뭇잎이 진 것은 많이 눈에 뜨이지 않았는데 더러 이름 모를 나무들이 나목으로 보였다.
열대상록림 속에서 낙엽수가 보인다 - 앙코르톰에서
앙코르 톰사원 앞에서 열대 상록수림이 우거진 숲 속에서 외로운 낙엽수의 잎 하나가 빙그르르 파문을 지으며 떨어지는 모습은 참 신기하고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씨엠립의 앙코르 왓트 입구에 있는 못에서는 아름다운 연꽃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붉은 연꽃이었다. 그리고 톤레샾 호수로 가는 길목의 도랑들에서 자생하는 연꽃을 보았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게 된 것도 이들 나라를 포함한 인도 일대에 연꽃이 흔한 것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이름을 알만한 것들이 있었는데 모양은 조금씩 달라 일행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니 그들의 눈짐작도 나와 같았다. 그런 것들로는 수양버들 라이락 자귀나무 들이 있었다. 꼭 감나무와 같은 줄기에 작은 열매가 달리는 나무는 현지인에게 물어봤으나 먹을 수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감나무와 같은 것이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씨엠립 어느 밭에서 본 박넝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꽃은 피지 않은 채였으나−을 본 것은 참 인상적이었다. 또 서바라이라는 씨엠립에서 좀 떨어진 거대한 인공호 안의 섬에서는 동백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았는데 안내원은 잘 알지 못하였다. 나에겐 귀중한 발견이었는데 확인할 수가 없어 퍽 아쉬웠다.
붉은 색꽃이 여뀌꽃
그리고 그 섬 안의 무너진 유적지에서 본 여뀌꽃−그것은 분명히 여뀌꽃이었다−은 꽃의 크기가 우리땅에서 자라는 것보다 더 컸다.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개나리꽃−파란 줄기에 노란 꽃송이가 작았으나−을 발견했을 때처럼 감명 깊은 일이었다.
사탕수수를 자르고 있다
하노이 시장 어귀에서 자주색 빛깔의 사탕수수나무 줄기(모양은 우리나라의 수숫대와 흡사하다)를 사서 씹어본 단맛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위 - 하노이의 한 채소가게, 아래 - 황소개구리
시장에서 본 과일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본 것들이었다. 이름 모르는 대추 비슷한 종류가 보였고 토마토인지 사과인지 감인지 모를 붉은 과일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복수박도 보았다. 다른 채소류들은 낯익은 것이 많았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는 황소개구리를 팔고 있었다.
'동남아기행문-1'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나가면서 (0) | 2006.11.23 |
---|---|
13. 떨어진 이삭들 (0) | 2006.11.21 |
12. 사라진 기억 속 여행 (0) | 2006.11.15 |
11. 킬링필드 (0) | 2006.11.11 |
10. 여행지에서 만난 세 여인 (0) | 2006.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