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답사(중국 동북지방)-1

13. 중간에서 돌아온 압록강 철교, 갈 수 없는 우리 땅 만포시

저 언덕 넘어 2007. 11. 22. 06:43
 

13. 중간에서 돌아온 압록강 철교, 갈 수 없는 우리 땅 만포시


 환도산성과 광개토대왕비 장군릉을 다 보고 난 뒤 우리는 집안시내를 벗어나 압록강을 보러 갔다. 

국경수비대에 도착하니 중국 공안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철교를 보러 가는 길에는 사진기를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사진 좀 찍으면 안 되나?

할 수 없다.

 

                   압록강 유원지에서 찍은 만포시 (뒷모습 일부만 조금 보임)


   철로에 오르니 압록강이 저만큼 보인다.

강 건너편에는 벌거벗은 산을 뒤로 하고 만포시가 조금 보인다.

큰 굴뚝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구리 제련소라 하던가?

이편 강가 중국땅 갯밭에는 오미자밭이 길게 뻗어있고 농부 하나가 농약을 치느라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경운기 발동소리가 요란하다. 철교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잘 정비되어 있다.

하루에 한 번 씩 기차가 오가고 있단다.

우리는 선로를 따라 걷는다.

한참을 걸어가니 저쪽 북측에서 인부들이 선로공사를 하고 있다.

거기에는 북한 군인이 지키고 섰다.

멈칫하다가 우리는 더 걸어나갔다. 중간쯤 왔을 때 더 이상은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분계선 표시가 있다.

 

 * 제목 : 압록강 건너 북한 만포시 부근 * 사진크기 : 800*535 (원본사진보기)

* 출처 : © encyber.com  * 설명 :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에서 촬영. 2006.11.

  

  경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북중 국경의 한 지점에 와 있다.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철로나 철교 자체는 아무 다른 것이 없다.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도, 그 위를 떠가는 하늘의 흰구름에도 아무 표시가 없는데 더 갈 수가 없다니?

인간은 아무 표시가 없는 땅이나 산이나 강 같은 것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것을 경계로 삼는다.

국경이라는 것도 그것이다.

하기야 경계는 어디에도 있다.

너와 나 사이에도 경계는 있고, 나무나 풀들 사이에도 나름의 영토가 있고 경계가 있다.

미물이나 아니거나 개체가 있는 한 경계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는 저 북녘의 산하를 바로 눈앞에 보면서 한 걸음을 더 갈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그 절대의 선(線)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민족은 정말로 동족인 것일까?

바로 지척이 한 발을 더 디디면 떨어지는 천 길 낭떠러지와 같다니?

정신이 혼미하다.

 

               <압록강 철교-중국군인>


  우리는 저쪽을 향하여 고함을 치며 손을 흔든다.

거리가 100미터쯤은 될까?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들은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도 알 것이다.

우리가 남쪽에서 왔다는 사실을…….

안내가 돌아가자고 우리를 독촉한다.

할 수 없이 돌아서면서도 고개마저 돌릴 수 없다.

이 철길을 따라가면 강계로 영변으로 내처 평양까지 갈 수 있으려니 그리고 서울까지 갈 날은 언제일까?

우리 생전에 그날이 올 것인가?

몸은 돌아섰지만 마음은 그 길을 정처 없이 따라 걷는다.

아, 아 그 날은 언제쯤인가?


   압록강 철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우리는 압록강 가에 있는 유원지에 갔다. 사람들이 좀 붐볐다.

강가에는 유람 보트들이 여럿 있고 길가 양쪽에는 갖가지 음식점들이 들어찼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한가하게 술을 마시고 음식들을 먹으며 한때를 즐기고 있다.

 

 

   우리도 보트를 탔다.

쾌속선이다. 압록강 물은 꽤 깊어보였다.

그렇게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았다. 건너편 산에는 개간지들이 많다.

가뭄이 심해서인지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지 못한 모양이다.

 

 

  푸른 물이 여울지며 흐르는 강변을 따라 산기슭 쪽으로 도로가 났고 절개지가 깎여진 자국으로 상처가 나 있다.

그 도로 위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풀숲 사이로 잠깐씩 보인다.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별 반응이 없다.

북녘 땅에도 유원지에는 보트가 있으련만 이 한갓진 시골길에는 오직 다니는 사람이 간혹 멀리 눈에 띌 정도다.

저 멀리 골짜기에 동구의 입구가 조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일행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즐긴다.

나는 다시 강가로 나왔다.

흘러가는 강물을 건너편으로 북녘땅의 산맥들은 그 둔중한 뒷모습만 보이면서 강을 따라 북한땅에 장막이라도 두르듯 내려가고 있다. 

마을들이 골짜기에 숨어있는가?

경작지가 여기저기 산중턱 위까지 보인다.

해는 벌써 진 여름날이다.

강 한복판엔 섬을 이루었고 거기에는 풀들과 나무들이 풍성한 숲마을을 이루었다.

정말로 아름답고 정겹고 포근한 동화 속 같은 풍취를 보인다. 

강물은 저 멀리 남쪽으로 느릿느릿 흘러내려가면서 굽이를 틀어 모습을 감추고 있다.


  강을 둘러싼 육지와 산들이 한여름의 녹음으로 짙어있다.

아주 저 멀리서 땅거미가 내리고 있다.

저 압록강의 물줄기는 흘러흘러 초산을 거쳐 벽동 근처에서부터 수풍호를 만난다.

수풍호에서 오래 잠겨 있다가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의주 신의주를 거쳐 황해바다로 흘러들겠지, 내가 아직 못 가본 신의주 앞바다…….

사위가 점점 어둑밭으로 자욱하고 서녘 하늘에는 어둠별이 반짝인다. 

유원지에는 불이 휘황하고 사람들의 소리도 멀리 귓전에 넘나든다.

아득한 고구려의 시간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저 압록강을 나는 끝내 건너지 못하고 이별하여야 한다.

나는 이제 돌아서서 수만 리 중국과 러시아 땅을 거쳐 동해의 파도를 가르고 이 슬픈 반도의 남쪽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