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답사(중국 동북지방)-1

14. 환인 가는 길

저 언덕 넘어 2007. 12. 3. 04:33
 

14 환인 가는 길

  

                                     (1)


   집안에서 성과 무덤으로 고구려를  본 우리는 환인으로 간다.

환인까지는 170km이니 족히 세 시간을 잡으면 되리라.

길은 그냥 시골길이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가 보면 어느 특정 시점이나 지역이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

환인 가는 길이 정말 그런 곳이었다.

오전 시간이란 뭐 그렇게 낭만적인 시간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생활의 시간인데 오늘 이 길은 정말 인상적인 풍정으로 내게 남는다.

 

  

  집안을 벗어나자 차는 계속 시골길을 달린다.

보이는 것은 산과 들과 강이고 띄엄띄엄 보이는 촌락들이다.

논은 거의 없다시피 가끔씩 눈에 띌 뿐 거의 밭이다. 밭에는 거의가 옥수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 이상이 그랬던가? 

줄을 죽 늘어선 옥수수밭을 보면서 열병식을 하고 있다고 그랬지?

중국 동북 지방을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길림성 수백km를 지나오면서  보이는 것은 거의 옥수수밭 일색이라고 하면 무리일까? 

아니다. 긴 옥수숫대를 빼어올린 그 큰 키에 이랑을 따라 줄을 이었으니 그것도 밭마다 넘실거리는 그 모습이라니, 무슨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숫자가 많으면 다 그렇지만 식물이나 동물이나 거대한 군락을  이루거나 집단을 이루면 어떤 위력을 느낀다. 

북녘에서 이루어지는 대단위 집단게임의 일사불란한 동작을 볼 때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힘을 느낀 적이 있다.

개별적인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북한의 전체주의 사회의 힘을 보는 것 같았다. 중국의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을 보면서 온 지구인의 4분의 1에 가까운 13억 인구의 힘을 느끼고, 언젠가는 지구를 뒤덮을 것 같은 중국의 힘, 또 다른 제국의 힘을 예감하고 전율을 느낀다면 너무 엉뚱한 발상인가? 

 

   

   그러나 이런 생각보다는 그 많은 옥수수밭이 지금 나에게는 한량없는 정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득히 눈이 멀게 푸른 물결로 넘실거린다. 그리고는 야트막한 오르막을 만나면 그 오르막을 기어올라 어느 새 내리받이 밭으로 기어내려 또 다시 자기들의 한세상을 펼쳐 보이는 그들의 행렬은 또 이어진다.

그러다가 또 한 굽이를 돌면서 나지막하게 엎드린 붉은 기와지붕을 한 촌락들을 둘러싸기도 한다.

어쩌다가 차창 너머로 뒤를 돌아보면 옥수수밭은 나를 향하여 배웅하듯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이다.


 옥수수밭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해바라기 밭이다.

그것들도 키는 옥수수만 못하지 않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서 그렇지 꽃이 피었다면 그 아름다운 정경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튼튼한 줄기에 탐스런 이파리를 풍성하게 달고 샛노란 무수한 꽃잎을 피운 둥글고 넓은 얼굴이 환하게 웃으면 온 밭이 그득한 웃음으로 넘쳐, 거기 햇볕이라도 쨍쨍 내리쬐면 그 일대가 황금빛의 축제장으로 변할 것이다.

이곳 지방에서는 가끔 가다가 콩도 보인다. 그러나 주인은 역시 옥수수밭이다. 

  

  동북 3성에 이번 여름은 큰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 여름 내내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고 지금도 가뭄이 계속되는데 환인이 있는 요녕성에 가까이 오니까 가뭄이 더 극심하다.

습기가 좀 적은 밭에는 땡볕 아래 옥수수가 시들시들하고 콩잎도 마르고 작은 하천에는 물길이 끊어진 곳이 보인다.

어떤 곳에는 하천 바닥을 파서 물을 대느라고 양수기가 관을 늘어뜨리고 있다.

고단한 삶에 식수마저 귀하게 되면 인심마저 흉흉해지는 법인데 이런 깊은 시골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

 

 

  마을은 군데군데 나타났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아주 인상적인 풍경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으나 사진기를 들이대면 지나가버렸다. 한 곳에 가니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폐교가 보인다.

정말 초라한 건물이었는데 폐교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나 보다.

떨어진 문짝, 붉게 녹슨 철문들이 어수선한 몰골로 쇠락의 명운을 맞고 있다.

운동장에는 풀이 수북하다.

후진국의 경우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 농촌은 위기가 온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어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농촌이 그렇게 피폐해 있지 않다고 한다.

한국의 농촌도 머지않아 다시 건설되어야 한다.

농촌의 발전을  무시하는 경제정책은 반드시 식량문제로 화근을 부른다.

지금 세계의 곡물값이 폭등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25%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 벌써 100억불의 곡물을 수입 하고 있다. 전답이 황폐해져서 황무지가 되는 경제정책은 정말 문제가 있다.

더욱이 중국은 인구가 13억이다.

 

   

   시골길을 지나는 여행은 나에게 언제나 친근감을 준다. 

가난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추하고 어지럽게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가장 자연과 가까우므로 친근하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데는 그런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동네를 지날 때면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활짝 열어놓은 문안으로 집안의 모습이 그대로 다 들여다보이기도 한다. 

작은 가게도 보이고 

 

 

 

 

 

 길가 마을에는 작은 우체국도 보인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우체통이 보인다.

이 궁벽한 시골과 대처를 이어주는 저 우체통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가끔씩 가다가 또 집을 짓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이때쯤이면 농촌은 농한기다.

이럴 때 사람들은 길을 고치고 집을 짓는다.

동네 사람들 몇이 모여서 집 한 채를 너끈하게 지을 수 있는. 서로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면서 짓던 그 옛날 집짓기를 나는 이 여행길에서 보았다.

노인들은 담뱃대를 물고 서서 이것저것 참견하고 참을 내오면 이웃이 우 모여서 한잔씩 나누면서 담소를 하는…….

아, 아 참으로 오랜 만에 보는 정겨운 모습이다.

 

 

    가끔가다가 구불구불한 논두렁길이 보이는가 하면 어떤 곳에는 자두가 익어가는 풀밭에 검은 염소들이 풀을 뜯고 닭들이 모여서 모이를 쪼고 있다.

그리고 한곳을 지나가다가 나는 보았다. 그것은 짚가리였다.

벼를 추수하고 난 뒤 남은 짚을 나무를 의지하고 착착 쌓아놓던 짚가리. 우리 어릴 적 술래잡기놀이를 할 때 숨기 좋은 장소였던 곳, 겨울이면 따스한 바람막이가 되었던 개구쟁이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었던가?

오랜 동안 망각 속에 있던 뇌수 속의 정보가 한순간 그 기능을 발휘해서 인식의 차원으로 재생되는 것이었다.

 

 

                                                  (3)


  이제 차는 산길을 간다.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대체로 산은 자연림이다.

그런데 혹 어떤 곳에는 낙엽송들이 조림사업으로 조성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도 아주 오래 전에 정부에서 낙엽송을 권장하여 지금은 거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당시 우리가 알기로는 낙엽송은 높은 건물을 지을 때 벽면에 얼기설기 엮어 인부들이 벽면을 바를 때 의지하도록 하는데 쓰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펼프로 많이 쓰이는 것인가?  어떤 밭에는 낙엽송 육묘장이

 

 

 더러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우리 눈에도 익숙한 아카시아 참나무 칡 옷나무 싸리나무 밤나무 등이었다.

그리고 산이 깊은 곳에는 도라지밭인지 인삼밭인지 검고 푸른 차광막을 친 밭들이 보이기도 했다. 

산 아래는 포장도로였는데 높은 곳에는 포장이 안 된 곳도 있고 절개지에 흙이 흘러내린 곳도 있다.

이런 모습들은 그 옛날 우리들이 살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여기가 경상도나 강원도의 어느 깊은 산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근감이 간다.

 

 

 산은 언제나 강을 데리고 다닌다.

한 곳을 지나다니 냇물이 길을 따라 펼쳐지고 있었다.

냇물을 따라 방죽이 잇닿고 그 너머에 처마가 낮은 집들이 수줍은 듯 숨어 있다.

강마을이다.

그 강을 따라 우리는 한참을 갔다.

여름 강물이란 언제나 우리에게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모래벌이 물을 따라 땡볕을 받고 길게 누워있다. 그 강물이 점점 폭을 넓히고 있다. 시원한 강물 위로 하얀 물길을 일으키면서 배가 떠간다.

고기잡이인지 건너다니는 배인지 모르겠다.

물가에 노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강둑을 따라 미루나무인 듯 나무들이 줄을 이어 섰고 그 너머 산들은 또 강을 사이에 두고 한가로운 듯 점잖게 졸고 있다. 

 

 

  배만 떠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저만큼 푸른 물결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다.

중국의 하천에는 오리들이 많이 보인다.

거의 어디에든 물이 있는 곳에는 오리들이 보였다.

 

   

                                       (4)


  우리가 탄 차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닿았다.

집안을 떠난 지가 족히 두어 시간이 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길가 마을에서 잠시 쉬어간다.

길 양쪽으로 집들이 있는 우리로 말하면 면소재지보다 좀 작은 마을이었을까?

버스는 엔진부분의 문을 열어젖혔다.

엔진이 과열된 것이 걱정되었나 보다.

 

 

  

 길가로는 가게 간판들이 있다.

잡화점이나 이발관 식당들의 간판이 붙어있다.

사람들이 물건 꾸러미를 들고 더러 오간다.

오토바이도 있고 트럭도 한 대 보인다.

 

 

  길 가 집들 앞에는 화단을 만들었는데 붉은 봉숭아꽃도 보이고 긴 꽃대 끝에 납작한 얼굴을 한 백일홍과 닭의 벼슬 모양의 맨드라미꽃도 보인다.

정원수는 잘 보이지 않고 일년생 꽃이다.

비록 초라한 정원이지만 오히려 정성을 들인 품이 대저택의 화려한 정원보다 알뜰하고 그래서 더 정겨워 보인다.

부유함 속에서 흘러넘치는 풍요로움보다는 가난함 속에서 피어난 조촐한 모습이 더 기품이 있게 보인다.


일행들이 모여 쉬는 곳에서 벗어나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한 곳을 가니 아주머니 하나가 짐을 싸고 있다.

싸구려 옷들이 보인다. 아마도 거기에 시장이 섰던 모양이다.

주위에는 종이와 쓰레기들이 흩어져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여러 사람이 머문 자취가 역력하다.

길가에 나오니 찹화점이 있어 들어갔다. 없는 것이 거의 없는 가게였다.

이런 촌에서는 그저 여러 가지 물건을 함께 파는 가게가 꼭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침 거기서 안내원인 김 선방씨와 중국인 버스기사가 수박을 갈라 먹고 가게 주인과 담소하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거기 다른 손님들을 청해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철물전도 들어가 보고 나오다가 길가에 초라한 간판을 단 이발소가 보였다.

 

 

  

  말도 모르는 이국의 나그네인 주제에 체면 없이 들어가 손짓 몸짓말로 사진 한 장을 청하니 젊은 이발사 주인 내외는 반기면서 기꺼이 허락한다.

이발 가게는 그야말로 구식인 기구들로 어지러웠고 불결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만 된다면 저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이 이국의 이발사한테 한 번 머리를 깎고 싶어지기도 하였다.

말은 비록 통하지 않지만  따스한 사람의 인정이 훈훈하다.


 

 

  그리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다가 두 집들 사이로 들여다보니 집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광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 많이 모여 있었다.

길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은 곳이었다. 아하 거기가 바로 진짜 시장터였다.

아마도 이곳에 한국의 5일 장 같은 것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노천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도 보이고 식탁에서 마작을  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곧잘 고스톱을 하자던 내 친구처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심성이란 어찌 그렇게  똑 같을까?


  이것저것 혼자 기다리다가 버스께로 왔다.

일행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느릿느릿 걸어오니까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내가 제일 늦었다.

버스 엔진 쪽 뒷문을 열어놓아서 버스가 출발하지 않은 줄로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안내원한테 버스뒷문 이야기를 하니까 기사는 관계없다고 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여 다리 하나를 건너기 전에 강마을 하나가 보였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마을이다.

집 모양을 보니 조선족은 한 사람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중국인 마을이다.

요녕성은 정말 중국이다.

그렇게 맑지 않은 강물에 산그림자가 우련하게 물결에 흔들린다.

아 이 마을에 저녁노을이라도 지는 날이거나 안개가 자욱이 내리는 밤은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강마을의 동양화가 펼쳐지리라.


  우리는 물길을 내려다보면서 또 한참을 간다.

우리를 따르던 그 강물은 벌써 언제부턴가 폭이 넓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댐으로 향하는 큰 물줄기였던 것이다.

우리 버스는 이번에는 아주 높은 산을 넘는다.

아마도 이 산을 넘으면 환인이리라.

 

 

높은 산을 몇 굽이를 돌고돌아 내리받이 길에 이르렀을 때 저 멀리 아래쪽으로 도시의 외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면 그렇지 저기가 환인이란다.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지만 매우 들이 넓게 보였다.

 

 

우리는 벌써 환인에 들어섰다.

그리고 외곽의 한 높은 언덕에 자리한 고려성이란 간판을 한 곳으로 올라갔다.

 

  

 점심을 먹으로 간 것이다.

왜 고구려성이 아니고 고려성일까?

 

* 환인이라는 곳

자동차 번호판의 첫 글자가 대부분 ‘吉’자가 아니고 ‘遼’자다. 여기는 길림성이 아니고 요령성인 것이다. 작고 귀엽게 생긴 삼륜차 택시가 유난히 많아 인상적이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고, 지금은 만족 자치현으로 한족 다음으로 만족이 다수이고 우월한 대우를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환인 지구는 고구려, 발해가 망한 이후 줄곧 여진의 활동구역으로 되었기 때문에 만족은 토박이 민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족은 조선족과는 다르게 글과 말을 거의 잃어버리고 대부분 한족에 동화되어 있다. 환인현 인구 31만명 중 조선족은 약 2만 8천 명 정도이다. 시내 중심 거리의 왼쪽은 만족, 오른쪽은 한족이 살고 있는 ‘만한거리’라는 곳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