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및 시관계

김지섭 1시집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마을

저 언덕 넘어 2023. 6. 17. 18:23

<시집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

약력 1948년 예천에서 났고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글밭 동인. 민족문학작가회원

주소 0737kim@hanmail.net

010-4502-0737

 

첫째 마당

 

삼월에는

밤바람 속에서

그 겨울의 끝

관계

바람

歲月馬

이 봄날을 위하여

꽃에게

자동 보일러

소식

장미에게

시간 속에서

이름나무

창을 열면

평촌 어른

귀뚜리 소리 들린다

 

둘째 마당

 

그때

숙명론

나무뻐꾸기 이야기

꽃은 피고 지고

마지막

우리들의 겨울

동요를 들으며

변방에서

마지막 날

산다는 것은

내 노래

충주호에서

사랑은 어둠처럼 내린다.

눈물

출신

 

셋째 마당

 

보도다

황혼

달밭골에서

산과 물

눈 내린 날은

화진포 기행

소식

개나리꽃 보며

눈 온 날

동백

우포늪에서

그리움

사루비아

겨울산을 오르며

숲마을 정경

수수밭의 봄

백로 무렵

저물녘 설경

 

 

넷째 마당

 

나무를 생각함

풀베기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

우리도 그만 떠날까

무엇으로 남아

꽃샘추위

아내

이수에서

아버지의 하늘

단풍나무 아래서

전우익 선생님께

기담이설

그 방문 앞길

귀천

친구에서

그의 나라

 

 

자서>

 

시를 만난 적은 너무 오래되어 이제 지병처럼 깊었다.

나는 그의 앞에서 늘 남루로 서있었고….

늙어서야 이제 첫 시집을 엮으면서 시 앞에 또 한 번 무릎 꿇는다.

해도 벌써 많이 기울어 수평선 높게 걸리었다.

아득 멀리서 손짓하는 저 푸른 시의 갈기를 향해 또 나는 가자.

내 마음길 오롯이 시에서 멀어지는 저 적멸의 날까지.

첫째 마당

 

삼월에는

 

좋아라

꽃은 자꾸만 피려 피려하고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지

바람은 멱살 잡고

한사코 길목을 막아서는

 

삼월에는 좋아라

젊은 봉오리들 발돋움 서성이며

첫나들이 가다리는

 

삼월에는 좋아라

낡은 수레 한 채

세월의 신작로 한가운데 서서

구를 듯 말 듯

찌그덕 찌그덕 소리 듣는

늙은 소도 좋아라.

 

밤바람 속에서

 

만상萬象이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오직 홀로 잠 설치는 바람이어

걸린 빗장을 흔들고

내 귓전을 수런거리는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가 주절거리는 모호한 말씀

오, 분명하게 말하게나

그대가 버리고 떠나온 고향과

눈물로 그대를 떠나보낸

그대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누구인가를

그리고 하필 지금 여기

내게로 달려오는 밤바람이 되었는가를

 

등불이 흔들린다 밤바람이어

그대에게 흔들리는 저 등불이

그 흔들리는 이유를 모르듯

지금 그대와 만나 흔들리는

우리들 생애의 불빛.

 

한 마디 말도 없이

벌써 떠나려느냐

손 흔들며

먼눈바라기하고 선 나를 떠나

떠나가 닿는 그 먼 나라의 어느 녘에서

그대는 또 무엇이 되어 일렁이려느냐

 

 

그 겨울의 끝

 

동백꽃이 지고 있었어

그 해의 마지막 꽃잎이

 

그 겨울

오랫동안 집 나가

생사조차 모르고 떠돌던 추위의 아들이

느닷없이 사나운 몰골로 찾아들고

 

겹겹 구름 낮게 드리운

그의 하늘에는

희디흰 회한의 눈보라가

지겹게 지겹게도 내리쳤어

 

그리고

끝내 눈을 뜨지 못한 그의

마지막 각혈처럼

 

동백꽃은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

그 해의 마지막 꽃잎으로

 

 

관 계

 

해는 제 스스로 빛나지만

저 혼자 살지는 않는다.

바람이 저 갈 길을

제 팔만 흔들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떨기 새의 울음소리에도

한 점 빛과 한 자락 바람이

묻어 있느니.

그 모든 것을 보고 섰는

저 키 큰 오리나무와

그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엉겅퀴

엉겅퀴의 기침 소리에 놀란

조 귀뚜리의

도근거리는 가슴.

 

 

바람

 

사흘 밤 사흘 낮을 바람이 울었다

 

섣달도 그믐께

칼끝 시려 제 가슴 쥐어뜯는

저 바람 소리는

잠 못 들고 펄럭이는

뭇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이나니

 

이 세상 어디에나 따라다니기도 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도 불어가고

저승에서 이승으로도 불어오는

 

세월마 歲月馬

 

안 먹고 안 자고 밤낮으로 달리는 말

앞으로 줄곧 앞으로만 내닫는 말

채찍 휘두를수록 더디 가는 말

화가 나서 달아나다가

곧 피식 웃으며 겸연쩍어 하는 말

아픈 상처로 절룩거리다가도

나중엔 씻은 듯이 오히려 추억에 잠기는 말

어떤 때는 제가 고삐를 잡고

도리어 사람을 질질 끌고 가는 말

이 세상 그 어떤 제왕의 말도 절대로 듣지 않는 말

가다가 지쳐 한 번 무릎 꿇는 날에는

다시는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말.

 

이 봄날을 위하여

 

백목련 한 그루 뒤로 세워두고

사진 한 판 찍는다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이 봄날을 위하여.

사진 찍고 돌아설 때

목련 그는 우리들 뒤에 서서

사진 찍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 해 가장 화려한 옷을 걸치고도

사진 한 장 안 찍는 그가 너무나 대견해 보였다.

이제 사흘도 안 되어 봄비는 내릴 거고

그 비에 희디흰 저 옷은 더러워지고

또다시 바람은 불어

저 화사한 꽃송이는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는 사진 한 장 남길 생각을

도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진 찍지 않아도 봄은 다시 오고

꽃은 또다시 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면 우리도 그럴 테지

우리들에게도 봄은 정녕 다시 열려오고

목련꽃 같은 젊은 꽃송이들은 무수히 또 피어나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목련처럼 가만있질 못하고

사진 한 장 찍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가

두 번 다시 못 올 이 봄날을 위하여

라고 말하면서.

 

꽃에게

 

세상의 들녘에

제 혼자만의 생각으로 피어 있는 꽃이여

 

그대는 때로

홀로 밤을 하얗게 밝힌다지만

 

위으로는 먼데 별하늘을 이고

이따끔씩 네 곁을 칭얼대는 바람

 

오늘은 네 생각의 잎사귀 위로 후득이는

빗방울 소리를 따라

 

풀벌레들은 저렇듯

네 마음의 현을 켜고 있나니

 

 

자동 보일러

 

보일러는 밤새 불침번을 서고 있다.

이 겨울 한데서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방안에 겨우 들여놓은 손끝이 온기를 잃으면

그는 부리나케 제 몸에 불을 켜대는 것이었다.

열에 들떠 잠 못 드는 새끼를 안고

졸면서 들여다보는 어미처럼,

지상의 잠 못 드는 것들을 지켜보는

천상의 별들처럼,

 

밤새 아무 지나가는 이 없어도

외진 곳을 지키는 이정표 하나도 잠들지 못하는 밤

극악무도한 죄를 범하고도

참회할 줄 모르는 죄수 곁에서

언젠가 펼쳐 보일 날을 기다리는 경전 속의 글귀들처럼,

내 따스한 잠자리를 위해

곁에서 사뭇 나의 잠을 지키는

 

소식

 

새잎 나고

비는 내려

꽃은 또 피고 지고

지는 해 뜨는 달

바람은 다시 불어

만산 낙엽 다 쓸어가더니

오늘은 가뭇한 하늘에서

눈송이 나부끼며 내려와

전에 앉던 가지 위에

다시 앉아 보는가.

끊임없이 전해주는

저리도 간절한 소식

여태 알아듣지 못하고

우두커니 나는 여기

바라고만 섰나니.

 

 

 

 

장미에게

 

장미여 하고

내가 널 부르는 순간

 

면사포를 쓴 나의 신부와도 같이

너는 너로부터

나는 나에게서

아득히 멀어져 간다.

 

모양도 빛깔도 다른

세상의 모든 꽃들은

실은 제마다 모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알 수 없는 마술사의 잠에 취하여

그녀와 내가 하룻밤을 보냈을 때

세상이 모두 우리를 멀리 하듯

 

장미여 하고

다시 널 간절히 부르면

너는

너만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로

세상의 다른 꽃들과 작별하고

 

나는 나로부터

너는 너에게서

다시 아득히 멀어져 간다.

 

시간 속에서

 

지난날은 흘러

저 가을나무의 낙엽처럼

다시 봄풀로 파릇파릇 돋아오는가

 

지금 눈앞에 흘러오는 강물 들여다보면

그날 흘러가던 그 강물 보이고

지금 저기 피어나는 꽃들 속에서

그 어느 간날의 자지러지던 꽃웃음소리 들리지 않는가

 

오늘 내 환한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면

그것은 다시 어느 캄캄한 밤을 밝히는 등불 되기도 할 게고

지금 내 앞을 가로막는 가시덤불은

그 어느 날 내 잘못 뿌린 씨앗 때문일지언정

 

지금 여기 바람 속에 서면

그 바람 다녀온 어제 그 길도 보이고

내일 불어갈 저 바람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이름 나무

 

비 한 방울 안 와도 잘 자라는 나무,

죽은 듯 말없이 있다가도

부르면 놀란 듯 눈을 두리번거리는 나무,

다른 어떤 것보다

제 홀로 우뚝 높고 싶은 나무,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고개 조아리기를 기다리는 나무,

깊은 숲속에서 홀로 있지 못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까지 나와 있는 나무,

죽어서도 잊히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나무,

종교처럼 거룩하고 전설처럼 남고 싶은 나무.

 

창을 열면

 

창을 열면 저 멀리

가등 하나 빛나고 있다.

 

어스름이 거미처럼 내릴 무렵

그의 눈망울은 티 없이 맑았고

 

밤 깊을수록 짙은 어둠에 휩싸여

병든 짐승처럼 신음하다가도

 

이 세상 모두 지쳐 잠든 새벽엔

그도 끝없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늘 한자리였다.

머나먼 일상의 골목을 떠돌다가

문득 창을 열면

그는 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아득한 공간을

늘 바람은 西으로 불고

가끔씩 눈비도 내려

꽃은 지고 또 피고 져도

 

그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서

쉴새 없이 몰려오는 어둠을

쫓고 있었다.

 

 

평촌平村 어른

 

그 해에도

산목련 벙글더니

꽃 피기도 전에 어머님 여의고

 

그 해에도

찔레꽃 피더니

그 꽃 지기도 전에 누이를 묻고

 

그 해에도

밤송이 탐스러워 가더니

아람 벌기도 전에 맏이 놈 산으로 가고

 

그 해에는

까치밥 하나 남은 감에 높새 울더니

마누라마저 저 혼잣길 떠나버리고.

 

 

 

귀뚜리 소리 들린다

 

밤 깊어도 끊이지 않는 저 소리

잠 이룰 수 없구나

푸른 유리알 구르는 저 소곤거림이

밤 지새며 우리들 머리 위에서

무슨 계시처럼 빛나는

별들의 반짝거림 같은 것일 때

또는

우리들 이승의 끝을 흐르는 강

그 강의 저 편 언덕에서

이곳으로 보내오는

해득할 수 없는 신호음 같은 것으로 들릴 때

 

 

 

둘째 마당

 

 

 

그 때

 

그 누가 나를 불러

이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할 때,

그 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날 따라 나서지 못하고

나 또한 같이 가잔 말 못하고

오직 혼자 그리로 불려 나가야 할 때,

그리고 또

그가 누구인지 나는 정녕 알 수도 없고

홀로 가는 그 길이

세상 밖 그 어디인지 알 수도 없을 때,

 

 

숙명론

 

매서운 바람의 채찍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리도 신음하다가

 

이제는

흔들릴 대로 흔들리는

체념의 긴 가지 끝

 

거기 피어 오른

한 떨기 꽃

희디흰 눈물의 꽃이여

 

 

 

나무뻐꾸기 이야기

 

우리집 대청마루 벽에는 뻐꾹시계 하나 걸려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나무로 만든 뻐꾸기 한 마리 살고 있어요. 그 뻐꾸기는 숨도 쉬지 않고 날 줄도 모르고 죽은 듯 잠들고 있던 둥지를 나와 정한 시각만 되면 뻐꾹뻐꾹 소리 내어 울었어요. 그 소리는 산뻐꾸기 소리를 꼭 빼닮았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곧 그 가짜 소리가 싫어져서 듣는 둥 마는 둥 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많은 날들을 그 뻐꾸기는 사뭇 울어대었고 우리집 앞강물도 자꾸 흘러만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나무뻐꾸기 소리는 정말 살아 있는 산뻐꾸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그 소리가 때를 따라 달리 들리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맑은 하늘을 우러를 때는 한없이 즐겁게 들렸고, 내려다 뵈는 아랫마을의 집들이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을 때는 울먹울먹 잦아지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녁노을이 핏빛으로 물들이는 황혼이면 그 소리는 뚝뚝 떨어지는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고, 혼자서 집을 보는 날은 그 소리는 대청을 구성지게 울려 내가 마치 깊은 산사에라도 온 듯 적막감이 온 집안을 휩싸고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언제부터였는지 그 뻐꾸기 소리는 나에게 좋은 동무가 되어버렸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마저 나를 슬프게 하여 온 세상이 쓸쓸한 바람소리로 가득할 때도 그 뻐꾸기는 나를 위로하듯 울먹여 주었지요. 그 뒤 나는 꿈속에서도 그 뻐꾸기소리를 듣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봄날, 우리집 뒷산에 정말 산뻐꾸기 한 마리 날아와 뻐꾹뻐꾹 울어대었습니다. 그 순간 이제까지 내가 듣던 우리집 뻐꾸기 소리가 얼마나 산뻐꾸기 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우리집 뻐꾸기가 싫어졌습니다. 내가 속아도 너무 속았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야 바로 하지만, 그 나무 뻐꾸기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것보다 어리석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습니다. 그 가짜 소리에 속아 이제까지 그를 믿고 나를 맡긴 수많은 날들의 추억이 눈송이처럼 온 하늘을 흩어져 내렸습니다.

 

, 참으로 나는 아득해졌습니다. 그때부터 두 마리의 뻐꾸기 소리가 번갈아 들려오며 내 깊은 잠을 깨웠습니다. 나는 참으로 많은 밤을 지새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 깊은 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선뜻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창을 흔들며 내 잠을 깨웠습니다. 그때사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듣던 나무뻐꾸기 소리도 우리집 뒷산에 날아와 울던 산뻐꾸기 소리도 모두 그 바람 소리와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알지 못하는 곳에선가에서 불어와 여기 내 방의 창문을 두드리다가는 또 어느 곳으론가로 떠나버리는 그 바람 소리 말입니다.

 

 

꽃은 피고 지고

 

 

슬픈 날도

꽃은 피어나고

 

기쁜 날도

꽃은 떨어지고

 

피고 지는 것들

우리 마음 모르듯

 

슬퍼하며 기뻐하며

우리도

 

꽃잎 따라 하냥

피고지지 말아라

 

마지막

 

한 장뿐인 달력을 보며

문득 마지막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마지막 시를 쓸 날은 언제인가

그리고 그 마지막 시의 맨 마지막에

쓰는 낱말은 또 무엇일까

그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반생을 옆에서 잠든 아내와 내가

마지막 나누는 말은 무엇일까

또 그네가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눈빛은

어떤 것일까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명知命을 바로 눈앞에 둔 오늘

마지막이란 시를 왜 이제야 써야 하는가를

후회했다.

마지막

지금부터는 문득문득

그 마지막을 떠올려야겠다.

 

우리들의 겨울

 

이제야 알겠다

서릿바람 불어내리면

왜 나무들은 제 소중한 생각의 잎들을

죄다 떨어뜨리고 마는가를

그리고 또

산은 긴 겨울을 맞기 위해서

이제껏 머금고 있던 물기를

모두 제 몸 밖으로 내보내 버리는가를

 

그것은 마치

한 오리의 생각도 없이

머릿속을 다 비워 내고서야

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고

늙어 갈수록 사람의 몸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벼워지는 이유 같은 것

 

생각의 잎들 다 떨구고 선

저 무심한 나무들처럼

물기란 하나도 없이 조금씩 사위어 가는

그 겨울산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들의 마지막 겨울을

맞을 일이다

 

동요를 들으며

 

아이들 해맑은 노랫소리 따라

아슴아슴 먼 옛날 거슬러 오르면

 

산 넘고 물 건너

굽이길 돌아 돌아

서릿발 서걱이는 신새벽 장길

더운 한낮 조을며 조을며 비척이는 걸음

내리치는 채찍에 갈기 세우며,

자갈밭 모랫벌 겨운 구렁길

얼마나 오랜 세월

걸어 왔을까

이제는

늙디 늙은 나귀 한 마리

 

쭈삣쭈빗 성긴 털

절름거리는 무릎

눈곱 말라 게슴츠레한 눈망울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에

쇳소리로 깨어지는

외마디 울음소리의

 

 

변방에서

 

수레의 흙먼지 날리지 않는

몹시도 궁벽한 땅

나무들은 제 눈빛 제 얼굴이다.

 

위리안치의 유배지 같은

한적한 변방의 밤

 

조으는 등불 아래 눈감으면

비로소 제 갈 길 오롯이 밝아 옴이여.

 

마지막 날

 

내 살다가 마지막 날

활활 저 불길로 타올라

온전히 잊힐 일이다

세월 흘러도 묻히지 않고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더러운 이름은커녕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

알 수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상형문자의

비명으로 남거나

더더욱

밤에도 눈감지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입상으로 서서 전설처럼 남지도 말고

 

그리하여 또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구천을 지향 없이 떠돌거나

다시는 열리지 않는 굳센 빗장이 가로지른

캄캄한 어둠의 나라에는 물론

어느 귀한 집안의

귀여운 아기울음 소리로도 또 태어나지 말고

지극한 즐거움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

황금의 땅에도 결코 머물지 말고

 

산다는 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어디 있으랴

 

꽃들은 흔들리며

피어 있나니

 

바람에 꽃잎이 나부끼지만

어쩌면 바람이 꽃잎 쫓아왔는지 몰라

 

흔들려서 괴롭지도

괴로워서 또 흔들리지 않거니

 

산다는 건 마침내

흔들림에 무심해지는 일.

 

 

내 노래

 

무명의 안개 자욱한

길에서 길로

또 이어지는 그 어디쯤

나는 지금 가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데서 흘러와

끝 가는 데를 모르는

저 강물의 흐름 위에

나의 길은 거기에도 있네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 지

전설만

으스름달밤처럼 푸르고

 

이제 나는 그만 쉬고저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 아니라

흐름 따라 떠도는 강물 아니라

정녕 그만 모두 잊고저

 

 

 

충주호에서

 

 

살다 보면 이렇게

수월한 길도 만나는가

구슬 죽순처럼

아름다이 솟은 옥순봉을 지나며

미끄러지듯 바람에 실려 가듯

배는 시원시원 물결을 가르고

청풍을 지나니

저 멀리 월악은

이른 저녁달처럼 언뜻 걸리었다가

뭍 봉우리들 너머로 고대 사라지누나

가파른 내 생애의 벼랑길 한녘

흰 머리칼 흩날리며 기대서면

꿈결인 듯 스쳐 지나가는

이승의 가장 부드러운 한 때여.

 

* 옥순봉 청풍 월악은 충주호에 있는

봉우리와 지명과 산의 이름임

 

 

 

사랑은 어둠처럼 내린다.

 

세상의 한 녘

어느 먼 곳에서일까

한 점 바람으로부터

사랑은 온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바람이

우리 가까이 다가올 때는

슬슬 땅거미로 기어와

먼 풍경을 지우고

이윽고 가까운 사물들의 모습마저 넘어뜨리고

드디어 눈 속까지 스며드는 어둠.

제 얼굴마저 보지 못하는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들 사랑도 깊어간다

 

 

눈물

 

우리들 맑은 눈 속 그 어디에

눈물의 꽃들은 많이도 피었다가

 

한 점 햇살 닿으면 부서져 내리는

겨울나무 그 흰 눈꽃들처럼

 

시린 바람 한 자락 가슴을 에면

기다린 듯 송이송이 떨어져 내리노

 

 

출신

 

서얼이라고

눈 흘기지 말라

식어가는 방구들에

군불 지펴가며

타오르는 가슴으로 달인

차 한 잔 식혀 가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첩실의 겨울밤은

너무 시리고 길었나니

 

 

셋째 마당

 

 

보도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이

찬 서리로 내려앉은 아침

옹기종기 봉오리 맺힌

자잘한 국화 송이들 보도다.

 

갖은 계절의 역정 속

다스운 빛 애써 등지고

외롭고 저린 좌선으로 일생을 살은

어느 수도승이 남기고 간

그 눈부신 사리들의 모습 보도다.

 

 

황 혼

 

 

돌아가야 하느니

 

끝없이 떠다니는 바람의 혼백마저

잠시 풀잎 위에 눕는

황혼은

오랜 세월 떠돌던 사람들

기나긴 유랑을 끝내는 시각

 

떠나온 것들 모두 돌아가는

이런 황혼에는

생각에 잠긴 사물들

조용히 두 손 모으고,

노을이라도 신들의 그림처럼 피어오르면

사람들의 눈빛은

한결 성스러워진다.

 

그 때 어둠은 저만큼

엄숙한 판관처럼 검은 제복을 걸치고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이윽고 거대한 어둠의 나라의 사자가

침묵의 시종들을 거느리고 와

온갖 물상들의 머리에

따스한 손을 얹는다.

 

 

달밭골에서

 

백로 무렵 소백

비로사 저녁 예불소리 울리는

달밭골께를 내려가 보라

천궁 내음 당귀 내음

푸른 이내로 걸리는 등성이엔

벌써 눈웃음 짓는 초승달이 걸리고

아직도 낯선 사람을 이슬빛 얼굴로 반기는

달밭골 사람들은

이 세상 맨 끝에 살고

저 하늘 가장 가까이 산다.

 

산과 물

 

어느 날 문득 보리라

강이나 냇가 호숫가에서

산이 물 속에 누워 생각에 잠기고

물이 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거기서 우리들 사랑을 만나리라

물결이 일면 산이 일렁이고

산이 붉게 타면 물도 붉어지던 것을

 

 

눈 내리는 날은

 

눈 내리는 날은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눈송이들은 허공에서 춤을 추다가

바닷물에 닿자마자 사라진다

내리는 눈발을 따라

하늘 가득 몰려오는

이름 모를 생각들을 잡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쓴다.

초라한 그물로

저 너른 바다의 고기를 다 잡으려는

망령 든 어부처럼.

 

 

화진포 기행

 

낯선 땅

저무는 포구에 나가

처음으로 보았다.

 

누가 하늘과 바다를

수평선이 가른다고 했는가

하늘을 머금은 듯

바다를 머금은 듯

수평선은 휘어진 등을 하고

저렇게 편안히 누웠는데

 

노을의 취기가 하늘을 퍼져 가면

바다도 눈시울부터 점점 붉어져

드디어 천지는 온통 노을로 가득 타들다가

이윽고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이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드는 바닷물을

생각에 겨운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마음 따라

끊임없이 표정을 바꾸는

바다는

신령스런 한 마리 거대한 포유동물.

 

점점 어둠으로 차오르는

화진포 바닷가

쉴새없이 불어 가는 슬픈 바람소리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파도의 눈물도 보였.

 

소식

 

입동의 바람에

풀들이 거칠게 휩쓸린다

 

늙은 억새풀 위에

철 지난 잠자리 한 마리

미동도 않고 날아갈 줄 모른다.

 

손을 대어 보니

대궁을 꼭 그러쥐고 말라 있다

 

엊그제 산중에서 들려온

한 스님의 좌탈입망 소식

 

개나리꽃 보며

 

봄날 한 때

만발한 개나리꽃 앞에서

말을 잃노니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머문 듯한 노란 꽃잎

그 부신 빛깔은 바라기에 눈이 시리고

이 느꺼움

우리들 작은 가슴으로는 너무 겨워

망연히 바라볼 뿐 말을 잃노니

늘 지나는 길섶 이 꽃들

비로소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감히 넘어다볼 수 없는

우리들 저편의 세계에서 와

그냥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가

스러져 갈 뿐인 것을.

 

 

눈 온 날

 

새하얀 눈밭에

새들의 발자국 몇 낱이 시리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가끔씩 땅위에 자취를 남기는데

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

나는 이 세상길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남겨 왔을까

한 점 모이를 위해 새들은

가끔씩 땅위에 내려왔지만

나는 이제껏 무엇을 바라

어느 길로 어떻게 걸어 왔던가

문득 그 먼 길 돌아다보면

아직도 녹지 않은 기억의 골짜기 잔설 위로

푸르고 시린 숱한 발자취

어지러이 흩어져 있음을 본다.

 

동백

 

칼바람의 눈초리 너무 매서워

두려운 듯 꽁꽁 얼어붙은 날

세상의 나무들이란 나무들

잎새 하나 없이 숨죽여 떠는데

어쩌자고 저 동백 혼자서

붉은 꽃 저리 피워 놓았나

삼엄한 경계령 내려

개미 한 마리도 얼씬 않는 거리에

숨을 꽃 찾아 기웃거리는

붉은 깃발 든 반란군처럼

 

 

 

우포늪에서

 

(1)

 

물이 저렇게 편안한 것은

긴 긴 나그네길 다 끝내고

가장 낮은 곳에 닿은

그 위대함 때문이다.

 

물이 저렇게 고요한 것은

그의 안에 뭇 생명들을 품고 보듬는

어머니의 숨결이 필요한 까닭이다.

 

물이 오래 고여서도 썩지 않는 것은

먼 산기슭 어린 샘에서 와

넘치면 또 흘러갈 소금 바다로 이어지는

그의 남은 여정 때문이다.

 

물이 고요로와도 쓸쓸하지 않은 것은

철 따라 나니는 새들을

반기고 떠나보내는 일 있어서다.

 

물이 때로 끝없이 생각에 잠기는 것은

밤마다 별빛이 내려 쌓여 소곤거리던

숱한 전설들이 그 속에 잠겨 있어서다.

 

(2)

 

바람결에 물결이 이는 것은

그에게도 알 수 없는 그리움은 고여 와

가끔씩 속으로 흐느끼는 일이다.

 

어느 추운 밤 물이 거울처럼 어는 것은

은밀한 말씀으로 내리시는

그 희디흰 하늘의 손님을

오래오래 섬기려는 마음에서다.

 

물이 햇살에 은빛으로 부서지는 것은

수천의 물비늘 번득여

언제든 하늘로 오르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 물이 그 가장자리에 갈대들을 세워

일제히 흰 깃을 나부끼는 것은

초병을 세워 사람을 반겨 맞는

그의 성대한 의식이다.

 

그리움

 

그것은

비어 있는 곳으로 부는

마른 바람이다.

그 바람과 만나 흔들리는

우리들 생애의 불빛이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서 가끔씩

안타까이 부서지며 반짝이는

외로운 제 영혼의

눈물이다.

 

 

 

 

 

 

사루비아

 

너의 앞에서

나의 굳은 맹세는

왜 이렇게 쉬 무너지느냐

 

늦여름의 마지막 따가운 햇볕 아래

사루비아 너만 보면

 

저 신라적 지귀志鬼처럼

왜 나는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것이냐.

 

 

겨울산을 오르며

 

매운바람 속

흩날리는 눈발 맞으며

산을 오른다.

깊어갈수록 산은 인적을 끊고

바람이 채찍을 휘둘러

견고한 암벽들마저 신음하는

겹겹의 봉우리들 너머 아득히 산정은

머리에 백발을 인 채

은자의 미소로 내려다보고

 

끊임없이 닥쳐오는 힘겨운 등정

푸른 칼바람 머리를 풀어

움직이는 것들 모두 절명한 겨울산

저기 홀로 우뚝 선 나무들

 

꽃도 열매도 다 보내고

마지막 잎새마저 훌훌이 떨어버린 채

땅속 깊이서 지열을 길어 올려

식어가는 피를 데우며

그들 내면에서 가물거리며 일고 있는

빨간 한 점 불빛만을 응시하고 있는가

 

겨울산을 오르며

그대 보리라.

겨울산은 거대한 사원

숲속 나무들은 수행승이 되어

동안거를 하고 있는 중임을

산은 거센 눈보라로

속인들의 출입을 막고

희디흰 눈송이들은 쌓여

그들의 도량을 한결 청결히 하고 있음을.

 

 

숲마을 정경

 

같은 씨족의 나무들이

또래를 이루어 사는 숲마을에 가보아라

일제히 약속한 듯

고만고만한 키로 그들은 정겹게 살고 있나니

변두리의 나무들은

바람에도 굳건한 문지기로 서고

여리고 약한 것들은

안으로 안으로 불러 모아

기력이 딸리면 부축하며 이끌어 올리고

바람과 햇볕을 고루 나누는 율법을 지키어

하늘의 다스림에 부끄럽지 않으니

서로가 서로를 치는 사람의 마을을 피해

그들은 이렇게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것이다.

 

 

수수밭의 봄

 

수수밭으로 달려온 가을의 전령

농부의 시퍼런 망나니 낫날에

목들이 댕강댕강 날아간 수숫대들

전신을 핏물로 뒤집어쓰다.

 

밤 되어 형장에 내리던 이슬들

날선 서릿발로 얼어붙고

속 시린 몇 날 몇 밤의 신음으로

상처를 아물리다가

 

겨울 들수록 전신에 박히는 얼음으로 혼절하고

드디어 마지막 거친 숨 들이키는

캄캄한 임종의 밤을

차디찬 하늘의 별들만 시린 눈으로 지켜보고

 

겨울 내내

난폭한 오랑캐 바람의 발굽 아래

꺾이고 꺾여서 끝내 무릎 꿇다가

 

어느 밤 버겁게 내려앉는

희디흰 하늘의 축복에 겨워

일제히 겸허하게 오체투지하는 수숫대들

 

그 위로

매운바람의 부리에도 힘이 풀리고

누더기 겨울해가 시름시름 앓는 날이 잦아지면

 

다시 어디선가

멧새 한 마리 날아 앉는 나뭇가지 끝

노란 부스럼 절로 헤어지듯

산수유 꽃망울 터져 나오는 소리.

 

 

백로 무렵

 

활짝 열어 놓은 문을

이제 조금씩 닫아야 할 때다.

여름내 부드럽던 바람의 손끝에도

야윈 손톱들은 자라나고

갑자기 엷어진 옷을 장 속에 개켜 넣으면

울타리 너머로 넌출지던 생각의 덩굴손을

이제 그만 거두어들일 때다.

눈을 반쯤은 감고

가장 낮은 소리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걸어온 길을 되짚는 시각

그 때 어느 외진 들녘 이름 없는 풀들의

작은 열매들은 마지막으로 익어가고

우리들 맑은 개울물 흐르는 가슴 속으로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 하나 떠오르리라.

 

저물녘 설경

 

눈구름 낮게 갈앉는

저물녘 어스름

무엇에 홀린 듯

바람 조용히 잠들고

저녁연기마저 두려운 듯 땅위를 기는

이 겨울 저녁 어스름

이렇게 지상의 모든 것들 일제히 숨죽일 때

저 하늘의 소리는

낮게 갈앉은 눈구름을 타고

희디흰 설편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그것은

이 세상 가장 은밀한 말씀으로

속삭여 속삭여 오는 것이다.

이때

땅위의 모든 것들은 가장 경건한 자세로

그 말씀을 그들 머리 위에 소중히 받들고

이윽고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온 세상은

희디흰 하늘의 소리로 뒤덮인다.

 

 

 

 

넷째 마당

 

 

나무를 생각함

 

어디

선뜻 스치는 바람에도

그 잎 흔들지 않는 나무 있으랴

 

잎새들은 오히려

가벼이 나부껴 즐겁고

그러는 바람에 정들어

드디어 흔들림에 무성해진다.

 

조금 더 바람이 거세지면

나무는 잔 가쟁이도 안쓰럽게 흔들지만

이내 바로 앉아

옷깃을 여민다.

 

때로 성난 바람에게는

큰 줄기가 휘어져 꺾기기도 하지만

 

더욱더 감당할 수 없는 아픈 바람이 불면

하늘 향해 켜켜로 자라난 단단한 목질부와

땅 속으로 스민 깊은 마음의 뿌리를 뽑아

나무는

마지막 흔들림에 항거하는 것이다.

 

 

풀베기

 

서너 시간 만에

그 많던 밭둑의 풀들이 전부 누웠다.

 

바람에 풀들이 누운 것이 아니라

내가 눕혔다 내가 아니라

세 치 여섯 치의 칼날이 눕혔다.

아니 칼날이 풀을 눕힌 것이 아니라

소리였다 초당 수십 번 고속으로 칼날이 돌아가는

예초기의 굉음에 풀들이 놀라 쓰러진

것이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이라크에서 부시가 눕힌 건 사람이고

내가 밭둑에서 눕힌 건 풀이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건

사람이나 풀이나 마찬가지

 

주파수가 맞지 않아선가

무수한 생령들의 비탄이 들리지 않는다.

이제 가을볕에 베어진 풀들은

조금씩 말라갈 것이다.

 

풀은 썩어도 악취는 나지 않는다며

이 밤 나는 악몽도 없이 잠들 수 있을까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

 

옛 로마의 나라 원형 극장이 있는 나라 아름다운 나폴리의 나라 가극의 나라 피사의 사탑이 있는 나라 요새 와서 축구가 유명한 나라 교황청이 있어 더욱 유명한 나라 지중해의 장화같이 생긴 나라 돈이 없어 한 번도 외국을 가보지 못한 내가 어쩌면 영원히 가보지 못하고 죽을 나라 뭐 그래도 원통할 거야 없는 나라 참으로 먼 먼 나라 그 나라의 어느 한 구석에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이 있다네.

 

사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가 그 곳까지 팔려간 한 조선인 노예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이태리 속의 작은 한국, 알비 마을이 있다네. 문득 거기 가보고 싶네 짚신 몇 켤레 삼아 어깨에 메고 걸어가고 싶네 바랑 속엔 잘 말린 대구포 하나 조선 대추 몇 낱 누룩 한 장 넣어 메고 떠나가겠네 몇 년이나 걸어야 할까 가다가 쓰러지면 길가에 누워 자고 밥은 못 얻어먹으면 나무 열매라도 따서 먹으며 걸어가겠네 가서 안토니오 코레아의 무덤 찾아 한 사흘쯤 엎드려 있다가 오고 싶네.

 

 

우리도 그만 떠날까

 

다들 떠나 빈집만 늘고

남은 건 동구 밖 정자나무와 늙은이들

이도저도 안 되어 주저앉은 젊은이 두엇

어린애들은 이제 구경하기 힘들고

 

내년에 정말 분교가 문을 닫으면

우리도 아주 대처로 떠날 거라며

떠들던 이웃들도 돌아간 마당

박꽃만 저 혼자 흐드러지게 웃고

 

어등골의 그믐밤은 깊어만 가는데

어차피 수입농산물로 무너질 앞날

몇 십 년 만의 가뭄으로

논바닥도 가슴이 갈라져 타는데

 

이적지 깊은 밤을 지켜주던

저 분교 운동장의 외등마저 꺼질 바에는

순이년 공부시키러 우리도 떠날까

화전 일구던 조상들 누운 선산은

명절에나 와 뵙고

 

 

무엇으로 남아

 

그 누구에겐가 우리는 무엇이 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벙그는 한 송이 꽃이

때로는 기쁨 되고 슬픔도 되듯

우리는 늘 무엇인가 되고 있다.

 

수많은 아이들과 만났다 헤어지며

그들 앞에 선생으로 살아온

지금 나는 그들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그래도 이 세상의 티끌 덜 묻은

얼굴 환한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악을 써 꾸짖고 성내면서

그들 한 마디에 열 마디하며

한생을 입으로 살아온

 

나의 말들은

그들 마음밭에 잎 피고 가지 뻗어

싱그러운 나무로 자라나고 있을까

아니면 무심히 지껄인 한 마디가

가시로 박혀

바람 불 때마다 가슴 허비지는 않는지

 

 

꽃샘추위

 

난동이라서 그런지 꽃샘추위도 없이 봄비는 내리고 목련이 벙글고 있어. 개나리꽃도 한껏 부풀어 오르고. 꽃샘바람 없이 피는 저 꽃이 무슨 향기가 있을까?

쌓인 눈이 겨우내 녹지 않고 앞강에 쩡쩡 얼음장 가르는 소리 들리던 밤을 지나면 자리끼 물사발이 시퍼렇게 얼어붙던 아침의, 그 혹독한 겨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어. 이맘때면 피려다가 만 꽃잎들이 목을 옴츠리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 때 아닌 첫더위에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입술이 파래진 철없는 아이들의 오그라진 고추처럼. 매서운 바람은 줄곧 내리쳤고 몇 번씩이나 주춤거리다가 봄은 겨우 올 수 있었어. 저항하는 겨울의 모습을 보고 싶어. 좀처럼 물러나지 않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겨울의 고집스런 얼굴을 보고 싶어.

망해가는 왕조의 신민들은 어찌해야 옳을까? 무력한 왕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가? 새로운 왕의 세력에 빌붙을 속셈이나 하며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할까? 왕이 항복했더라도 신하는 유민을 이끌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

꽃샘추위를 겪고 피어나는 봄을 보면 발해의 건국이 생각난다. 당나라에 대항한 대조영의 꼭 다문 입술과 분노로 치켜뜬 그의 눈썹이 보이는 듯 어려 온다. 드넓은 벌판을 말 달리며노도처럼 밀어가는 고구려 유민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적에게 무릎 꿇고 왕조를 바치는 무력한 왕은 싫어. 성을 부수고 들어오는 점령군을 맞으면 끝까지 싸워야 해. 그러다가 힘이 부치면 고토를 다시 찾아들 결의를 하늘에 맹세하고 변방으로 숨어드는 군사들의 번쩍이는 창검을 보고 싶어.

 

 

 

아내

 

더러워지면

씻어 주고

 

더러워지면

또 씻어 주는

 

갠지스 강물처럼

성스런 이여

 

 

 

 

二水에서

 

병실에 아내를 홀로 두고

돌아오는 길

차창으로 강물이

여릿여릿 부서지며 내린다.

노을이 타는 가을 저녁 어스름

먼 강물 두 줄기가 모여 이룬

팔당쯤에 이르면

이적지 우리 함께 머문 날은

저 두 줄기 강물처럼

소리도 빛깔도 너무 달라

너와 나는 가끔씩 나누이곤 했다.

저기 만나 속살거리는 저 강물들도

어느 날엔 또 흩어져 떠나야 하듯

언젠가는 우리들의 하늘에도

이 세상 가장 슬픈 노을 지는 날 있으리니

그 날

내 먼저 떠나야 떠나야하리 라며

오늘 여기 나는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하늘

 

팔십령 고갯마루에서

아버지는

산그늘 길게 저물어 가십니다.

 

어젯일을 까맣게 잊으시더니

금방 하신 일도 깜빡깜빡 잊으시는 어머니

 

이제 막 저녁 설거지를 마치시고

물 묻은 손으로 나오시는

어머니의 해는 더욱 기울었습니다.

 

굽은 허리를 펴고

우두커니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하늘에는

 

먼저 일락서산하여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검은 해 하나와

벌써 오래전부터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사뭇 지지도 않는 낮달 하나

 

멀거니 걸려 있습니다.

 

 

단풍나무 아래서

 

일찍 엄마를 여읜

어머니 당신의 어린 나무는

연붉은 이파리를 달았겠지요.

모든 나무들 푸른 잎 자랑스레 내어달 때

자꾸만 붉어가는 잎들로 당신은 마음 바장였습니다.

따스한 아랫목에 잠들지 못하고

돌아올 그 누군가를 늘 눈 시리도록 기다렸지요만

붉은 잎만 무성해가는 당신 생애의 하늘에는

이따금씩 푸른 해와 붉은 달이 뜨고 지고

그럴수록 잎들은 짙붉어만 갔습니다.

가을 서리 하얗게 내리던 날은

당신의 잎들은 핏빛으로 더욱 타들었어요.

소슬바람 끝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더니

이제 어머니 당신의 나뭇가지에선

그 붉디붉은 잎들 땅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어둑발 멀리 내리는 저녁답

뚝뚝 떨어지는 잎들 하나 둘 헤아립니다.

무릎 밑으로 하나 둘 쌓여가는 그것들

꽃잎처럼 낭자하게 땅을 붉게 덮어갔지요,

벌써 며칠째 저물어 밤 깊도록

뚝뚝 하나 둘 헤아립니다.

저 멀리서 어머니

당신의 겨울바람 불어오고 있어요.

 

 

전우익 선생님께

 

어스름녘 쏟아지던

눈발도 그치고

고개 고개 너머 너머

개 짖는 소리도

그만 잦아든 마을

달빛만 가득한데

 

세상의 잔을 다 비우고도

취한 기척 없이

먼 산을 동무하고 앉은

낙락장송 한 그루

머리에는 백설을 덮어쓰고

어깨엔 푸른 솔바람 소리

 

 

기담이설奇談異說

 

봉화 상운 구천리 한 마실, 봄이면 생강나무꽃도 반기는 고가 대문을 들어서면요 오만 잡동사니 풀들이 안마당에 가득한데 가만 보노라면 조선 천지에 깃들여 사는 장삼이사의 풀들 중에 바람타고 떠도는 기이한 소문 듣고 날아온 귀밝은 풀씨들이 터를 잡고 너무도 당당히 우렁우렁 살고 있데요. 예로부터 사람 사는 집에 잡풀 보이면 그 집 곧 망한다고 길러온 것이 화초라는 것인데 이 집 주인 늙은 영감님은 비질하다 죽은 귀신이라도 만나 혼비백산한 일 겪은 일이라도 있느냐며 욕도 나올 법한데 그게 그런 게 아니고 사람 사는 집에 찾아들어 사람 사랑 받고 사는 풀들은 이 조선 천지에, 아니 대명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말 조상 때부터 누누이 들어온 이 풀들은 이제 누대로 영화를 보존하며 살게 될 명당처 잡아 호강하며 살고 있노라며 저희들 끼리 히히하하거리는 웃음소릴 듣고 앉았노라면 나도 절로 웃음이 킥킥 나오더라고요.

 

 

 

그 방문 앞길

권정생님께

 

내 만약 큰 죄 지어

사람들 모두 나에게 돌팔매질로

이 세상 밖으로 쫓겨날 때

마지막으로 꼭 들려갈 곳 있나니

 

젊었을 적부터 하나님의 종지기였던

올해 예순에도 맑은 열목어로 사시는

몽실 언니네* 먼 친척 오라버님뻘 되는

선생께서 오직 홀로 거하시는 거기

 

일직면 조탑동

청석 깔린 낮은 언덕배기 외진 오막

비바람 치는 날엔 검정 고무신도 들여놓는

한 평 남짓한 방

 

그 방문 앞길이시네.

 

* 안동에 사시는 권정생 선생의 동화 속의 주인공 이름

 

귀천歸天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거기 하느님이 있다고들 하지

우러를 수 없이 아득히 높은 그 곳

황홀한 궁성의 빛나는 옥좌 위에

그건 아주 큰 오해.

인사동 누추한 골목

문턱 낮은 다방 귀천에 가면 알게 된다

하느님은 안개처럼 내려앉아 더 내려갈 데 없이

가장 나지막한 처마 밑 허름한 다방

귀천의 등받이도 없는 낡은 의자 위에

우리들과 함께 앉아 계시다

많이 본 듯도 한 얼굴에 허름한 옷을 걸치고

걸걸한 목청으로

아무 이쁠 데도 없는 마담 목 여사와

스스럼없이 풋풋한 농담도 하면서.

 

 

친구에서

 

달포만에 찾았다.

뼈로 묻힌 너의 무덤 위를,

적진을 향하는 듯

칡덩굴 군단의 첨병들이

느린 포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예끼 이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어느 위를 감히 기어들어.

멱살을 틀어잡아 멀리 끌어다가

패대기쳐 버렸다.

 

세상의 돼먹지 못한 일에

곧잘 비분강개하던 그대 생각

칡넌출 새순처럼 싱그럽다.

 

아니야,

너는 벌써 그들을 용서하고 있었을지 몰라.

너처럼 세상사 조그만 일에도

묵새기질 못하고 잘 분노하는

나에게 보내는

간절한 너의 묵시일까.

 

 

그의 나라

-병호에게

 

 

 

그 누구나처럼 고향은 어머니였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의 어머니를 찾듯

그는 시를 찾아 헤맨 어린 나그네였네라.

깊숙한 말의 숲 속에 그만 정 들어

모든 걸 버린 채 홀로 거기

평생을 살다.

어떤 날은 세상의 경계쯤에 글밭을 일구어

동무들을 불러 모으고

또 어떤 날은 바람처럼 거리를 떠돌며

시의 전단을 뿌리다가

발길에 짓밟혀 구겨진 말들에 홀로 취해

저무는 오솔길 따라

그의 숲 속 마을을 향하다.

흐릿한 독백으로 돌아가는 빈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말의 별들 하나 둘 돋아오고

마지막날 그의 나라엔

희디흰 시의 눈송이들 내려

그의 깊푸른 말의 숲을 포근하게 덮어 가리라.

 

 

 

 

 

사물의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성찰적 가치들

김지섭론

 

유성호(문학평론가한국교원대 교수)

 

 

1. ‘서정의 원리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씩 매우 절실하고도 선명한 존재 확인의 순간을 만난다. 그 순간을 일러 우리는 운명이나 섭리같은 불가항력의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운명의 순간에 사람들은 삶의 비의(秘義)랄까 숨겨진 뜻이랄까 하는 것들을 직관하게 되고, 나아가 확연한 정신적 고양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경험은 일정하게 존재 갱신의 활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암담하고도 어둑한 실존적 자각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이러한 존재 갱신의 활력과 어둑한 실존적 자각 사이에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생의 형식을 완성하고자 하는 언어의 사제(司祭)들이다. 그만큼 그들은 존재 확인이라는 가장 일차적인 시적 욕망과 더불어,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생의 형식 완성이라는 보다 커다란 의지를 아울러 가진 존재들인 셈이다.

김지섭 시인이 펴내는 첫 시집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 이러한 존재 확인의 순간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생의 궁극적 형식에 대한 관심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라 할 것이다. 주체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경험으로부터 그것의 통합적 국면을 꾀하고자 하는 성격이 이른바 서정의 원리라면, 김지섭 시인의 시세계에는 이러한 서정의 원리 곧 사물을 통한 존재 확인과 궁극적인 가치 지향성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것을 인식수용하는 주체를 일정한 연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때 비로소 우리가 상실한 근원적 감각이나 정서를, 사물(세계)을 응시하고 묘사하는 시적 시선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시인의 시선에는, 사물의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성찰적 가치들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사물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성찰적 가치들은 어떤 것일까? 이 글은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이 구현하고 있는 이러한 가치들을 조감(鳥瞰)해본 한 결실인 셈이다.

 

 

2. ‘관계성의 시학

 

먼저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현저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시인이 바라보는 사물들이 낱낱으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한결같이 어떤 관계적 망()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가령 세상의 들녘에/제 혼자만의 생각으로 피어 있는 꽃마저도 위으로는 먼데 별하늘을 이고/이따끔씩 네 곁을 칭얼대는 바람을 거느리면서 동시에 생각의 잎사귀 위로 후득이는/빗방울 소리를 따라//풀벌레들은 저렇듯/네 마음의 현을 켜고 있”(꽃에게)다고 노래할 만큼, 시인의 시선 안에는 모든 자연 사물들이 호혜적 공존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축하고 있다. 다음 시편은 그러한 관계성의 시학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뜻 깊은 실례이다.

 

해는 제 스스로 빛나지만

저 혼자 살지는 않는다.

바람이 저 갈 길을

제 팔만 흔들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떨기 새의 울음소리에도

한 점 빛과 한 자락 바람이

묻어 있느니.

그 모든 것을 보고 섰는

저 키 큰 오리나무와

그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엉겅퀴

엉겅퀴의 기침 소리에 놀란

조 귀뚜리의

도근거리는 가슴.

 

― 「관계전문

 

시인의 시선에 의하면 해는 제 스스로 빛나지만/저 혼자 살지는 않는. 바람이 저 갈 길을/제 팔만 흔들고/갈 수 없는 노릇처럼 말이다. “한 떨기 새의 울음소리에도/한 점 빛과 한 자락 바람이/묻어 있듯이 그 모든 것을 보고 섰는/저 키 큰 오리나무와/그 밑에서/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엉겅퀴조차 엉겅퀴의 기침 소리에 놀란/조 귀뚜리의/도근거리는 가슴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의 제목이 나타내듯이, ‘관계()’ 속에서 주체와 사물이 결합되어 있음을 시인은 줄곧 노래하고 있다.

이 같은 서정적 기조(基調)슬픈 날도/꽃은 피어나고//기쁜 날도/꽃은 떨어지고//피고 지는 것들/우리 마음 모르듯//슬퍼하며 기뻐하며/우리도//꽃잎 따라 하냥/피고지지 말아라”(꽃은 피고 지고)에서처럼, 꽃이 피고 지는 현상과 인간의 내면 현상이 유추적인 연관 아래 놓여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가뭇한 하늘에서/눈송이 나부끼며 내려와/전에 앉던 가지 위에/다시 앉아 보는풍경 역시 끊임없이 전해주는/저리도 간절한 소식/여태 알아듣지 못하고/우두커니”(소식) 서 있는 주체의 시선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지섭 시인의 시선 안에서 사물과 사물, 풍경과 풍경, 내면(시선)과 사물(대상)은 견고한 관계성에 의해 결속되고 있다. 다음 시편 역시 그러한 상호 결속의 양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서릿바람 불어내리면

왜 나무들은 제 소중한 생각의 잎들을

죄다 떨어뜨리고 마는가를

그리고 또

산은 긴 겨울을 맞기 위해서

이제껏 머금고 있던 물기를

모두 제 몸 밖으로 내보내 버리는가를

 

그것은 마치

한 오리의 생각도 없이

머릿속을 다 비워 내고서야

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고

늙어 갈수록 사람의 몸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벼워지는 이유 같은 것

 

생각의 잎들 다 떨구고 선

저 무심한 나무들처럼

물기란 하나도 없이 조금씩 사위어 가는

그 겨울산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들의 마지막 겨울을

맞을 일이다.

 

― 「우리들의 겨울전문

 

시인은 서릿바람 불어내리면/왜 나무들제 소중한 생각의 잎들을/죄다 떨어뜨리고 마는가를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산은 긴 겨울을 맞기 위해서/이제껏 머금고 있던 물기를/모두 제 몸 밖으로 내보내 버리머릿속을 다 비워 내고서야/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고/늙어 갈수록 사람의 몸이/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벼워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나무//물기라는 비유의 축과 사람//생각의 비유의 축이 연결되면서, 모든 자연 현상과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연결시키는 시각에서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시인은 생각의 잎들 다 떨구고 선/저 무심한 나무들처럼/물기란 하나도 없이 조금씩 사위어 가는/그 겨울산처럼/우리도 그렇게 우리들의 마지막 겨울을/맞을 일이라는 통합적 자각으로 시적 결구(結句)를 이어간다. 이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이 외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긴밀하게 작용-반작용하면서 우주의 화음(和音)을 이루고 있다는 시적 해석을 시인이 내린 결과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성의 시학은, 시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특정한 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는 속성이라는 점에서 이중적 차원의 것이다. 그래서 김지섭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한편으로는 사물들의 긴밀한 결속 관계를 파악해내는 힘이라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들로 하여금 생의 궁극적 형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대한 동화(同化)를 경험케 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흡인력을 가진 세계라 할 것이다.

 

 

3. 서정시의 시간경험

 

근본적으로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경험의 형식으로 씌어진다. 그것이 설사 미래적 전망을 형상화한 것이거나 시간 자체를 초월부정하는 이른바 영원성에 관한 시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가치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양식적 특성을 지닌다. 이처럼 서정시와 시간은 불가피한 짝이고, 분리불가능한 서로의 원질(原質)이다. 두루 아는 사실이지만, 사물들 사이의 인과적 계기나 일정한 시간적 경과를 중시하는 서사와는 달리 서정은 사물의 이치를 순간적으로 포착표현하는 원리이다. 물론 이때의 순간은 일회적 시간성의 개념이 아니라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순간이다. 말하자면 서정시가 구현하는 순간은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통합한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강렬하고 집중된 시간의 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시적 순간은 그야말로 오랜 경험과 시간이 반복축적되어 있는 집중의 형식으로서의 순간이 된다. 서정시인들은 바로 그 순간의 형식을 통해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시를 쓴다. 김지섭 시인의 시는 바로 이러한 시간의 속성을 밀도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말하자면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사물 안에 깃들인 시간을 한결같이 응시하고 표현하고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내 살다가 마지막 날

활활 저 불길로 타올라

온전히 잊힐 일이다

세월 흘러도 묻히지 않고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더러운 이름은커녕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

알 수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상형문자의

비명으로 남거나

더더욱

밤에도 눈감지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입상으로 서서 전설처럼 남지도 말고

 

그리하여 또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구천을 지향 없이 떠돌거나

다시는 열리지 않는 굳센 빗장이 가로지른

캄캄한 어둠의 나라에는 물론

어느 귀한 집안의

귀여운 아기울음 소리로도 또 태어나지 말고

지극한 즐거움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

황금의 땅에도 결코 머물지 말고

 

― 「마지막 날전문

 

시인은 내 살다가 마지막 날/활활 저 불길로 타올라/온전히 잊힐순간을 꿈꾼다. “세월 흘러도 묻히지 않고/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더러운 이름을 바라지 않고, 또한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알 수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상형문자의/비명으로 남거나/더더욱/밤에도 눈감지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입상으로 서서 전설처럼 남지도 말자고 다짐도 한다. 마지막 날’, 자신의 이름은 다만 이 지상에서 철저하게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절정에서 불타올라 사라져버리는 것, 그것이 시인이 꿈꾸는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캄캄한 어둠의 나라에는 물론/어느 귀한 집안의/귀여운 아기울음 소리로도 또 태어나지 말고거꾸로 지극한 즐거움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황금의 땅에도 결코 머물지 말고자신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소멸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멸 지향의 상상력과 소망은, 서정시가 궁극적으로 노래하는 권역이 시간의 절대 형식임을 증언한다. 아까도 강조했듯이, 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통합한 이른바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강렬하고 집중된 시간의 형식이 여기서 구현된다. 그래서 시인이 바라보는 시적 순간은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시인은 바로 그 순간의 형식을 통해 충만한 현재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날 그의 나라엔/희디흰 시의 눈송이들 내려/그의 깊푸른 말의 숲을 포근하게 덮어 가리라.”(그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상상력은 얼마나 오랜 세월/걸어 왔을까/이제는/늙디 늙은 나귀 한 마리”(동요를 들으며)에서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고(낡아가고) 있는 생명들을 소중하게 담아내는 상상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낡은 수레 한 채/세월의 신작로 한가운데 서서/구를 듯 말 듯/찌그덕 찌그덕 소리 듣는/늙은 소”(삼월에는)에 깊은 시선이 머물게 하기도 하고, “그 해의 마지막 꽃잎이나 마지막 각혈”(그 겨울의 끝)을 담아내게 하기도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사라짐의 풍경이 그의 시선에 깃들이면서, “이 세상 어느 누구도/날 따라 나서지 못하고/나 또한 같이 가잔 말 못하고/오직 혼자 그리로 불려 나가야 할 때”(그 때)가 비로소 시인 자신이 이 지상에서 내가 마지막 시를 쓸 날”(마지막)이라는 것을 힘겹게 증언하고 있다. 그 궁극적 소멸의 지점을 예리하게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그래서 충만한 현재형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편 역시 그러한 마지막의 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인의 진정성이 남달리 표현된 사례이다.

 

돌아가야 하느니

 

끝없이 떠다니는 바람의 혼백마저

잠시 풀잎 위에 눕는

황혼은

오랜 세월 떠돌던 사람들

기나긴 유랑을 끝내는 시각

 

떠나온 것들 모두 돌아가는

이런 황혼에는

생각에 잠긴 사물들

조용히 두 손 모으고,

노을이라도 신들의 그림처럼 피어오르면

사람들의 눈빛은

한결 성스러워진다.

 

그 때 어둠은 저만큼

엄숙한 판관처럼 검은 제복을 걸치고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이윽고 거대한 어둠의 나라의 사자가

침묵의 시종들을 거느리고 와

온갖 물상들의 머리에

따스한 손을 얹는다.

 

― 「황혼전문

 

시인은 이제 돌아가야 하느니라고 노래한다. 왜냐하면 황혼은/오랜 세월 떠돌던 사람들기나긴 유랑을 끝내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떠나온 것들 모두 돌아가는/이런 황혼에는/생각에 잠긴 사물들조용히 두 손 모으고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한결 성스러워지는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그 때 어둠은 저만큼/엄숙한 판관처럼 검은 제복을 걸치고/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이윽고 거대한 어둠의 나라의 사자가/침묵의 시종들을 거느리고 와/온갖 물상들의 머리에/따스한 손을 얹게 된다. 이 어둠의 안수(按手)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이야말로 불가피한 운명의 시간이자 우리들 삶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존재 갱신의 역설적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들 이승의 끝을 흐르는 강/그 강의 저 편 언덕에서/이곳으로 보내오는/해득할 수 없는 신호음 같은 것으로 들릴 때”(귀뚜리 소리 들린다), “어느 알지 못하는 곳에선가에서 불어와 여기 내 방의 창문을 두드리다가는 또 어느 곳으론가로 떠나버리는 그 바람 소리”(나무뻐꾸기 이야기)를 듣게 되고, “위리안치의 유배지 같은/한적한 변방의 밤”(변방에서)에서 산다는 건 마침내/흔들림에 무심해지는 일”(산다는 건)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시인에게 시간이 세상 그 어떤 제왕의 말도 절대로 듣지 않는 말/가다가 지쳐 한 번 무릎 꿇는 날에는/다시는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말”(세월마歲月馬)인 것이다. 그 불가항력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은 사물 속에 삶 속에 자신의 흔적을 이토록 강렬하게 각인하고, 동시에 시인은 그 흔적들을 통해 소멸의 운명을 겪을 자신의 실존을 깊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정신적 고처(高處)에 대한 지향

 

다음으로 김지섭 시인의 시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핵심적 요소는, 어떤 정신적 고처(高處)에 대한 지향을 시인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인류가 그동안 공들여 축적해왔던 중심적 가치들은 물론, 암묵적으로 합의해왔던 인접 가치들이나 불문율까지도 폭력적으로 폐기시켜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모두가 본질없는 사회 또는 모든 교환가치가 본질을 대신하는 사회로 우리 사회가 진입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인데, 서정시에서 그것은 문명 비판이나 자연 및 영성에 대한 강조로 흔히 나타난다. 이러한 것이 서정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본래적 기능 곧 지각의 갱신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지향이라는 몫일 것이다. 요컨대 지각의 갱신을 통해 사물의 의미와 본질을 재발견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김지섭 시인 역시 그러한 본질적 가치에 대한 자각을 자신의 시세계의 깊숙한 중심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가치 지향성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불러온다. 가령 시인은 비 한 방울 안 와도 잘 자라는 나무,/죽은 듯 말없이 있다가도/부르면 놀란 듯 눈을 두리번거리는 나무,/다른 어떤 것보다/제 홀로 우뚝 높고 싶은 나무,/사람들이 그의 앞에서/고개 조아리기를 기다리는 나무,/깊은 숲속에서 홀로 있지 못하고/사람들이 다니는 길목까지 나와 있는 나무,/죽어서도 잊히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나무,/종교처럼 거룩하고 전설처럼 남고 싶은 나무.”(이름 나무)로 남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삶의 지표(指標)를 어떤 거룩하고 깊은 세계에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 시편은, 그러한 가치 지향성이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표현된 한 전범(典範)이라 할 것이다.

 

옛 로마의 나라 원형 극장이 있는 나라 아름다운 나폴리의 나라 가극의 나라 피사의 사탑이 있는 나라 요새 와서 축구가 유명한 나라 교황청이 있어 더욱 유명한 나라 지중해의 장화같이 생긴 나라 돈이 없어 한 번도 외국을 가보지 못한 내가 어쩌면 영원히 가보지 못하고 죽을 나라 뭐 그래도 원통할 거야 없는 나라 참으로 먼 먼 나라 그 나라의 어느 한 구석에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이 있다네.

 

사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가 그 곳까지 팔려간 한 조선인 노예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이태리 속의 작은 한국, 알비 마을이 있다네. 문득 거기 가보고 싶네 짚신 몇 켤레 삼아 어깨에 메고 걸어가고 싶네 바랑 속엔 잘 말린 대구포 하나 조선 대추 몇 낱 누룩 한 장 넣어 메고 떠나가겠네 몇 년이나 걸어야 할까 가다가 쓰러지면 길가에 누워 자고 밥은 못 얻어먹으면 나무 열매라도 따서 먹으며 걸어가겠네 가서 안토니오 코레아의 무덤 찾아 한 사흘쯤 엎드려 있다가 오고 싶네.

 

―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전문

 

이탈리아는 시인의 기억에 옛 로마의 나라 원형 극장이 있는 나라 아름다운 나폴리의 나라 가극의 나라 피사의 사탑이 있는 나라이다. 한편 그곳은 돈이 없어 한 번도 외국을 가보지 못한 내가 어쩌면 영원히 가보지 못하고 죽을 나라 뭐 그래도 원통할 거야 없는 나라 참으로 먼 먼 나라인데 그 나라의 어느 한 구석에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이 있다는 점에 시인의 관심이 머문다. 그 마을은 사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가 그 곳까지 팔려간 한 조선인 노예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이태리 속의 작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짚신 몇 켤레 삼아 어깨에 메고 걸어가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바랑 속엔 잘 말린 대구포 하나 조선 대추 몇 낱 누룩 한 장 넣어 메고말이다. 그리고 가다가 쓰러지면 길가에 누워 자고 밥은 못 얻어먹으면 나무 열매라도 따서 먹으며 걸어가결국은 안토니오 코레아의 무덤 찾아 한 사흘쯤 엎드려 있다가 오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렇다면 시집의 제목으로까지 선택된 그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는 코레아(Corea) 씨가 모여살고 있다. 이들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정착한 안토니오 코레아이다. 1983년의 런던발() 기사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1577-1640)한복 입은 남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렸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언론은 안토니오 코레아가 이 그림의 모델이었을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절제되지 않은 민족주의가 낳은 신화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김지섭 시인은 특유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이역(異域)의 한 모퉁이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을 상상적으로 만나고자 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꽃샘추위를 겪고 피어나는 봄을 보면 발해의 건국이 생각난다. 당나라에 대항한 대조영의 꼭 다문 입술과 분노로 치켜뜬 그의 눈썹이 보이는 듯 어려 온다. 드넓은 벌판을 말 달리며 노도처럼 밀어가는 고구려 유민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적에게 무릎 꿇고 왕조를 바치는 무력한 왕은 싫어. 성을 부수고 들어오는 점령군을 맞으면 끝까지 싸워야 해. 그러다가 힘이 부치면 고토를 다시 찾아들 결의를 하늘에 맹세하고 변방으로 숨어드는 군사들의 번쩍이는 창검을 보고 싶어.”(꽃샘추위)라는 시적 발언과 그대로 등가(等價)를 이루면서,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움과 설움을 같이 녹여내고 있다. 이처럼 시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역사 속에서 구체성을 가지는가 하면, 다음 시편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어떤 궁극적(ultimate) 존재를 지향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새하얀 눈밭에

새들의 발자국 몇 낱이 시리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가끔씩 땅위에 자취를 남기는데

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

나는 이 세상길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남겨 왔을까

한 점 모이를 위해 새들은

가끔씩 땅위에 내려왔지만

나는 이제껏 무엇을 바라

어느 길로 어떻게 걸어 왔던가

문득 그 먼 길 돌아다보면

아직도 녹지 않은 기억의 골짜기 잔설 위로

푸르고 시린 숱한 발자취

어지러이 흩어져 있음을 본다.

 

― 「눈 온 날전문

 

새하얀 눈밭에/새들의 발자국 몇 낱이시리게 찍혀 있는 풍경에서 시인은, “하늘을 나는 새들도/가끔씩 땅위에 자취를 남기는데/한 번도 날아본 적 없는/나는 이 세상길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남겨 왔을까혹은 한 점 모이를 위해 새들은/가끔씩 땅위에 내려왔지만/나는 이제껏 무엇을 바라/어느 길로 어떻게 걸어 왔던가라는 성찰에 이른다. “문득 그 먼 길 돌아다보면/아직도 녹지 않은 기억의 골짜기 잔설 위로/푸르고 시린 숱한 발자취/어지러이 흩어져 있음을보는 시인의 시선은, 자신의 생이 추동해온 가치들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아직도 미완의 상태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뭇 자연 속에서 겨울산은 거대한 사원”(겨울산을 오르며)임을 발견하거나, “바람과 햇볕을 고루 나누는 율법을 지키어/하늘의 다스림에 부끄럽지 않으니/서로가 서로를 치는 사람의 마을을 피해/그들은 이렇게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것”(숲마을 정경)이라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걸어온 길을 되짚는 시각”(백로 무렵)이 세상 가장 은밀한 말씀””(저물녘 설경)을 듣게 되는 일종의 종교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상상력으로 그는 때로 성난 바람에게는/큰 줄기가 휘어져 꺾이기도 하지만//더욱더 감당할 수 없는 아픈 바람이 불면/하늘 향해 켜켜로 자라난 단단한 목질부와/땅 속으로 스민 깊은 마음의 뿌리를 뽑아/나무는/마지막 흔들림에 항거하는 것”(나무를 생각함)이라는 정신적 고처(高處)에 대한 지향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지섭 시인은, 가장 구체적인 역사적 상상력과 가장 보편적인 종교적 상상력을 통해, 시를 통한 정신적 고처에 대한 지향을 자신의 시세계의 중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5. 시적 활력의 첨예한 예증

 

결국 김지섭 시인의 시세계를 일러 우리는, 사물들이 품고 있는 관계성과 시간성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궁극적 가치를 노래하는 세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더러는 격정 속에 깃들인 발견의 의지로, 더러는 오랜 세월을 삭여온 성찰의 무게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낮은 목소리가 우리의 삶에 비상한 활력을 부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왜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독자들의 열망이 시 안에 투사되어 시인의 언어와 조우하면서 생기는 창조적 흔적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서정시의 존재 확인이라는 것은,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언어와의 일체를 꿈꾸는 독자들 편에서 실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김지섭 시인의 시편들이 우리의 일상에 편재(遍在)해 있는 불모성을 치유하고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것 역시 그러한 소통 가능성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호혜적으로 공존하는 풍경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가치 지향성으로 전화(轉化)시키는 시인의 역동적 상상력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시적 활력의 한 첨예한 예증으로 자리할 것이다.

첨언 하나! 나는 이번 시집에 간헐적으로 나타난 바 있는 그의 교사 체험 시편들이 점증(漸增)하기를 바라고 싶다. 예컨대 수많은 아이들과 만났다 헤어지며/그들 앞에 선생으로 살아온/지금 나는 그들에게/무엇으로 남아 있을까”(무엇으로 남아)라는 시적 표현 속에 자신의 절절한 체험적 구체성이 담길 개연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적지 우리 함께 머문 날은/저 두 줄기 강물처럼/소리도 빛깔도 너무 달라/너와 나는 가끔씩 나누이곤 했다./저기 만나 속살거리는 저 강물들도/어느 날엔 또 흩어져 떠나야 하듯/언젠가는 우리들의 하늘에도/이 세상 가장 슬픈 노을 지는 날 있으리니/그 날/내 먼저 떠나야 떠나야하리 라며/오늘 여기 나는/눈을 감는다.”(二水에서)라든가 더러워지면/씻어 주고//더러워지면/또 씻어 주는//갠지스 강물처럼/성스런 이여”(아내) 같은 표현을 통한 가족 시편 역시 좀 더 늘어났으면 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들에 대한 진솔하고도 직접적인 체험 시편이 시집의 한곳을 풍요롭게 채운다면, 그의 표현대로 그의 시편들은 세상의 잔을 다 비우고도/취한 기척 없이/먼 산을 동무하고 앉은/낙락장송 한 그루처럼 혹은 머리에는 백설을 덮어쓰고/어깨엔 푸른 솔바람 소리”(전우익 선생님께)로 가득한 세계로 한결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김지섭 시인의 시편은, 사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보아야 할 성찰적 가치들을 언어의 표면에서 만나는 경험을 흔치 않게 선사한다. 이제 우리가 그 경험에 몸을 담글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