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및 시관계

김지섭 제2시집 도리포가는길

저 언덕 넘어 2023. 6. 17. 20:40

 
 
시인의 말
 
파란만장한 내 일생처럼 나의 시도 그러하였다.
예순 가까운 나이에 낸 첫 시집에서 나는 ‘해도 많이 기울었으니 여생을 시작에 힘쓰리라’고 썼다. 그러나 채 일 년이 안 되어 나는 정말로 희유稀有한 법문法門을 만나게 되면서 시를 그만 두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광대무변한 이 법문을 만나기 위해 시라는 먼 오솔길을 에돌아 왔던 것이다.
이후 십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그 대신 시보다 더 멀고먼 수행修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첫 시집에서 미룬 작품들과 이후의 작품들을 모아 두 번째 시집을 묶어 내 고달픈 시력詩歷을 정리한다.
외로웠던 내 시의 길에 정말 큰 힘이 되었던 손병희 교수님의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번이나 흔쾌히 해설을 주신 유성호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시인 소개
 
틈틈이 농사를 지으며
가을 들녘에서
낙조를 벗 삼고 살고 있다.
글밭 동인
작가회의 회원
첫시집
‘안토니오 코레아의 알비 마을’
 
 
 
 
 
1부
 
귀뚜리
 
지새며 푸른 달빛 속
그가 읊는 건 뭘까
 
장자莊子인 듯
법화경法華經인 듯
 
긴 여름밤도 기울어
입추 들면
 
 
마등령
 
 
벌써 오래전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가 대학 시절에 넘었다던 마등령
그날부터 그 마등령이 내 가슴 한 녘에
전설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뒤 두 번이나 대청봉을 올랐지만
마등령은 끝내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아니 그 해 여름 신새벽의 영시암에서
퍼붓던 장대비로 하산한 뒤
마등령은 정말 신선들만 살게 되었다.
아니 지금 힘겨운 오십령을 넘어
절룩거리며 어찌 가까스로 마등령을 넘는다 해도
그건 그냥 꼬박 하룻길에 넘어야 하는
까다로운 설악 등반길의 하나일 뿐
이제 나는 꿈같은 그의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남녘 꽃소식은 봄바람에 실려와
우리집 앞뜰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다가는
그것이 소백을 거슬러 백두대간의 등을 타고
설악을 치달아 오르면서
마등령에도 철늦은 봄꽃으로 피어나면
내 한 해는 또 속절없이 저물고 말리라.
 
 
 
도리포 가는 길
 
 
(1)
 
붉은 속살 황토밭
이랑 이랑 이랑 이랑
 
마늘잎 연두로 피어나는
천 이랑 만 이랑
 
편히 누운 능선 너머
잿빛 개펄 진 개펄
 
은물결 이랑 이랑
가뭇 가뭇 수평선
 
(2)
 
시눗대 울타리 품안
꼬박꼬박 조는 초가
 
소금바람 불어 불어
너울대는 곰솔 가지
 
조근조근 구불구불
도리포 가는 길
 
노을 하늘 고개 너머
등짐 지고 가는 길
 
 
*도리포 가는 길
무안군 해제반도를 따라 도리포항으로 가는 해안선은
그 길이가 아주 길고 정감 있는 풍경들이 사뭇 펼쳐지는 길이다.
 
 

 
 
푸르고 푸르던 날은 가고
억새꽃 희게 나부끼는 마른 벌판을
강 하나 흐른다.
 
거슬러 올라올라 봐도
시원을 알 수 없는 그 푸른 깊이로
강물이 흐른다.
 
정녕 가고 싶은 길이 있어도
쉽게 굽이칠 수 없어
신음으로 뒤척이는 강
 
흐름 따라 떠도는 길
이제 그만 멈추고 싶어도
어디로도 잦아들 수 없어
 
울음마저 멈추고
거대한 강물 숨죽이며 흐른다.
 
 
 
첫눈
 
첫눈이 내린다
추억처럼 흩날린다
 
잃어버린 어린 날의
해맑은 그 아이 눈빛 같은
첫눈이 내린다
 
흩날리다 스러지며 첫눈은
결코 땅 위에 쌓이지 않는다
 
꿈결이듯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그 먼 날 첫 이름의 추억처럼
 
 
 

 
젊은 날의 산기슭은
나를 까마득한 정상으로 밀어 올렸다.
가파른 절벽은 내 손을 꼭 잡아끌어 올리고
즐비한 봉우리들이 도열하여 반겼다.
정상을 오르면
거대한 산맥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세계의 끝으로 휘달리고
가을이 와도 열매도 낙엽도 아랑곳없는 나무들은
우람한 둥치를 하늘로만 뻗쳐 올렸다.
하산할 때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처럼 빨리 내리고
 
그러던 산이 언제부턴가
차츰 키를 낮추는 것이었다.
내 발이 닿으면 봉우리들은 너부죽이 엎드리고
정상에 서면
무수한 산들이 멀리서 병풍을 둘러
나를 에워싸듯 아득히 펼치고
내려오는 길은 안개보다 더 편히 내리다가
어느 폭설 쏟아지는 날은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고
 
아, 그러다가 어스름이 깔리는 어느 먼 날엔
산은 더욱 낮아지고 편안해져
그 능선은 늙은 초가지붕처럼 아늑해 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거기 누워
아주 편안하게 누워 잠들리라.
캄캄한 하늘 반짝이는
뭇별들의 축복을 받으며
 
 
산행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은
우리들 사는 마을이
거대한 산맥의 한 끝 그 기스락
낮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손 담그는 저 앞 냇물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면
아득 먼 산골짝 바위 밑
쌓인 나뭇잎들과 만나는 탓이다.
 
산은
슬하에 사람을 거느리고
풀잎 비단으로 어린 짐승들을 잠재우며,
바람과 햇볕으로 푸른 궁성宮城을 쌓고
때로 안개와 달빛을 불러 전설을 수런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휘파람으로 산을 오를 때
산은 눈웃음 짓는 오솔길로 반기지만
가끔씩 천 길 벼랑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나 드디어 만나리라
뼈를 깎으며 정상에 서면
평지에서만 멀거니 바라던
저 깊고 높은 하늘의 소리와
면벽한 선승으로 앉은 산의 말씀을.
 
 
 
겨울 동백
 
밤기운 점점 차가워지면
동백은 다급해진다.
땔감을 차곡차곡 채우기 위해
꽃망울 방을 키워내느라고
 
천지에 눈 내리고
얼음 덮이면
온몸으로 시려오는 한기가 싫어
겨우내 화톳불이라도
조금씩 지펴야 하는 것이리.
 
땅속 깊이 얼면 얼수록
뿌리 끝까지 내려가는 훗훗한 기운
드디어 바깥바람 다스워지면
온몸의 열기 더는 참을 수 없어
붉은 화염 조금씩 밀어내어
 
어느 날 일제히 터뜨리는 불꽃놀이다
세상 한 녘 환호성으로 타오르고.
 
 
 
 
 
 
정선 민둥산
 
달빛 별빛이
밤마다 어루만지고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
 
산아 민둥산아
너는 저리도 나무랄 데 없이
너그러워 보이느냐
 
할머니 굽은 등 저 능선에서는
저절로 졸음이 일고
 
팔을 벌리면
금방 억새빛 깃이 돋아나
그만 훨훨 날아 오르겠구나
 
 
 
눈 온 날
 
흰 눈 세상 앞에 서면
내사 할 말을 잃어
 
한식경 잠 든 사이
온 천지를 덮어버리는
그 기개에 눌려
 
저 보아
땅위의 것들 모두
저리도 파랗게 질려 있는 걸.
 
 
 
 
 
 
아침 바다
 
뒤치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바다가 내려다 뵈는 언덕
 
밤새 조금씩 부풀어져
만삭으로 더욱 둥글어진 수평선
 
출산 직전의 짐승인 양
그르렁거리는 바다의 거친 숨결
 
파도는 산파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 올렸다 쓸어내리고
 
이윽고 태어나는 생명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저 바다의 붉은 함성
 
 
 
 
주물공장 뒤편 산기슭에 계셨던 벚나무들
 
 
내 눈이 어쩌다 강 건너 쪽으로 가서
또 무슨 일로 거기 높다란 공장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때가 가끔 있었지.
강고한 쇠들이 고열에 녹아 펄펄 끓는다는
저 주물공장의 용광로는
내가 이곳에 살러 오기 훨씬 전부터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던 게고
한 번 피어오른 그 공장 굴뚝의 연기는
일 년 열두 달 한시도 쉬지 않고 피어올라야만 하는
것이었고 보면 그렇게 주물 공장 연기는
제멋에 겨워 솟아올랐다가는 흩어지고
나는 나대로 피었다가는 스러지고
세월도 그 큰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저 너른 낙동강을 건너다녔을 것이었다.
 
오늘 아침 창을 열고 무심코 건너다보았더니
그 높은 굴뚝 근처에 흰 연기 덩어리가
푸지게도 많이 뭉게구름처럼 눈에 띄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봄날이라서 그런지
그 연기 덩어리 조금도 날려가지를 않아
괴의하게 여겨 자세히 보았더니
웬 걸 환하게 무리지어 핀 벚꽃이
먼눈에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다.
 
아, 아 주물공장 뒤편 산기슭에 살고 계셨던 벚나무들은
그 굴뚝에서 연기 피어오를 때마다
제 몸에서도 흰 뭉게구름 같은 연기 한 번 펑펑
얼마나 피워올리고 싶었을까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은 저리도 풍성한 꽃구름
뭉게뭉게 신나게 피워 올렸을 것이었는데
오늘에사 첨으로 왜 내게 그걸 보여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살아가는 게 저 벚나무나 나나 다르지 않아
고프고 슬프고 아쉽고 서러웠을진대
저 벚나무 저도 그렇게 살아있다고
먼 사람들에게까지 한사코 보이려고
꽃구름 저리도 환하게 피워 올렸는데
그렇다면 나도 저 먼 나무들 눈에
언제 환한 꽃 한 번 흐드러지게 피어 보인 적
있었던 걸까.
 
 

 
 
새는 빛이 내리는 하늘에 산다
한 점 모이를 쪼으러
그는 가끔 땅위에 앉지만
빛으로 내리는
저 깊은 하늘의 소리를 듣듯
다시 공중을 나는
새들의 힘찬 비상을 보는가
 
푸른 이념으로 뻗어나는 나뭇가지 끝으로
조금씩 옮겨 앉으며
또 한 번의 힘찬 나래짓을 위해
쉴새없이 깃을 보듬고
사나운 바람에 끝없이 흔들려도
가녀린 발목으로 온몸 부지하며
새는 그의 일생을
저 푸른 반공에서 산다
 
 
 
상사화
 
피가 마르는 아픔을 견디며
절명시를 쓰는
시인처럼
 
평생을
뜬눈으로 지새운 고승이
열반송을 읊듯
 
상사화는
잎 줄기 다 마른 땅 위로
마지막 꽃대를 밀어 올린다.
 
 
내 기억의 골짜기 그 긴 오솔길은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 나선 길
중간에서 차를 멈추었다.
지나다니면서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생각한 곳
좌우가 산으로 가려진 사이를
굽이진 오솔길이 어디론가 이어져
오늘 같은 봄날이면 살구꽃이라도 환하게 핀
외딴집 한 채라도 숨어있을 듯하던 거기.
 
굽이진 입구를 들어서자
새로 조성한 듯한 납골당 하나,
눈길을 돌리니 낮은 언덕배기에는
이장해 간 듯한 무덤의 흔적들이 줄느런하고
층층 다락논과 밭들을 따라 오를수록
산기슭에는 우거진 수풀 사이로
늙은 무덤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한 굽이를 따라 더 들어가니
오솔길은 저 멀리 산봉우리 쪽으로 기어오를 뿐
다락논 만한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그만 돌아서서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산발한 소나기구름 같은 어둠이
저벅저벅 소리를 내고 따라오고,
난데없는 소슬바람이 부는 듯
갑자기 신록의 나무들에서
낙엽 내리는 소리가 우수수 들리고
차 선 곳까지 쫓기듯 내려와 뒤를 돌아다보니
어둠은 간 데 없고
죽음 같은 고요만 산골짜기에 가득했다.
 
그렇게 아늑하고 환하던
내 기억의 골짜기 그 긴 오솔길은
억새숲에 바람이 윙윙 울고
다북쑥 헝클어진 무덤들이 흩어진 그 골짜기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녁 연기
 
 
나지막한 초가지붕
좁다란 굴뚝 위로 흩날리는
저녁 연기 한 번 본 적 있는가
 
질기디 질긴 생명은 끝나고
빛과 바람에 말라버린 육신
거기 마지막 남은 것마저
활활 불길로 타올라
 
땅거미로 내리는 어둠 잠시 밝혀
차가운 세상의 한 녘을 데우고
허공으로 흩날리며 사라지는
더 없는 저 그윽함은 무엇인가
 
 
 
 
 
 
 
 
2부
 
 
늘그막
 
 
늙어질수록
눈물은 많아지는가
 
길게 내리는 산그늘 속
처연한 빛깔의
희디흰 산 벚꽃 같은
 
이제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먼 하늘 한편으로는
아직도 붉은 노을
저리 타고 있는데
 
 
꽃 지는 날
 
 
바람에 지는 꽃잎 본다.
꽃이 진다는 건
피어난 뒤의 일인데
요즈음은 왜
지는 꽃만 많이 보는가.
꽃이야 늘 어지러이 지고
또 수다스럽게 피어나는 걸
왜 나는 괜스레
꽃 피는 아침 뜨락 나와
꽃 지는 저녁길 서성이는가.
 
 
가는 길
 
 
아흔 셋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온 집안이 모이셨다.
 
우리 집안에 봄제사는 없는데....
아 참, 너희 큰어머니가 삼월이었구나
니 아버지를 불러가셨나 보다
팔순 당숙모님이
무슨 점성가처럼 단언하셨다.
한때 동생이 모시기도 했던
제사가 있었지
 
날까지 받아놓고 그만 돌아가셨다는 그분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전설처럼
들려주셨던
 
그러면 그 긴 세월 동안
저 하늘 어디선가 그분은
아버님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셨단 말인가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엔
주역의 글귀들처럼
모호한 상징으로 펼쳐지는 궤도를 따라
 
수천 수억의 별빛들은 제각각
걸음걸음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 고향은
 
 
정든 땅 언덕 위
바람벽도 허물어진
그 기억 속의 집
 
아니
어룽지는 눈물 너머로
아른거리는 내 어머니
 
더 큰 고향은
말없이 내려다보는
가뭇없이 높은 저 하늘
 
아니
그보다 더 큰 고향은
수 억 광년을 날아오는
먼 먼 저 별빛
 
 
 
 
 
전생前生
 
 
 
내 무슨 일로
낯선 길 무심히 걷고 있을 때,
아득히 먼 전생의 어느 날
그 길로
꼭 한 번쯤
걸었음직한 생각
아슴아슴 떠올라
끝없이 고개 갸웃거려 보느니
 
 
 
 
기적에 대하여
 
 
 
사는 게 나른하게 하품만 날 때
사람들은 이상한 요술방망이나
백마 타고 오는 왕자를 생각한다
기차도 오지 않는데 기적소리를 들으려는 것처럼
그들은 기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금
두 발로 하릴없이 대지 위를 거닐거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든가
이웃과 만나 노닥거리다가 그것도 지쳐
힐긋할긋 눈 흘긴다거나
 

피곤한 하루를 졸음의 갈피 속으로
슬몃슬몃 구겨 넣고
죽음처럼 깊게 깊게 잠드는 일,
다시 우짖는 새소리에 눈을 떠
벌레처럼 또 하룻일을 떠나는
지겹게 되풀이 되는 이런 일상들이
 
실은 기차도 다니지 않는 기찻길에서
환청으로 들려오는 기적소리보다도
정녕 기적 같은 순간순간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그대 아는가.
 
 
 
저 꽃잎처럼 지는 날
 
 
한껏 벙글었던 봉오리
활짝 피어났다가
이제 더는 견딜 수 없어
뚝뚝 꽃잎 지는 날
 
움켜쥐고 있던 손길 내려놓으면
비로소 꽃은
가장 편히 눈 감을 수 있어
 
마지막 그날도 그럴 거야
몸은 나른하게 해저처럼 가라앉고
아무리 안간힘 써보아도
더는 일어날 가망은 없어
 
다시는 일어날 걱정도 없이
편안히 저 꽃잎처럼 지는 날
한 점 바람도 일지 않고
숨죽이며 지켜보는 날
 
 
 
 
 
삶은 밤을 먹다가
 
 
이 가을엔 인근 야산 오솔길을 많이도 걸었다.
곱지 않은 날씨 탓에 들판은 흉년이라는데
산에는 도토리와 밤이 지천으로 떨어졌다.
난생 처음으로 밤을 많이도 주웠다.
 
익힌 밤알 어디엔가에는 곧잘 이름 모를 애벌레가 삶겨서 고운 씨눈처럼 붙어 있었다.
아 ,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저 애벌레와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다만 저 벌레는 소인국의 족속으로 허기를 면하려고 밤알 속에 잠시 깃들일 수 있었고 나는 그 밤알을 내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거인국의 족속이었을 뿐이었으니까. 더욱이 나도 한때는 저 애벌레의 전생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던 알이었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저 애벌레, 한 끼의 가난한 식량을 위해 애쓰시다가 내 한때의 군것질에 희생된 저 벌레의 영혼은 지금쯤 어느 자애로운 천사의 곁으로 돌아갔을까? 거대한 제국의 손으로 밤알을 쓰레기 통속에 버리면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늘 다시 식탁에 앉는다. 무수한 소인국의 신민들이 제 목숨을 바쳐 차려놓은 저 제단 앞에 나는 거인국의 왕자처럼 기품 있게 앉아 있다. 촛불마저 경건하게 타오르고 있는데... 나는 어떤 기도문을 읊조리며 저 잔을 들어야 하는가?
 
 
늦가을 밤
 
 
가을 깊어
짧은 해 빨리 떨어지고
 
어스름 길 찾아오실 나그네
행여 기다려라
 
세상에 꽃들
모두 감추오고
 
섬돌 위
낙엽 구르는 소리에
 
혼자 지새우는
밤은 오리니
 
 
 
아배 그 말씀
  - 여기 한 자리는 나온다.
 
할배 잠드신 몽솔산
별로 눈 들지 않는
산 뒤편 東北間 한 곳을 가리키며
일흔의 오르막이 힘겨우신 듯
허리를 짚으시는 아배.
左靑龍 右白虎
어느 쪽도 변변치 않아
둘러보면 겹겹산 너머
멀리 우뚝 坐定한 학가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바람이 안 실리껴
-서풍받이만 아니면 돼
-응달이 지잖을리껴
-겨울에서 좀 그렇지
올 들어 벌써
집안 어른 두 분씩이나 멀리 보내고
마흔 내리받이길 서성거리는 내한테
생전 처음 들려주신
우리 아배 그 말씀.
 
 
 
어떤 절후
 
 
너와 나 사이에
사오나온 바람이 불거나
찬 비 내려 살갗에 소름이라도 끼치는 날엔
나는 너의 가장 높은 곳에서 펄럭이는
푸른 깃발을 생각하기 보다는
너가 가장 깊이 숨기고 있는
아픈 상처를 햝는다.
 
숨을 곳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낯선 상대를 만나
으르렁 거려오는 소리를 삼키며
내려 깐 눈썹 사이로 은밀히
상대의 치명적인 공격점을 찾는
저 태고의 한 순간으로 잠시 돌아가거니
 
그 아슬아슬한 위기를 어렵사리 피해
어두컴컴한 동굴로 돌아와
날렵하게 자란 발톱을 치켜세우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어내며
허공을 향해 한 번 크게 울부짖는
오랜 시절 유전의 추억이여.
 
 
 
청산에서
 
 
저 능선에 눕겠지
조선의 낮은 산기슭 한 자락
저 다사로운 풀빛 위에
나도 눕겠지
하늘이 땅에 편히 누운 저 능선에
하늘보다 더 편히
나는 눕겠지
 
 
마지막 (2)
 
 
한 장뿐인 달력을 보며
문득 마지막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마지막 시를 쓸 날은 언제인가
그리고 그 마지막 시의 맨 마지막에
쓰는 낱말은 또 무엇일까
그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반생을 옆에서 잠든 아내와 내가
마지막 나누는 말은 무엇일까
또 그네가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눈빛은
어떤 것일까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명知命을 바로 눈앞에 둔 오늘
마지막이란 시를 왜 이제야 써야 하는가를
후회했다.
 
마지막
지금부터는 문득문득
그 마지막을 떠올려야겠다.
 
여느날처럼 가벼운 휘파람으로 길을 나서다가
뒤에서 닫히는 현관문 소리를 듣는 순간
그 문소리가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심하게 다투고 난 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어둠이 나를 휩쌀 때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와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벗과 헤어져 돌아오는 밤
무심히 올려다보는 하늘 한 켠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 보며
이것이 어쩌면 그 별과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아 아 또 그 마지막이라면
 
찬바람이 흰 갈기 날리며 달리는 동짓날
그 해의 가장 짧은 햇발이
장짓문에 설핏설핏 기울어 갈 때,
 
그대 깊은 가슴의 가 없는 바다를
은빛 물살의 날개로 가득 채웠던 사람이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날 때.
 
어둠이 하루의 끝으로 잠기어 가고
먼 종소리 들리는 어느 마을의 낮은 처마 밑
속살거리는 불빛 사이로
그날의 마지막 기도 소리 흘러나올 때.
 
 
 
꿈결의 시
 
 
내 몸 속에 소리 없이 피가 흐르듯
굽이굽이 강물이 흘러내리고
그 위를 끊임없이 바람은 부는가
한 조각 구름도 흘러 흘러가고 있었네
 
 
할머니
 
 
할머님 지금 당신은 해진 뒤의 서녘 하늘입니다. 빛은 날개를 접고 어디론가 숨고, 벗어 던진 빛의 허물이 당신의 얼굴 위에 어른거린다. 연약한 당신의 손가락이 그러쥔 빛의 파편들, 당신의 눈에 우리들은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당신 귀에 잉잉거리는 먼 바람 소리. 저편 산에 깔린 이내를 더불고 밀려오면, 당신의 마지막 들이키는 거치른 모음. 여기 당신의 하늘엔 이제 별이 빛나지 않는다.
홀로 떠나시는 당신의 길, 바람 따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우리들의 영토에는 한 줄기 소나기 내리고, 할머님.
 
 
 
 
 
 
 
 
 
3부
 
 
추억에서
 
 
천 만 리
머나먼
너의 하늘엔
그날의 햇살
아직도 눈부신데
 
오늘 여기
나의 하늘엔
분분한 눈송이
꿈결처럼
흩날리누나
 
 
그 소식
 

귀엽단 말 한 마디에
올해도 꽃은 한결 고이 피어나고
 
다소곳한 그 눈길 잊지 못하여
나비는 다시 꽃그늘을 서성이나니
 
그 둘의 어우러진 양을
다사로이 지켜보던 햇살이
 
지나가는 바람 불러
그 소식 전하라 하네.
 
 
 
 
 
그 여자의 나무
 
 
사랑스럽단 말 들을 때마다
꽃눈 하나씩 더 생겨나는
나무
 
미운 바람 불어올 적마다
꽃 한 송이씩 스러지는
그 나무
 
까마득 잊힌다는 생각에
삭정이로 내려앉는
그 여자의 나무
 
 
그 해 여름
 
 
아내는 방파제에 앉아 있었다.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대양으로부터
바람은 사뭇 불어오고
파도는 끊임없이 달려와
줄곧 방파제를 치고 있었다.
파도를 타고 바람이 되어
나는 수평선 너머로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한사코 파도를 막고 있었다.
방파제 안에 갇혀 나는
꿈결처럼 부서지는 파도의 신음소리만
듣고 있었다.
 
 
오월 저녁답
 
 
늙은 장미 새 넌출에
벙그는 꽃잎들
 
송이송이 웃음으로 타는
오월 저녁답
 
기우는 햇살 속
흰 머리칼 흩날리며 섰느니
 
이리도 그리운 마음의
애슬픈 잎새들
 
그 어느 때쯤 뚝뚝
마지막 떨어지려노.
 
 
 
만리포 사랑
 
 
텔레비에선 수평선 아래
전국노래자랑으로 일렁이는 물결은
부서지며 부서지며 모래톱을 달려들고
 
트실트실 무좀이 난
잠든 아내의 발가락에 약을 발라 주다가
늘 앓아 파리한 얼굴을 보면
 
오랜 출항에서 돌아와 쉬는 배처럼
우리는 참말로 적막하고나
 
이제는 저 가뭇한 수평선 너머로
그만 떠돌지 말고
이 아늑한 포구에서
철 지난 사랑노래라도 이렇게 듣자고나.
 
 
그날
 
 
즈믄 밤을 하얗게 지샌 장모님의
한 치 한 치 쌓여가는 봉분을
지근지근 밟아가노라면
 
사이렌 소리 유월의 산하를 울던 충혼탑
그 뒤로 피어오르던 한 줄기 향연이 어른거리고
그 너머로 아득 포성 가득한 전쟁터가
낡은 흑백 필름으로 흘러가면
 
그 흐린 화면 위으로
쓰러져 누운 한 젊은 병사의 모습이 어리어
 
그날따라 아침 서리 모질게 시려
산대나무숲 유난히 푸르러 뵈던
외진 골짝 한 녘
 
아배 얼굴도 모른다던 처형은
동짓달 짧은 햇그늘 눌러 밟으며
아내의 손 끌며 끌며 내려오고
 
 
 
어머니의 가을 하늘
 
 
옹알거리며 젖 빨던
자잘한 깨알 다 털리고
채 덜 익은 낟알 떨리려
말라빠진 삭신을 또 흠씬 두들겨 맞는
저 깻단 위를 지나
 
탐스런 이삭 댕강댕강 목 잘려
혼절한 채 흐르는 피 말리며 선
저 수숫단 너머
 
타는 가뭄에도 굵히고 굵혀
가을볕에 익혀 온 열매들
이제는 지천으로 떨어진 땅위로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고 선
저 키 큰 상수리나무 빈 가지 위으로
 
어머니 당신의 가을 하늘은
저리 까맣게 높아가고
시리듯 깊어 갑니다.
 
 
 
행복시트사 김씨
 
 
행복 시트사 주인장 김씨는
날마다 헌 곳을 깁는다.
쇼파나 의자의 헌 곳을 깁고
고장 난 선풍기도 고쳐 깁고
황소바람 구멍은 따스한 입김으로 깁는다.
김씨의 헐어가는 작업복을 기우면서 늙어온
그의 부인은 오늘은 옆에 앉아
지난 여름 쏠아버린 김씨의 수의를 깁는다.
오늘처럼 한가한 날 김씨는
젊은 날 따습던 한 시절을
추억으로 기워도 보지만
지붕 위를 건너다니면서 피고 지는
세월의 누더기는 기울 수 없어
자꾸만 앞으로 휘어지는 허리를 펴고서
서천西天으로 흐르는 먼 구름에 눈을 둔다.
 
 
 
그대에게
 
 
사랑이 떠난다고
그대 서러워 마라.
 
찬란한 저 별빛도
어둑새벽이면 스러져 가고
 
오늘은 상냥스런 산들바람
채찍으로 휘갈기는 날도 있고
 
저리 붉게 타는 봉숭아 꽃불자리도
내일이면 낙화로 분분하거니
 
이 세상 그 어디엔들
시린 그늘 어이 없으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부쳐
 
 
임이시여
저 강을 건너지 마오
 
아무려나 그게 어쩔 바이 없는
당신의 길이지만
 
나는 이제 그날까지
이 강가를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위험한 짐승이 되려니
 
 
그 남자
 
 
여자의 흔적을
찾아가는 그 남자의
거대한 발이
 
견고한 율법의 성을 넘어
거대한 신전으로 숨어 들어가
 
성스런 제단을
짓밟아 버린다.
 
그때 지축이 심하게 흔들리고
저 하늘의 별 하나
길을 잃고 울고 있다.
 
 
 
광화사狂畵師를 읽고
 
 
東仁의 광화사를
이제 다시 읽는다
 
모든 여인들로부터 버림 받은
몹시도 추물이었던 그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얻고자 하였던
그 붉디붉은 모순
 
가장 날카로운 창과
가장 튼튼한 방패를
같은 값에 팔고자 하였던
더없이 합리적이었던 한 사나이가
고사성어故事成語 사전을 들치고 나와
늙은 광화사의 손을 잡는다.
 
 
너는 거기
 
 
저 달은 저 달대로
은핫물 건너다니면서
이울었다가는 지고
 
나는 나대로
세월강 저어 다니면서
피었다가는 지고
 
거기 너는 저만큼서
나는 여기 이만큼서
 
마냥 홀로
반짝이며 지새누나
 
 
 
 
 
 
점경 點景  
 
 
저 장대하고 근엄한
사월의 푸른 솔숲은
 
그 깊은 그늘 밑
검은 바위 서리에
 
짙붉은 진달래꽃
애인인 양 숨기고는
 
 
 
겨울 명사십리明沙十里
 
 
봄부터 저 보안등에 달려들던
그 부나비떼들은 다
어딜 갔을까
 
그 여름 축제의 나날들
사내들에 환호하던 계집들
계집들에 열광하던 사내들
 
이 한적한 해변의 겨울
다 어디로 갔을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소리 따라
달려드는 파도의 안고잡이에
 
저 고운 모랫벌
끊임없이 씼기면서
울고 있는데
 
그런 밤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문득 눈을 뜨는 밤이 있었다.
그 때 온몸은
서서히 긴 털로 덮이고
이윽고 어둠 속
아득 먼 곳에서 부르는 소리 들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달린다. 눈은 푸른 불을 켜고
굳게 선 이성의 목책들이 부서지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아무리 헤매어도 소리의 정체는
어디에도 없다.
맹렬한 추격의 끝에서
야성의 발톱을 치켜세우고
환청으로 흔들리는 어둠을 물어뜯는
마지막 표호. 그리고 쓰러짐.
다시 눈을 뜨면
전신의 털들이 조금씩 짧아져 가고
비릿한 냄새의 비바람 창을 두드리는
그런 밤이 있었다.
 
 
 
 
 
 
 
 
 
 
4부
 
 
순례
 
 
자기가 사는 땅을
거룩타 않고
 
아득히 먼 나라를
성지聖地라 믿으며
 
끝도 없는
가시밭 길
 
맨발로
가고 있다.
 
 
 
눈물길
 
 
거센 눈보라 길을 막듯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 날이
있다고
 
누가 너에게
눈물을 보냈나
네 눈물은
봄바람 가을비
꽃 지는 아침 달 돋는 저녁
너의 눈으로
조금씩
조금씩
고여온 것
 
너는 오직
너의 그 길을 따라
이적지
한 걸음
한 걸음
오고 있지 않았느냐
 
 
 
내 마음 속 절벽에는
 
 
내 마음 속 가파른 절벽에는
단 한 포기 풀 나무도
자라나지 말라.
어디 야윈 씨앗 하나 날아와
마른 암벽 사이 스며
모진 형상의 죽지 않는 나무로
기이한 꽃 한 송이 피움직도 하련마는
아예
세찬 눈보라 속
칼날 같은 바람만
채찍질로 지나가게 하라
내 마음 속 가파른 절벽에는.
 
 
 
땅 위에 어둠 짙어올수록
 
 
우리들 아픔이
앞을 가릴 수 없는
어둠으로 내릴 때
그 어둠 헤치러
밝혀 놓은 등불
그마저 시새는 바람으로 꺼질 때
무릎 꿇고 우러르면 보느니
땅 위에 어둠 짙어 올수록
하늘에 별들 더욱 빛나는 것을
 
 
 
어느 성탄절에
 
 
이 땅에 태어나
국어를 가르치며 밥을 먹으면서
신기료란 낱말은 익히 알아도
장기려*란 큰 고유명사를 처음 들었기 때문일까
TV에서 장박사의 부음을 전해 듣는 동안
내 생애의 적도 부근에서는
난데없는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 을해년 돼지해 성탄절 오후
천사처럼 흰옷 입은 간호사 하나 따르지 않고
털이 부한 낡은 왕진 가방을 든
늙은 예수님께서 머리에 맞은 눈을 털면서
우리집 문간을 기웃거리다가 들어오셔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 찐 내 가슴에
청진기를 대시더니
별 말씀 없이 미소만 지으시다가
바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신문에는
한반도 남쪽에 있는
사천만 개의 조선 화강암들이 모두 모여
태백산맥 남쪽 어느 기슭에 서 있는
큰 망부석望婦石 하나의 슬픈 전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기사가 나와
사람들은 모두 제 살을 꼬집으며 의아해 했다.
 
* 장기려 박사는 육이오 때 가족을 두고 남으로 내려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의사로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생명의 등불을 밝히며 살았다 함
 
 
 

 
잠 못 드는 밤은
시를 씁니다.
 
캄캄한 밤하늘을
예지叡智의 별빛 돋아오듯
 
어둠을 밝히는
시는 한 줄기 빛입니다
 
반짝이는 별빛은
저 하늘의 계시啓示로 빛나고
 
시는
땅위의 가장 빛나는 말씀입니다.
 
 
참회록
 
 
내 한때
어두운 길 숨어 다녀
지금 여기 칼날 딛고
미욱한 짐승의 울음으로 섰거니
검은 눈보라 땅을 할퀴는
유형지流刑地
이제 다만
부신 하늘 우러러
빛살나무 한 그루
가꾸어 갈진저
 
 
 

 
산을 산이라 하던 이
산으로 떠난 뒤
가끔씩 나는
산처럼 생각에 잠겼다.
새상에 누가 그걸 모르나
우스개 소리 같은 늙은이의 말*은
그러나 가끔씩 내 생각의 오솔길을
가파른 산처럼 가로막고는 했다.
그렇게 그의 말이
매서운 바람으로 내 귓전을 때리고 간 뒤
그의 산에도 세월의 눈보라가 몇 번이나 덮이고
나는
산을 산이라 하지 않고
산 아닌 것을 산이라 하며
많은 밤을 지새면서
그의 말이 이제사 어둑새벽처럼 다가왔다.
정말이지 산은 정녕 산인데
산을 산이라 하지 않고
산 아닌 것을 산이라 하면서
우리들은 얼마나 잠 못 이루고
괴로워 하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에서
 
 
 
이상주의자
 
 
꿈꾸었으나 그는
아직 이룰 수가 없다.
그가 머릿속으로 지어온 집은
땅 위에서는 완성할 수가 없다.
그의 꿈은 늘 너무 완벽했으므로
기초를 놓을 마땅한 집터조차 없다.
혹 생각해 놓은 터가 있더라도
그가 가기엔 너무 먼 곳이거나
사람들이 어울려 살 땅은 아니었다.
설령 집터를 찾아들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설계도는 너무 완벽해서
그런 집을 지을 기술자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아직
바람벽도 기운 오두막에 산다.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으나
그는 그 꿈을 버리지 않는다.
무시로 피어나는 꽃들보다는
천 년 만에 한 번 피어나는 꽃을
기다리는 그는.
 
 
추억
 
 
저만큼 걸린
서녘 하늘 수평선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늙은 어부 하나
 
그 젊은 어느 날 한 때
수면 위를 퍼덕거리며 뛰어오르다가
힘차게 달아나던
은빛 대어大魚 한 마리
 
의자에 걸터앉은 쇠잔한 몸을
다시 벌떡 일으켜 세우는
금빛 기억 한 마리
세찬 파도를 가르며
먼 바다로 사라진다
 
순간 온 바다는
흥분한 노을빛으로 붉어가고
 
아득 수평선 끝으로
내리는 어둑발
 
 
서울에서
 
 
도심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켜켜이 솟아나는
주상절리柱狀節理의 협곡에 갇혀
 
사람들 인심도
딱정벌레처럼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고
 
 
 
비정규직
 
 
환한 대낮
부신 하늘 한편에 떠있는
파리한 얼굴의 낮달이거나
 
밝은 햇살이 눈부셔
어둑한 굴속에 웅크렸다가
먹이를 찾아 해매는
밤짐승의 빛나는 눈빛이거나
 
바람마저 얼어붙은 겨울 밤
마른 풀 위에 떨어지는 달빛에
보석처럼 빛나는
서릿발 눈물이거나
 
 
서시
  -새천년 새아침에
 
 
하늘과 땅이 무수히 열리고 닫혀
세월은 억겁을 흐르고
강물은 수수만년 이어 끊임없는데
사람은 어이 나타나
아득히 모래알 같은 과거를 헤아리고
지난해와 올해를, 오늘과 어제를 가르는
이 부질없음이여.
 
더욱이 인류사 수천수만 년이 흐르고
다시 반만년 단군 왕검의 땅에
저 야소 나라의 세월 수레바퀴 굴러 들어와
이제 또 새천년 새천년 세상이 소란하니
하 우습기도 우스우나
백을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 한평생으로
천은 그 열곱이니
어허 새천년은 또 그대로 느껍기도 하구나.
 
그렇다면 우선 헌 천년은 가거라
저 누더기를 걸친 헌 천년의 것은 어서 가거라.
나 혼자 잘 났다고 울타리를 높이어
이웃들의 얼굴을 서로 외면하고,
나 혼자 편하려고
어미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버리는 세상은 가거라.
힘 있다고 약한 자를 빼앗고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
아수라의 역사는 가거라.
 
이제 우리들 지난날의
그 모든 어둠과 절망을 불사르고
새로운 세상으로 밝아오는
새천년 새아침을 맞으러
육십억 인류 모두 지축을 울리는 함성으로
하얗게 밤 밝히며 이렇게, 이렇게도 기다리노니.
 
온 누리를 밝혀 올 새천년 새아침 해
그것은
정동진에서 보는 동해의 아침해도,
호미곶 건너 영일만 앞바다의 아침해도 아니고,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본다는
뉴질랜드 어느 섬에서 보는 그들의 아침해도,
저 반변천 너머 이름 없는 저 소백의 연봉으로 떠오르는
나의 아침해도 아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으로
용솟음치며 밝아오는 새역사의 금빛 수레바퀴일지니.
 
오, 새천년 새아침의 햇살이시여
살찌고 잘 달리는 천리마보다는
병들어 비루먹은 말들의 갈기에 먼저 비추어라.
힘차게 잘 굴러가는 바퀴보다는
낡아 삐걱거리는 바퀴들을 잘 구르게 하라.
넓고 탄탄한 큰길보다는
비탈져 외롭고 쓸쓸한 골목길을 먼저 비추라.
배 불러 단잠에 취한 이들보다는
약 한 첩 못 먹고 밤 지새며 앓는 사람들의
불 꺼진 창을 먼저 비추라.
 
그리고 허리 잘린 백두대간 골짝골짝 마다에서
헤어져 한숨 쉬며 죽지 못하는 이 겨레
서로 만나 껴안는 날 빨리 오게 하시라.
나아가,
오대양 너른 바다의 물결들을 은빛으로 출렁이게 하고,
육대주에 가득한 온 사람들의 마을에
자유 평등 평화의 깃발 물결치게 하라.
 
 
선구자
 
 
그의 말은 언제나
이역의 하늘 밑을 달린다.
 
아득 먼 곳에서 불어오는
새 바람을 예감하며 달리는
그의 말갈기는 언제나
푸르게 휘날린다,
 
우레처럼 고함치며 달려
지평선 너머 사라진 그 말발굽 소리는
그가 일으킨 시대의 뭉게구름이
다 걷힌 다음
 
사람들의 귓전에
먼 북소리로 울려온다.
 
 
겨울 낮 한때
 
 
때묻지 않게도 끝없이 행복한 순간은
찾아오느니.
 
겨울 낮 한 때
그 날 중에서도 햇살이 가장 밝을 무렵
남으로 난 창으로
뛰노는 햇살이 분주하게 가득 들어차
따스하게 데워진 방안
 
눈이 부셔 고개도 못 들고
그냥 바깥을 내다보면
얼어붙은 거리에는 인적도 멀고
흰 갈기 세운 찬바람만 미끄러운 듯
유리창을 덜커덩거리며 지나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시정詩情 같은 것이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수증기처럼
내 가슴으로 훅 끼쳐 올 때.
 
 
돌아오렴
  --친구에게
 
오늘은 뉘 술잔에
아픈 하늘 기울이다가
지금쯤
어느 골목길 돌아가고 있느냐
적막한 밤하늘 별 하나 보며
문득 너를 묻노니
깃털로 떠다니는 너의 영혼
아직 머물 때가 아닌가
서른도 내리막길 이 나이에사
비로소 세상사는 법 배워
꺾어지는 한 자락 아픔도
한 개피 담배 연기로 흩어버리노니
이제 그만 돌아오렴
이 세상길은 끝없어
헤매다가 쓰러져도
결코 끝나지 않느니
 
 
길 가면서
 
 
길을 가고 있네. 얼마나 걸었을까? 떠나온 곳은 너무 멀어 처음을 알 수 없고, 돌아보니 이제껏 걸어온 저 길 구불구불 정말 눈물겹네. 한 곳에 이르니 흰 눈밭이 보이네. 문득 그리로 가고 싶네. 아무도 걷지 않아 더욱 마음 끌리네. 그 눈길 걷고 있으니 바람도 한결 싱그럽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내 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네. 이 눈길 끝나면 잎 돋는 들판 지나 꽃들 흐드러지게 피는 언덕도 만나겠지.
 
휘파람불고 가다가 생각하니 아무도 가지 않은 듯한 그 길을 언젠가 걸어갔음직한 생각이 드네. 기억에는 없는 그날도 흰눈은 내리고 나는 좋아라 걸었겠지. 눈은 줄곧 내려 내 발자국을 덮어버리고 또 세월이 그 눈마저 씻어버리고..... 한참을 가다가 이런 생각도 들었지. 정말 계속 이 길 따라 가야할는지. 그래도 그냥 좋아서 그 길 가네.
 
어느날은 길 가다가 이런 생각도 하네. 이 눈길 밟아가다가 또 다르게 이어지는 나의 길을 하염없이 따라가다가 보면 갈림길 나오고, 나는 또 어느 다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가다가 보면 나의 길은 그 언제 어디선가에서 이 행성 위에서 끝나겠지. 그러면 내 앞엔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리고. 아득한 세월이 또 흐른 뒤 나는 또 다시 나는 이 행성을 찾아와 나는 또 그때 좋아서 걷던 길, 내가 걷던 이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그런 생각의 고삐를 잡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이 길 그대로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자꾸만 묻고 또 물어 본다네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는 예지(叡智)의 별빛
김지섭의 시세계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1.
 
김지섭 시인은 오래도록 자신의 삶을 규율해왔던 기억들과 한편으로는 친화하고 한편으로는 길항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삶의 표지(標識)들을 상상적으로 구축해간다. 그는 이러한 남다른 경험과 기억의 심도(深度)를 통해, 사물의 시간 속에서 존재론적 근원을 발견하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품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발견과 성찰의 연쇄 과정은 끊임없이 김지섭의 시를 관철해가는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는데, 그 힘은 사라져가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한시적 아우라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존재 조건으로 승화하곤 한다. 결국 김지섭의 시는 기억의 원리에 의해 충실하게 펼쳐지면서, 자신만의 동일성을 확보해가는 역동적 파동을 그려내고 있다. 그가 이번에 새로이 펴내는 두 번째 시집은 이러한 역동적 파동을 한껏 품으면서, 그 안에 시인의 기억이 주조(鑄造)해내는 내면의 활력을 아름답게 내장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서정시에 구현되는 ‘기억’이란,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원리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현재적 경험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사후적으로 불러내는 원리이다. 시간의 흔적에 대한 섬세하고도 심미적인 기억이 바로 서정시의 제일의적 수원(水源)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서정시를 통해 부재하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형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로 아이러니나 해체의 미학이 나타나는 때가 적지 않지만, 서정시가 기억을 통해 존재론적 동일성을 탐색하려는 속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서정시의 원리는 유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물의 존재 형식을 통해 혹은 사물이 사라진 후의 잔상을 통해 뚜렷이 나타나게 되는데, 김지섭의 두 번째 시집은 이러한 서정시의 속성을 여실하게 충족해가는 세계라 할 것이다. 이제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도록 하자.
 
 
2.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시에서의 ‘자연’ 형상은 원형성, 직접성 같은 속성을 거느리면서 모든 시인들의 경험 속에 광범위하게 녹아 있는 것으로 다가온 바 있다. 물론 그 형상화 양상을 보면 사랑의 추구, 관념의 대입, 자연 자체의 묘사 등 여러 층위의 작법이 있었겠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자연에서 시의 중요한 소재나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를 노래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만큼 자연 형상은 우리 시에서 퍽 오래고도 깊은 전통을 이루어온 것이다. 김지섭 시인 역시 자연 형상 속에서 삶의 근원적 결핍들을 성찰하려는 기획을 활력 있게 보여준다. 그가 가장 활달하게 구성하는 것은 바로 ‘산’을 향한, ‘산’에 대한 깊은 서정이다. 다음 시편을 먼저 읽어보자.
 
벌써 오래 전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가 대학 시절에 넘었다던 마등령
그날부터 그 마등령이 내 가슴 한 녘에
전설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뒤 두 번이나 대청봉을 올랐지만
마등령은 끝내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아니 그 해 여름 신새벽의 영시암에서
퍼붓던 장대비로 하산한 뒤
마등령은 정말 신선들만 살게 되었다.
아니 지금 힘겨운 오십령을 넘어
절룩거리며 어찌 가까스로 마등령을 넘는다 해도
그건 그냥 꼬박 하룻길에 넘어야 하는
까다로운 설악 등반길의 하나일 뿐
이제 나는 꿈같은 그의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남녘 꽃소식은 봄바람에 실려와
우리집 앞뜰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다가는
그것이 소백을 거슬러 백두대간의 등을 타고
설악을 치달아 오르면서
마등령에도 철늦은 봄꽃으로 피어나면
내 한 해는 또 속절없이 저물고 말리라.
― 「마등령」 전문
 
‘마등령(馬等嶺)’은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함께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고개로서,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인은 오래 전 누군가 대학 시절에 ‘마등령’을 넘었다 말한 것을 들은 날로부터 “그 마등령이 내 가슴 한 녘에/전설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그 후로 두 번이나 대청봉을 오를 때도 마등령에 가보지 못했고, 어느 해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정말 신선들만 살게” 된 마등령을 근처까지 가고서도 만나지 못했다. 물론 시인은 지금 마등령을 넘는다 해도 그것으로 “꿈같은 그의 시절로 결코/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얼마 후 봄날이 찾아와 그 봄소식이 백두대간의 등을 타고 마등령에 이르러 철늦은 봄꽃으로 피어나면 “한 해는 또 속절없이 저물고 말리라.”는 처연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기억’과 ‘현실’, ‘지난날’과 ‘지금’, ‘돌아갈 수 없음’과 ‘올라갈 수 있음’의 확연한 대비 속에서 언제나 시인 자신을 존재하게 하기도 하고 또 까마득한 부재로 몰아가기도 하는 이중 기능을 ‘마등령’이 수행하는 셈이다. 이때 ‘마등령’은 “꿈결이듯/어른거리다 사라지는/그 먼 날 첫 이름의 추억처럼”(「첫눈」) 시인의 마음 속에 아득하고 아프고 아름답게 항구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어떠한가.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은
우리들 사는 마을이
거대한 산맥의 한 끝 그 기스락
낮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손 담그는 저 앞 냇물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면
아득 먼 산골짝 바위 밑
쌓인 나뭇잎들과 만나는 탓이다.
 
산은
슬하에 사람을 거느리고
풀잎 비단으로 어린 짐승들을 잠재우며,
바람과 햇볕으로 푸른 궁성宮城을 쌓고
때로 안개와 달빛을 불러 전설을 수런거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휘파람으로 산을 오를 때
산은 눈웃음 짓는 오솔길로 반기지만
가끔씩 천 길 벼랑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나 드디어 만나리라
뼈를 깎으며 정상에 서면
평지에서만 멀거니 바라던
저 깊고 높은 하늘의 소리와
면벽한 선승으로 앉은 산의 말씀을.
― 「산행」 전문
 
시인은 산을 오르는 까닭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우리 사는 마을이 산맥의 한 끝 기슭 가장자리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먼 산골짝 바위 밑에 쌓인 나뭇잎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은 슬하에 사람을 거느리고, 풀잎 비단으로 어린 짐승들을 잠재우기도 하며, 바람과 햇볕의 궁성을 쌓기도 하고, 안개와 달빛으로 전설을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과 사람이 ‘산’이라는 배경에서 한 몸으로 존재함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도 때로는 “천 길 벼랑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우리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산정에 서면 “저 깊고 높은 하늘의 소리와/면벽한 선승으로 앉은 산의 말씀”을 동시에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산’이 결국 궁극의 소리를 내장한 신성의 거소(居所)임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 그 소리는 “장자莊子인 듯/법화경法華經인 듯”(「귀뚜리」) 들려오기도 하고, “빛으로 내리는/저 깊은 하늘의 소리”(「새」)로 현현하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시원의 목소리를 ‘산행’ 시간 속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시원(始原)’이란, 공간적 유토피아나 시간적 유년기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관(感官)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어떤 신성한 것을 품은 궁극적 가치이기도 하고, 훼손되지 않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지경(地境)을 은유한 형상이기도 하다. 김지섭 시인은 삶의 숨겨진 비의(秘義)를 ‘산’에서 찾음으로써, 자신이 경험하게 된 근원적인 정신적 고양의 한순간을 ‘산을 통해 토로해간다. 그것은 존재를 새롭게 갱신하는 활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시인을 아름답고 오롯한 존재로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산’의 형상이야말로 그의 시세계가 자연 사물의 경험을 통해 근원적 감각과 사유를 밀도 있게 결속해가는 결실임을 보여주는 핵심 사례일 것이다.
 
 
2.
 
우리가 잘 알듯이, 서정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형식으로 씌어진다. 그것이 설사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형상화한 것이거나 시간의 개념 자체를 초월한 일종의 종교적 감각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시간 자체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남다른 경험과 그것을 선명한 기억으로 재구성해가는 양식적 특성을 배타적으로 지닌다. 김지섭의 이번 시집은 이러한 서정시가 수행하는 시간 탐구의 직능을 일관되게 형상화함으로써 세상의 오롯하고도 엄연한 이법(理法)을 매우 선연한 시간 감각으로 노래해간다. 다음 두 편의 단형 서정을 함께 읽어보자.
 
늙어질수록
눈물은 많아지는가
 
길게 내리는 산그늘 속
처연한 빛깔의
희디흰 산벚꽃 같은
 
이제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먼 하늘 한편으로는
아직도 붉은 노을
저리 타고 있는데
― 「늘그막」 전문
 
천 만 리
머나먼
너의 하늘엔
그날의 햇살
아직도 눈부신데
 
오늘 여기
나의 하늘엔
분분한 눈송이
꿈결처럼
흩날리누나
― 「추억에서」 전문
 
‘늘그막’과 ‘추억’이라는 시간의 관념을 제목으로 삼은 이 시편들은, 한결같이 인생론적 정점과 황혼의 느낌을 동시에 주는 한순간을 선명한 컷으로 담아낸다. 앞 시편에서 노래하는 ‘늘그막’은 역설적으로 “이제 조금씩/사람이 되어”가게끔 해주는 차분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길게 내리는 산그늘 속/처연한 빛깔의/희디흰 산벚꽃”을 환기하는 그 시간은, 그렇게 ‘그늘/흰색’의 대조 속에서 처연한 빛깔로서의 노경(老境)을 이루어간다. 이때 ‘늘그막=노경’이란, 인생의 퇴행(regression)을 맞이하는 순간이 아니라 “먼 하늘 한편으로는/아직도 붉은 노을/저리 타고 있는” 인생의 정점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뒤 시편에서도 김지섭 시인은 “머나먼/너의 하늘”과 “오늘 여기/나의 하늘”을 대조하면서, 그 옛날의 “햇살/아직도 눈부신” 빛으로 남아 있고 지금 흩날리는 “분분한 눈송이”도 꿈결처럼 다가온다고 말함으로써, ‘지나간 시간’과 ‘지금 여기의 시간’을 한순간 빛나는 감각으로 통합하고 있다. 이때의 ‘햇살/눈송이’는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이어주는 충만한 현재형의 소도구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늘그막’이라는 시간과 ‘추억’이라는 운동은, 삶이라는 것이 “정녕 기적 같은 순간순간들의 연속이라는 것”(「기적에 대하여」)을 아름답게 알려준다.
이처럼 김지섭 시학의 저류(底流)에는 삶에 대한 서정적 온기와 함께 시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형상들은 인생론적 가치의 중요성을 선명하게 전해주면서, 삶이 끊임없이 그리움을 가지면서 서성이게 되는 어떤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한 깊은 성찰의 세계야말로, 김지섭의 이번 시집이 우리에게 넌지시 전해주는 가장 강렬하고도 속 깊은 메시지이다. 지금처럼 건조한 시대에, 깊이보다는 빠르기만 열망하는 시대에, 그의 시는 깊은 서정을 통한 존재론적 그리움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본래적인 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아름답고 애잔한 목소리를 통해 그 깊은 시간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푸르고 푸르던 날은 가고
억새꽃 희게 나부끼는 마른 벌판을
강 하나 흐른다.
 
거슬러 올라올라 봐도
시원을 알 수 없는 그 푸른 깊이로
강물이 흐른다.
 
정녕 가고 싶은 길이 있어도
쉽게 굽이칠 수 없어
신음으로 뒤척이는 강
 
흐름 따라 떠도는 길
이제 그만 멈추고 싶어도
어디로도 잦아들 수 없어
 
울음마저 멈추고
거대한 강물 숨죽이며 흐른다.
― 「강」 전문
 
원래 시에서 ‘강(江)’은 지속적이고 완만한 흐름으로 바다에 가 닿는 속성으로 인해 ‘역사’ 혹은 ‘삶’을 은유적으로 환기하는 역할을 많이 해왔다. 이 작품에서도 ‘강’은 “거슬러 올라올라 봐도/시원을 알 수 없는 그 푸른 깊이로” 흘러가는 신성한 역사를 은유한다. 푸르던 날은 지나가고 마른 벌판을 흘러가는 ‘강’의 형상은, 그렇게 “가고 싶은 길이 있어도/쉽게 굽이칠 수 없어/신음으로 뒤척이는”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고 안고 흘러간다. 그 흐름을 따라 시인은 “이제 그만 멈추고 싶어도/어디로도 잦아들 수” 없는 한계와 함께, “울음마저 멈추고” 숨죽이며 흘러가는 불가피하고 불가항력적인 삶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때 ‘강’은 ‘역사’ 혹은 ‘삶’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비유하면서, “노을 하늘 고개 너머/등짐 지고 가는 길”(「도리포 가는 길」)처럼 끝없이 흘러감으로써, 우리의 삶이 이토록 때로는 가열하고 때로는 숨죽이며 흘러갈 수밖에 없음을 현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서정시에서의 ‘시간’이란, 시인 자신이 겪어온 경험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에 의해 새롭게 구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한 기억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일들과, 옅은 기억으로 인해 잊혀진 일들을 삶의 흐름 속에 나란히 가지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몸 속에 새겨진 수많은 시간들은 의식의 심층을 형성하면서 끊임없이 우리 삶의 준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김지섭 시인은 오랫동안 삶에 새겨진 부재와 결핍의 기억을 수습하면서, 거기서 숯처럼 결정(結晶)된 상상력을 집중적으로 발화해간다. 그러한 일관성과 집중성이 견고한 형상으로 전이될 개연성을 확보해주고 있는 것이다.
 
 
3.
 
그런가 하면 김지섭의 시는, 시인 스스로 가지게 되는 원형적 자의식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 자의식 밑바닥에는 시인이 오랫동안 겪어온 원체험이 소중하게 담겨 있는데, 이렇게 무의식에 숨겨 있는 원체험은 그 자체로 시인이 취하는 말과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김지섭 시인은 자신의 원체험을 변형하고 거기에 새로운 파생적 의미들을 일일이 부가하면서 자신만의 경험적 동일성을 점진적으로 획득해간다. 이때 원체험을 변형하는 데 시인의 기억 작용이 활발한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원체험의 변형 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origin)을 아름답게 노래해간다. 아득하고 심원하고 융융한 형상들이다.
 
정든 땅 언덕 위
바람벽도 허물어진
그 기억 속의 집
 
아니
어룽지는 눈물 너머로
아른거리는 내 어머니
 
더 큰 고향은
말없이 내려다보는
가뭇없이 높은 저 하늘
 
아니
그보다 더 큰 고향은
수억 광년을 날아오는
먼 먼 저 별빛
― 「내 고향은」 전문
 
시인에게 ‘내 고향’이란 “정든 땅 언덕 위/바람벽도 허물어진/그 기억 속의 집”이다. 여기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집은 다 허물어져 “어룽지는 눈물 너머로/아른거리는 내 어머니”를 적극 환기해준다. 그리고 시인에게 더 큰 고향은 눈물을 넘어 “말없이 내려다보는/가뭇없이 높은 저 하늘”과도 같이 남아 있는 것이고, 끝내는 “수억 광년을 날아오는/먼 먼 저 별빛”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일 터이다. 여기서 ‘집/어머니’ 같은 지상의 아름다움과 ‘하늘/별빛’ 같은 천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고향의 동심원을 이루면서 김지섭 시인의 원체험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 ‘고향’은 그야말로 “천년 만에 한 번 피어나는 꽃을/기다리는”(「이상주의자」) 마음으로 다가오는 곳이자 “내 마음 속 가파른 절벽”(「내 마음 속 절벽에는」)처럼 우뚝 서 있는 존재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김지섭 시인의 시선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향하면서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힘있게 되부르고 있다. 이때 “기억 속의 집”이란 주체 회복의 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이자,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자기 조절 기능을 견지하여 순간적 감각을 회복하게 해주는 상징적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섭의 시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탐색을 통해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그러한 기억 속에 각인된 근원적 가치를 현재의 삶에서 회복하려는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 할 것이다.
 
옹알거리며 젖 빨던
자잘한 깨알 다 털리고
채 덜 익은 낟알 떨리려
말라빠진 삭신을 또 흠씬 두들겨 맞는
저 깻단 위를 지나
 
탐스런 이삭 댕강댕강 목 잘려
혼절한 채 흐르는 피 말리며 선
저 수숫단 너머
 
타는 가뭄에도 굵히고 굵혀
가을볕에 익혀 온 열매들
이제는 지천으로 떨어진 땅위로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고 선
저 키 큰 상수리나무 빈 가지 위으로
 
어머니 당신의 가을 하늘은
저리 까맣게 높아가고
시리듯 깊어 갑니다.
― 「어머니의 가을 하늘」 전문
 
이번에 시인은 ‘고향’과 등가를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나아간다. 물론 ‘어머니’는 시인의 존재론적 기원이 되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몸 속에 깊이 깃들인 유년 시절을 육체화한 은유적 형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옹알거리며 젖 빨던” 어린 시인의 기억이 함께 겹쳐진다. 마침내 시인의 기억은 “수숫단/상수리나무” 위로 깊어만 가는 “어머니 당신의 가을 하늘”을 불러오는데, 그렇게 까마득하게 높아가고 시려가는 ‘가을 하늘’은 노동의 고단함과 가난한 살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넉넉한 기원으로 계시는 ‘어머니’ 자신의 모습으로 화하게 된다. 시인은 언젠가 “떠나온 곳은 너무 멀어 처음을 알 수 없고, 돌아보니 이제껏 걸어온 저 길 구불구불 정말 눈물겹네.”(「길 가면서」)라고 노래하였는데, 바로 그 ‘길’이 어머니의 삶과 고스란히 겹치는 순간을 우리는 여기서 목도하게 된다.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지펴야 하는”(「겨울 동백」) 존재자로서의 시인 자신이 오롯하게 빛나는 것도 이러한 존재론적 기원이 아득하게 시인을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고향’과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가장 깊은 기억의 뿌리이자, 지난 시간을 직접적으로 거슬러오를 수 있는 일차적이고 구체적인 실재일 것이다. 이때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기억은, 단순하게 과거를 탈환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원초적 경험의 형식으로 바꾸어 그것을 현재의 삶과 연루시키는 적극적 행위라 할 것이다.
 
 
4.
 
요컨대 김지섭의 이번 시집은 사람과 사물을 향한 따스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간직해온 시인의 성정(性情)이 한결 잘 나타난 미학적 성과이다. 또한 시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외곽과 주변을 향한 열망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 열망이 진솔한 언어적 의장(意匠)으로 감싸여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로 기억될 만하다. 말하자면 김지섭 시인이 취한 언어와 대상이, 주변성을 사유하고 성찰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훨씬 단단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길을 걸을 때 사람의 말소리가 훨씬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이치와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시를 통해 느끼는 고요함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택하는 배경이나 사물이 세상의 소음에서 비켜선 채 일종의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 침묵의 소리는 “태어나는 생명이 내지르는/소리 없는 저 바다의 붉은 함성”(「아침 바다」)과도 같은 것일 터이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문득 눈을 뜨는 밤이 있었다.
그때 온몸은
서서히 긴 털로 덮이고
이윽고 어둠 속
아득 먼 곳에서 부르는 소리 들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달린다. 눈은 푸른 불을 켜고
굳게 선 이성의 목책들이 부서지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아무리 헤매어도 소리의 정체는
어디에도 없다.
맹렬한 추격의 끝에서
야성의 발톱을 치켜세우고
환청으로 흔들리는 어둠을 물어뜯는
마지막 표호. 그리고 쓰러짐.
다시 눈을 뜨면
전신의 털들이 조금씩 짧아져 가고
비릿한 냄새의 비바람 창을 두드리는
그런 밤이 있었다.
― 「그런 밤」 전문
 
시인이 몸으로 현상하는 ‘그런 밤’은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잠이 깨고, 어둠 속에서 부르는 소리가 멀리 들려 몸을 일으켜 달리는 환각이 ‘그런 밤’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푸른 불”의 감성을 담은 눈으로 “굳게 선 이성의 목책들”을 부수고 바람이 되어 달린 기억도 ‘그런 밤’에 들어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멀리 들려오던 소리는 아무리 헤매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환청으로 흔들리는 어둠을 물어뜯는/마지막 표호”와 “쓰러짐”을 통해서만 간신히 그 윤곽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때 밤의 어둠 속으로부터 들려와 시인으로 하여금 잠을 깨고 몸을 일으키고 달리고 헤매고 쓰러지게끔 한 그 ‘소리’는, 마치 “언제 환한 꽃 한 번 흐드러지게 피어 보인 적/있었던”(「주물공장 뒤편 산기슭에 계셨던 벚나무들」) 기억처럼, “마른 풀 위에 떨어지는 달빛에/보석처럼 빛나는/서릿발 눈물”(「비정규직」)처럼, 시인에게 호환할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준다. 그 기억을 언어의 형식을 바꾼 것이 이를테면 김지섭의 ‘시’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시’가 개체적인 감정의 숙주나 발화 양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김지섭 시인은 서정시가 오히려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숨 쉬는 언어의 집이요, 그것을 통해 세상을 열어가려는 열망의 기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내면이든 대상이든 아니면 언어 자체이든 그는 그것을 삶의 의지와 견고하게 결합함으로써 우리에게 존재의 깊이를 한껏 경험케 해준다. 이렇게 김지섭의 시는 삶에 대한 견결한 관조와 표현으로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준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추구해가는 ‘시’를 사유하고 표현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 아픔이
앞을 가릴 수 없는
어둠으로 내릴 때
그 어둠 헤치러
밝혀 놓은 등불
그마저 시새는 바람으로 꺼질 때
무릎 꿇고 우러르면 보느니
땅 위에 어둠 짙어올수록
하늘에 별들 더욱 빛나는 것을
― 「땅 위에 어둠 짙어올수록」 전문
 
잠 못 드는 밤은
시를 씁니다.
 
캄캄한 밤하늘을
예지叡智의 별빛 돋아오듯
 
어둠을 밝히는
시는 한 줄기 빛입니다
 
반짝이는 별빛은
저 하늘의 계시啓示로 빛나고
 
시는
땅 위의 가장 빛나는 말씀입니다.
― 「詩」 전문
 
김지섭의 ‘시’는 “우리들 아픔이/앞을 가릴 수 없는/어둠으로 내릴 때” 비로소 씌어진다. “그 어둠 헤치러/밝혀 놓은 등불”처럼 그는 “땅 위에 어둠 짙어올수록/하늘에 별들 더욱 빛나는 것을” 노래해간다. 어둠의 깊은 곳에서 멀리 아득한 소리가 들려 그것을 찾아 헤매던 시인은, 이제 그 어둠이 짙어올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자신의 ‘시’를 감득해가는 것이다. 아예 ‘詩’라는 제목을 내건 뒤의 작품에서는, 잠 못 드는 밤에 쓰는 ‘시’를 통해, “캄캄한 밤하늘을/예지叡智의 별빛 돋아오듯//어둠을 밝히는/시”를 “한 줄기 빛”으로 노래한다. 별빛이 “저 하늘의 계시啓示로 빛나”듯이 “시는/땅 위의 가장 빛나는 말씀”으로 시인 곁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김지섭은 “얼굴을 알 수 없는/한 무리의 시정詩情”(「겨울 낮 한때」)을 채집하고 노래함으로써, “피가 마르는 아픔을 견디며/절명시를 쓰는/시인처럼”(「상사화」) 자신의 생애를 담금질하고 있다. 우리는 시가 상상력을 통해 일상에 편재한 불모성을 치유하고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전해주는 양식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시는 생성의 활력만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의 필연성까지 삶의 이치임을 말하는 양식이다. 김지섭의 ‘詩’는 세상의 표면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속도의 활력 대신, 그 심층에서 저물어가는 존재자들의 처연한 아름다움도 경험하게 해준다. 그가 고전적인 심미성을 추구하는 까닭도 이러한 성정과 지향에서 말미암은 바 클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천천히 읽어왔듯이, 김지섭의 두 번째 시집은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는 예지의 별빛처럼 아름다운 섬광의 도록(圖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기억에 대한 반듯한 태도이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순간적 존재 전환을 꿈꾸는 모험을 담는 방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심미적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경험은, 베르그송(H. Bergson)이 말한 ‘지속의 내면적 느낌’을 순연하게 담아내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시적 시간’을 새롭게 구성해가게끔 해준다. 이때 김지섭 시인은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회억(回憶)하기도 하고, 시를 향한 짙은 존재의 자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상을 향한 깊은 기억과 ‘시’를 향한 치열한 자의식을 보여준 그의 두 번째 시집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다음에 그가 보여줄 통찰과 서정의 진경(進境)을, 마음 깊이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발문
(뒤표지)
 
김지섭 시인에게 시는 ‘땅 위의 가장 빛나는 말씀’(「詩」)이다. 시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와 같이 진지하고 경건하다. 그의 시 「이상주의자」의 다음과 같은 구절, ‘천 년 만에 한 번 피어나는 꽃’에서, ‘꽃’을 ‘시’로 바꾸어 읽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인은 ‘금빛 기억 한 마리’에 사로잡힌 ‘늙은 어부’(「추억」)이다. 이처럼 그의 시 쓰기는 시의 광휘를 내밀하게 되새기며, 인간과 세계의 속살을 언어와 감각의 그물로 포획하는 일이다.
이 시집이 드러내는 의식의 한 측면은 생성과 소멸의 상상력이다. 생성은 ‘붉은 화염’(「겨울 동백」), ‘붉은 함성’(「아침 바다」)으로, 소멸은 ‘허공으로 흩날리며 사라지는’(「저녁 연기」) 연기로 환기된다. 생명의 이러한 맹목적인 의지와 덧없는 소멸이 자연의 이법임을, ‘저 깊은 하늘의 소리’(「새」), ‘산의 말씀’(「산행」)으로 암시한다. 생명의 소멸이 ‘더 없는 저 그윽함’(「저녁 연기」)으로 인식되는 데서 순명(順命)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죽음을 ‘그윽함’으로 의식하는 지점,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시인이 자연의 소리, 곧 천명(天命)에 귀를 기울이며 도달한 감각의 세계일 터이다. (손병희, 안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