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 달 살기 (기행문)

14. 브라이스 캐년 가는 길

저 언덕 넘어 2026. 6. 30. 16:44

  그 긴 자이언 계곡도 이제 끝나가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웅혼하고 장엄하던 암벽들의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져 간다.

  그 암벽들의 틈서리에 깃든 풀과 나무들의 푸른 기운이 더 짙어간다. 풀과 나무들은 암벽의 삭막함을 이겨내고 암벽들의 기세를 꺾어버리기라도 할 듯 더욱 푸르러 간다.

   한참을 가다니 목장이 나타난다. 양도 소도 아닌 물소를 키우는 보기 드문 목장이라고 한다.                                                                                                                                                                                                                                                                                                                                                                                                                                                         

 붉은 사암들의 산들이 조금씩 낮아진 곳에 캠핑촌이 있었다. 여가를 즐기러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한곳에는 자동차 운전자들을 위한 모텔이 손님을 기다리듯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창을 든 원주민의 형상은 겁먹은 눈으로, 권총을 든 그들 지배자의 날카로운 눈길을  느끼는 듯 한껏 움츠리고 앉아 있다.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한 식당 휴게소에 장식되어 있는 모형이다.이 한 장면이 미국 개척사의 한 장면일진데, 왜 여기 가판대에 하필 이 장식물을 설치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휴게소 안내판의 작은 글자를 보면 East Zion Thunderbird Lodge  이라고 적혀 있다.

   < 이 휴게소는 20세기 중반, 자이언을 찾는 자동차 여행객이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에 문을 열었다당시는 미국에서 모터 로지(Motor Lodge) 문화가 크게 발전하던 시대였다.객실 바로 앞까지 자동차를 댈 수 있고 가족 단위 여행객이 편하게 숙박하며 식당과 기념품점이 함께 운영되는 형태였다. >  이 휴게소의 이름이  East Zion Thunderbird Lodge 였다. Thunderbird는 천둥새라는데 그 연유는 이렇다.

  < 할머니 그 새 이야기 들려주세요. 손자는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서  또 그 이야기를 청했다. 어제도 해 주었잖니? 그러면서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또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새가 얼마나 큰 줄 알겠니? 그 새는 저 산 너머 아주 먼 곳 어디선가에 살고 있었단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가 없었지. 그 새가 날면 그 날개가 얼마나 큰지 하늘을 가렸단다. 그 큰 날개짓을 하면 하늘이 놀라 천둥소리가 났지. 그리고 그 새가  눈을 번쩍이면 번개가 쳐서 깜깜하던 세상이 환하게 밝아온단다. 그래서 남의 집에 물건을 훔치려고 가던 도둑놈이 깜짝 놀라 기절을 한단다. 그리고 자꾸 날개짓을 하면 하늘에 있던 구름들이 놀라서 비가 막 쏟아지지.  비가 오면 사람들이 가꾸던 곡식들이 훨훨 춤을 추면서 키를 키웠단다. 메마르고 황량하던 땅을 푸른 생명들로 가득 채웠다지. 그리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천둥소리를 들으면 악한 기운이 사라져서 착한 사람이 되었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되었단다.

  할머니는 자기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Thunderbird는 단순히 "천둥새"라는 뜻이 아니라, 북아메리카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오랜 세월 걸쳐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신성한 새였다.  이 새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살리고 지키는 하늘의 수호자였던 것이다. 

  신화, 전설, 설화는 단순히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부족이나 민족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가치관을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집단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신화는 자이언 캐년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거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생존하기에는 얼마나 척박한 땅이었는지를 알 수있다. 하늘에만 농사를 의지했던 고대인들에게 천둥새는 자기들을 살리는 구원자요 수호자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자이언 캐년이 나의 기억속에 더 또렷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자이언 캐년을 지나온 시각이 한참 흘렀다. 초원이나 농장을 지나기도 했다. 푸른 물이 가득한 저수지와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소들의 평화스런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먼 산너머에서는 자이언 캐년의 산줄기는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그 모습이 다시 또 확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내 뇌리 속은 아직도 끝없이 이어지던 붉은 협곡과  수천만 년의 시간을 품은  암석층들의 모습으로 꽉 차있다. 따라서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꼈던, 그 고인들이 지어낸 거대한 천둥새 신화가 더욱더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침에는 붉은 절벽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해 질 무렵에는 산 전체가 붉게 타오르는 듯한 색을 띠는 그 절벽 위를 전설 속 선더버드가 언젠가 날아들 것 같은 상상을 하면서,

 

  자이언 캐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우리는 브라이언쓰 캐년 입구에 도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