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유타주를 남쪽으로 달리다가 Arizona State Line(애리조나 주 경계) 표지판을 지났다. 그 후 약 20~30km 정도 더 달려서 페이지 시에 도달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8km 가서 홀스슈밴드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20여분간 홀스 슈벤드로 걸어갔다..
모래 바닥에 발이 닿으면 푹푹 빠지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신발자국이 조금 나기도 하였다. 전혀 이름을 모를 풀이 듬성듬성 나 있다. 잎인지 줄기인지 모를 가시처럼 앙칼진 모습이다. 어떤 풀은 잎이 좀 두껍다. 해가 서산에 기울어져서 그림자를 길게 끌고 있다. 낙타는 물론 아무 동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니 사람들이 모여 붉은 사암의 바위 너머를 굽어보고 있다.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삭막한 바위 난간에 사람들이 몸을 의지하고 그 밑을 내려다 본다. 검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다. 바위 절벽에는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고 그 밑 강물이 흐르는 언저리에 푸른 풀들과 교목들이 조금 자라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이 지척이니 그 푸르름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냐! 암벽을 의지하고 있는 모래나 흙 위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겠지. 해발 1300미터가 넘는 콜로라도 고원 위에서 300미터 아래를 곧 빨려들어갈 듯 아찔한 정신으로 내려다 본다. 붉은 사암 절벽 아레로 흐르는 저 강물이 콜로라도 강이다


강물은 두 번째 그림과 세 번째 그림처럼 흘러 바로 아래 그림처럼 휘돌아 나간다. 휘돌아 나간 가운데 암석 덩어리가 말발굽처럼 보인다고 해서 홀스슈밴드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늘도 하루 해가 저 지평선을 넘으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오랜 세월 동안 저 강물은 흐르고 있는가? 바위는 비바람과 눈비에 쉼없이 풍화작용을 하면서 부스러졌을 것이고, 물은 홍수와 가뭄을 되풀이 하면서 끊임없는 침식 작용을 했을까? 억겁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위대한 대자연의 시간 앞에서 잠깐 살다가 사라지는 인간의 시간을 무엇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다. 가까이는 내가 주차장에서 걸어온 평평한 사막이다. 멀리 눈을 들어보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사막과 암석이 이루는 거대한 산맥들이 무한대로 펼쳐진다. 어디론가로 떼지어 떠나가는 대군단의 물결처럼 참으로 웅장하다. 떼지어 떠나간다는 포현에 이르자 나는 문득 낙타를 떠올렸다. 미국 서부 사막 어디에 가면 낙타를 만날 수가 있을까? 그런데 미국 사막 어디에도 낙타는 없다고 한다.
<170여 년 전, 미국은 중동에서 70여 마리의 낙타를 들여와서 낙타부대를 창설했다.. 말보다 강인했던 낙타는 사막을 정복할 최고의 운송수단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말들이 낙타 냄새를 싫어했고 낙타를 잘 다룰 수 없어서 애로를 겪다가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나면서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일부를 사막에 풀어주었으나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낙타를 볼 수 없어서 좀 서운했으나 오늘 여기 홀스 슈벤드에 와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말발굽을 보았다..

가까이 있는 사암들은 석양의 빛을 받아서 엶은 주황으로 빛나고 햇빛에 가려진 부분은 짙은 주황으로 어둡다. 암석들이 갈라진 틈서리로 우중충한 색깔이 보여 그게 이끼인지 본래 암석의 빛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리고 암석의 결을 살펴보면 겉보기엔 여러가지 무늬로 보인다. 그것들은 사암 형성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암석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유구한 역사가 새겨진 거대한 기록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것들을 보면서 이 지구, 아니 이 우주의 숨결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 라스베가스를 출발하여 네바다주 유타주 아리조나주인 이곳에 이르기 까지 사막을 눈으로 보기만 하였다. 이제 비로소 사막 위를 걸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내 역사책 속의 희귀한 한 장면이다. 거기서 본 풀과 나무들을 나는 사진기에 넣었다.
이들 지역은 사암이 풍화되어 생긴 지역이다. 수천만 년 동안 비가 내리면서 고운 흙은 씻겨 내려가고 무거운 자갈과 돌이 남아 있는 곳도 많다. 겉이 흙이나 모래로 된 땅도 조금만 파면 자갈, 작은 돌, 붉은 사암 조각이라서 식물이 발아하기조차 힘든 땅이라고 한다. 극히 비가 적은 지역이지만 비가 내려 물이 잠시 고이는 곳에 어디서 날려온 씨앗들이 겨우 싹을 틔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자라고, 거기서 주변에 씨앗을 터뜨려서 조금씩 펴져 나갔을 것이다. 뿌리 주변의 흙은 다른 곳보다 유기물이 많아 발아하기 쉽다. 서로가 의지해서 열사의 태양빛과 사나운 바람과 모래를 막아 주었겠지. 관목아래는 그늘이 생겨 수분을 오래 유지하고 잎들이 떨어져 썩어 그게 풀과 나무들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높은 고원 지대의 모래벌 위에서 혹은 암석의 벌어진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저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고 한없는 경외감이 든다. 아울러 애처롭다는 생각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일 수 있다. 저 푸나무들을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땅에 심으면 살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수천 년동안 거기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그것은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완전한 생명제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거기서 태어나서도 꽃 피우고 후손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지나쳐 보고 우리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주제넘은 생각이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아가나? 흔히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소중한 인권을 짓밟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인간은ㅡ특히 현대인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으면서 극히 이기적이고 자아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남을 깔보고 폄시하는 뒤틀린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강남에 산다고 강북에 사는 사람을, 자기집에 산다고 세들어 사는 사람을, 조금 잘 났다고 못난 사람을 무시하고 살지 않는가? 자기의 오만과 선민의식에서 남을 능멸하는 일은 죄악에 속한다. 부자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낙타가 비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 말을 우리는 늘 잊지 않아야 하리라.

해도 서천에 기울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사막 위에 길게 드리워 진다 .모두들 자기가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막의 능선을 너머 마지막 해넘이가 시작된다. 붉은 태양이 콜로라도강 협곡 너머로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일출과 일몰광경이 유명하다는데 오늘은 그저 평범한 광경이었다.이제 곧 날이 저물어 가겠지. 황혼은 떠나간 것들이 모두 돌아가야할 시각이다.


어느새 사막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버스는 다시 페이지 시내를 지나 언덕 위 호텔로 향했다. 아직은 5월이라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창밖으로 명멸하는 도시의 불빛이 여행의 피로를 잊게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콜로라도 고원의 작은 도시 페이지의 한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참으로 길고 긴 하루 동안의 ㅡ 내 생애 처음의ㅡ 사막 여정이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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